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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왜 갔는가

등록 2007-09-07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난 2년간 ‘마약 왕국’으로 변하고 한국인들 피흘린 아프간, 이게 파병의 목적인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또 신기록이 작성됐다. 해마다 되풀이돼왔으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기록 경신의 조짐은 올 초부터 일찌감치 감지됐다. 이미 지난 2월 아편 재배 면적이 지난해보다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경고가 현지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와 유엔 등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던 터다.

해마다 아편 재배 기록 경신

“아프간의 아편 생산량이 두려울 정도의 속도로 늘고 있다. 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적인 수준이다.” 유엔 마약범죄국(UNODC)은 지난 8월27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세계 아편 생산 현황을 담은 연례보고서를 내놨다. 마약단속국은 “올해 아프간에서 생산된 아편은 지난해에 비해 34%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이로써 아프간은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헤로인과 모르핀을 포함한 각종 마약류 원료의 93%를 공급하는 국가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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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프간에선 16만5천ha에서 아편 재배가 이뤄졌다. 올해는 이보다 17% 늘어난 19만3천여ha에서 아편 농사가 이뤄졌다. 막대한 자금과 병력을 들여 아편 뿌리뽑기에 나섰던 미국과 나토군의 노력이 무색하다. 미국이 아프간 아편 재배 근절을 위해 투입한 예산은 올해에만 모두 4억4900만달러에 이른다. 올해 아프간의 아편 생산량은 모두 8200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아프간의 아편 생산량은 6100t이었다. 유엔이 보고서에서 “19세기 중국을 제외하고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이 정도 규모로 아편을 생산해낸 사례가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프간에서 생산되는 아편의 약 80%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 보고서의 지적대로 헬만드·칸다하르·라파·다이쿤디·님누즈 등 남부 일대에서 아편 재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권좌에서 축출돼 파키스탄 국경지역으로 몸을 숨겼던 탈레반이 복귀해 거점으로 삼고 있는 지역들이다.

영국군이 거의 매일이다시피 탈레반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남부 헬만드주에선 아프간 전체 아편 생산량의 절반을 거둬들였다. 돌아온 탈레반의 거점인 헬만드주는 콜롬비아산 코카와 모로코산 마리화나, 버마의 아편 총량을 합한 것보다 많은 양의 ‘불법 마약류’를 생산해냈다. 이들 나라의 인구는 헬만드주 주민의 20배를 넘는다. 유엔은 헬만드주를 “지구촌 최악의 불법 마약류 생산기지”로 규정했다.

애꿎은 구호기관들만 타격 받아

지난 2001년 말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항구적 자유’ 작전이란 이름 아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아프간에선 한 해도 빠짐없이 신기록이 작성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아편 생산량이 늘어왔다. 극도의 빈곤과 대체작물 부재, 기약 없는 재건·복구, 가난한 아프간 농민의 유일한 버팀목이 아편이었다. 그렇게 분쟁의 땅 아프간에서 아편 농사는 유일한 성장산업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탈레반 정권 최고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는 집권 당시 아편 농사 금지령을 내리고, 재배 농사를 철저히 단속했다. 하지만 권좌에서 축출됐다 기사회생해 돌아온 탈레반은 아편 농사를 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편 재배를 통해 얻게 되는 수익이 고스란히 탈레반의 활동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 유엔 마약범죄국장이 “무장세력이 발호하는 지역일수록 아편 재배가 창궐한다”며 “치안 불안의 정도와 마약류 생산량 사이엔 직접적인 함수관계가 존재하며, 아편 생산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치안 확보가 급선무”라고 새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들이 복귀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탈레반이 격렬한 공세를 본격화한 지난 2년 동안, 아프간의 아편 생산량은 꼭 2배로 증가했다. 아편 생산량 증가는 탈레반의 활동자금도 그만큼 늘어남을 뜻한다. 이는 다시 유혈 충돌 격화로 이어지며, 아편 재배 면적을 늘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 연계고리를 끊기 위해선 치안 안정화와 이를 바탕으로 재건·복구 작업을 본격화하는 게 필요하지만, 아프간이 처한 현실은 이런 기대감을 허망하게 만들고 만다. 취약한 정치적 기반으로 수도 카불 외곽에선 아예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인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둘러싼 군벌세력의 만연한 부패상은 아프간을 짓누르고 있는 또 하나의 족쇄다.

“유엔 회원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적 차원의 구호 및 진료 활동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한-미 동맹관계의 공고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 정부는 지난해 12월1일 국회에 제출한 ‘국군부대의 대테러전쟁 파견연장 동의안’에서 아프간에 다산·동의부대를 파견한 목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002년 2월 동의부대 1진이 아프간으로 출발한 이후 5년 반째 이어져온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은 목적을 달성했을까? 탈레반에 납치됐던 21명의 목숨 값으로 다산·동의부대 철수가 공식 결정된 지금 되새겨봐야 할 물음이다. 아프간의 현 상황은 ‘인도적 차원의 구호’를 통해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철저히 배반하고 있다. 그사이 다산부대 윤장호 하사가 애꿎은 죽음을 맞았고, 배형규·심성민씨가 아프간의 메마른 땅에 선혈을 뿌렸다.

납치된 지 41일 만에 탈레반에 붙들려 있던 이들이 모두 풀려난 지금, 오랜 기간 아프간 주민을 어루만지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했던 구호기관들이 내몰린 현실은 또 다른 이율배반이다. 국내 최대 구호단체의 하나인 ‘굿네이버스’는 분쟁과 빈곤으로 점철된 아프간 땅에서 6년째 희망의 씨앗을 뿌려왔다. 지난 2001년 가을 미국의 공습을 받은 아프간 국경 난민촌으로 긴급구호팀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여성교육문화센터와 보건소·초음파진료소·병원 등을 운영해온 이 단체는 지난 8월24일 한국인 활동가와 가족 전원을 현지에서 철수시켰다. 외교통상부의 철수 요청과 현지 한국대사관의 철수 공고에 따른 결정이었다.

활동가들이 타지키스탄으로 철수하면서 굿네이버스의 현지 활동은 ‘절반 이하’ 수준으로 축소됐다. 여성들에게 영어·컴퓨터 등을 가르치던 여성교육문화센터는 탁아소 형태로 활동을 줄였고, 카불 외곽 3개 지역에서 운영하던 보건소도 1곳만 문을 열기로 했다. 직접 운영하던 병원은 약품 및 검사시약만 지원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 단체 국제협력본부 장수영 사업지원팀장은 “결과적으로 여러 형태의 혜택을 받아야만 했던 아프간의 고통받는 일반인들에 대한 지원 중단을 의미한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을 해온 단체들의 활동마저도 위축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이야말로 ‘인도적 차원의 구호’를 통해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왔을 터다.

인질들 욕하기 전에 한번 따져보라

2명의 동료를 비명에 보내고, 오랜 악몽을 마침내 마감한 이들에게 ‘구상권’ 문제부터 들이대는 건 야박하다. 그전에 한번쯤 자문해볼 일이다. ‘테러’와의 무모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땅에 한국군은 왜 달려갔는지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박정은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피랍 사태에서도 확인되듯 아프간과 이라크 정세에 대한 정보조차 차단하고 대테러전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군의 역할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던 정부의 책임은 매우 크다. 아프간과 이라크 평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대테러전에 동참했던 파병정책과 국민들에 대한 의도된 정보 왜곡은 정부가 철저히 반성해야 할 일이다. 아프간뿐만 아니라 이라크 파병부대를 즉각 철군시키고, 나아가 분쟁 확산에 공조하는 해외 파병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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