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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에 ‘세금 먹는 하마’ 또 추가

등록 2007-09-14 00:00 수정 2020-05-03 04:25

기존 도로도, 국가지속위 정책도 무시하고 3조8천억 쏟아붓는 춘천~양양고속도로

▣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도로족’들의 폭주는 어디까지일까? 건설교통부가 내부 검토에서조차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난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문제의 대상은 중앙고속도로 동홍천 IC와 양양읍을 잇는 길이 71.5km의 춘천~양양고속도로 건설사업. 그 도로를 놓는 데 3조8천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업비가 투자된다. 이미 설계를 마쳤고, 예산도 책정됐다. 건교부가 “이 사업을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지난 2005년부터였고,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타당성이 없는 사업에 혈세를 낭비하지 말자는 취지로 꾸준히 반대 의견을 제시해왔다. 건교부는 물론, 그동안의 ‘관행’대로 사업을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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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달 전 뜻밖의 반란이 일어났다. 늘 그렇듯, 반란은 내부에서 터져나왔다. 지난 5월25일 건교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이 공동으로 국가기간교통계획망 수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면서, “최대 논란거리였던 춘천~양양고속도로 사업이 춘천~속초 구간을 잇는 철도보다 타당성이 떨어져 사업을 연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국가기간교통계획망 수정안은 향후 20년 동안 도로·철도·해운 등 우리 나라 국가기간 교통수단에 대한 투자·건설·운용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기간 교통 분야의 기준이다. 이용섭 건교부 장관이 이 수정안을 두고 ‘교통 분야의 헌법’이라고 부를 정도다. 수정안을 주도한 쪽은 건교부의 물류혁신본부. 건교부가 관할하는 모든 교통수단을 비교·검토했기 때문에 당시 발표는 객관적이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도로기획관실 ‘끗발 좋은 도로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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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안 발표 이후 춘천~양양고속도로 건설사업을 밀어붙이던 건교부 도로기획관실과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건교부 도로기획관실은 건교부 내부에서도 ‘끗발’ 좋기로 유명해 ‘도로 마피아’라 불린다. 역풍이 닥쳤을 때 그냥 물러선다면, 마피아가 아니다. 이들은 석 달이 채 못 돼 재역전에 성공한다. 녹색연합이 국가기간교통계획안 수정 최종안에 대한 부처 간 협의 문건을 확인한 결과 애초 “타당성이 낮아 연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 춘천~양양고속도로 건설사업이 ‘즉시 건설’ 쪽으로 뒤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기간교통계획안 수정 최종안은 이르면 9월 말께 공개될 전망이다.

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물류혁신본부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본환 종합교통기획팀장은 “국가기간 교통망에 대한 수정 계획은 감사원 감사의 결과가 태동 배경”이라고 말했다. 고속도로와 국도가 지나치게 중복 투자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주요 검토 배경이었다. 물류혁신본부 관계자는 “춘천~양양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진영의 주장이 워낙 거세 우리도 어쩔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끝을 흐렸다.

국가의 20년 교통정책이 ‘도로족’들의 반발에 부딪혀 뒤집힌 꼴이다. 건교부가 국가기간교통망계획을 수정하게 된 것은 고속도로와 국도의 중복 투자가 너무 심하다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의 중복 투자와 예산 낭비 실태를 조목조목 꼬집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도 큰 압박이 됐다.

이미 있는 도로·공항도 놀고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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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춘천~양양고속도로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손에 꼽히는 것은 수도권과 강원 영동권인 속초~양양 지역을 잇는 도로망은 이미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홍천과 인제를 거쳐 속초~양양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는 전 구간이 4차선으로 완공돼 있다. 도로법상으로는 국도지만 물리적으로는 외국의 고속도로를 능가하는 규격화된 도로다. 여기에 강원도의 영서를 가르는 장벽인 백두대간의 통과 구간도 2년 전에 미시령터널이 뚫려 소통이 원활하다. 미시령터널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민자도로 구간으로 지금도 통행량이 적어, 강원도민들의 혈세를 먹어치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구간에 고속도로를 놓을 경우 미시령터널은 지금보다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게 된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은 충북과 경북 내륙을 잇는 3번 국도 이화령터널의 비극이다. 터널은 같은 구간을 달리는 중부고속도로가 2004년 12월 개통된 뒤 ‘하마’로 전락했고, 결국 625억원이라는 세금을 잡아먹고 국유화됐다. 그런데도 건교부는 균형발전의 논리를 내세워 명백한 도로 중복 투자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춘천~양양고속도로의 가장 중요한 사업 목적은 수도권과 영동권의 연결이다. 현재 건설 중인 서울~춘천 구간에 다시 춘천~양양 구간을 더하면, 춘천~양양 구간은 물론 서울~영동 지역의 교통 수요를 흡수하게 된다. 그러나 서울~영동권은 이미 영동고속도로가 왕복 4차선으로 개통돼 있고, 서울~강릉 구간을 기본으로 하는 영동 남쪽은 동해시까지 동해고속도로가 개통돼 있다. 영동 북부 쪽으로는 강릉을 지나 주문진까지 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또 2009년이면 양양을 지나서 속초까지 영동고속도로가 연장 개통된다. 여기에 다시 서울~춘천~양양 고속도로를 더하는 것은 고속도로끼리의 과잉 투자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뿐일까. 놀고 있는 양양국제공항이 있다. 양양공항 역시 건교부가 결정해 예산을 투자한 사업이다. 2003년 3천억원이 넘는 혈세를 쏟아부어 완공한 양양공항은 항공 수요가 없어, 실제 개점 휴업에 가까운 운영 실적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과 영동을 좀더 빨리 가고 싶어하는 교통 수요를 예상하고 만들어졌지만, 결과는 ‘놀고 있는 공항’이 되고 말았다. 영동고속도로가 항공 수요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고속도로를 추가하면, 양양공항의 적자 상황은 헤어날 수 없게 된다.

국가지속위 중점 추진 정책도 휴짓조각

한 가지 문제를 더 꼽자면, 동해선 철도 변수가 있다. 남한과 대륙을 연결하는 철도의 상징인 동해선 철도는 현재 민통선 저진역에서 비무장지대를 거쳐 북한의 장전역까지 이어진다. 동해선 철도가 제 역할을 하려면 반드시 수도권과 연결돼야 한다. 서울~춘천~양양(속초)을 잇는 철도사업은 남북 관계의 진전 정도에 따라 그 시작이 결정되겠지만, 여차하면 도로·철도의 중복 투자를 낳을 수 있다.

춘천~양양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추진 여부는 참여정부의 국정 과제와도 깊이 관련돼 있다. 대통령 산하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지난 2005년 5월 청와대에 ‘지속 가능한 교통정책 ’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참여정부 100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추진돼 1년6개월 동안 30여 명의 국내 최고의 교통·환경 전문가들이 공동 작업으로 작성했다. 당시 지속 가능한 교통정책의 핵심 요지는 도로 중심의 교통체계에서 안전과 환경을 고려한 철도 및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즉, “도로는 충분하니 철도 투자를 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건교부는 여전히 도로 건설에 목을 매고 있다. 그래서 춘천~양양고속도로는 과거의 교통체계로 가느냐, 아니면 지속 가능한 교통체계로 가느냐의 시금석이자 이정표가 된다.

당시 국가지속발전위원회에 파견돼 보고서 작업을 주도했던 최진석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박사는 “지속위가 만들고 청와대까지 보고하고 추진해, 부처 간의 협의를 마친 정책이 이렇게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많은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유독 고비용 저효율으로 일관하는 분야가 바로 교통이다. 특히 도로 중심의 국가기간망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쾌적하고 행복한 나라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도로 건설에 이렇게 목을 매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그의 지적은 아프게 들린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춘천~양양고속도로의 추진 여부는 대통령 직속기구 가운데 하나인 국가지속발전위원회의 존재 이유까지 되묻게 했다. 국가지속위가 탄생 이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서 부처 협의까지 마친 정책이 휴짓조각이 된다면 존립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강동석 전 건교부 장관은 재임 시절 시민단체들과의 간담회에서 도로 분야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건교부에는 장·차관을 능가하는 자리가 하나가 있다. 도로국장(현 도로기획관)이다.” 국회 건교위원회의 국정감사를 관찰해보면, 의원들이 장관이나 차관에게는 함부로 해도 도로국장에게는 말부터 행동까지 공손하고 정성스럽다. 지역구의 도로 건설 민원 때문이다. 강 전 장관은 “그런 상황을 접하니 도로 쪽의 파워를 실감했다”라고 실토했다.

7조원 넘는 예산, 언제까지 도로에 쏟나

건교부 도로 부서의 1년 예산은 7조원이 넘는다. 건교부는 여전히 우리나라에 도로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고속도로와 국도의 연장은 세계 10위 안에 든다. 지금 상황에서 도로를 더 짓는 것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아니라 떨어뜨리는 것이다.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쓰여야 할 세금이 엉뚱한 곳에서 낭비되고 있는 현실은 분명 문제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도로족’들의 폭주를 위해 언제까지 지갑을 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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