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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50억 소송 근거있나

등록 2007-08-31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김경준 기사’를 두고 에 소송 건 이명박 후보, 사실에 근거하라 </font>

▣ 특별취재팀

지난 8월20일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BBK 금융사기 사건의 핵심 인물로 주목받고 있는 김경준씨 인터뷰 기사(8월17일치 1·4면)가 이 후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법무법인 홍윤을 통해 제출한 소장에서 “원고(이명박 후보)는 피고(한겨레신문사)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보도로 인해 명예를 실추당하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바,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로 금 50억원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기사는, BBK 금융사기 사건과 이명박 후보의 관련성 여부를 지속적으로 보도해온 특별취재팀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연방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씨를 어렵게 인터뷰한 뒤 “BBK가 100% 이명박 회사”라는 그의 주장을 보도한 것이었다. 8월9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는 673호와 674호에 자세히 실리기도 했다. 소송의 대상이 된 기사를 작성한 특별취재팀은 소장을 통해 제기한 이 후보의 주장을 따져보려 한다.

이 후보쪽 반론은 충분히 실었는데도

소장은 “확실한 근거 없이 김경준의 주장을 인용 보도함으로써 마치 원고가 김경준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오인하도록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1면 ‘BBK 등 3곳 100% 이명박 회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김씨의 주장 못지않게 이 후보 쪽의 반론이 충실하게 실려있다. 이 후보 쪽 오세경 변호사가 “김씨의 주장이 자꾸 바뀌고 말이 안 된다”고 밝혀 이를 기사에 균형 있게 반영했다. 기사의 뼈대가 ‘김경준은 이렇게 주장하고 이명박은 아니라고 한다’인 만큼 이 후보가 ‘범죄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오인’할 여지는 별로 없다.

게다가 4면에 실린 관련 기사에서는 김씨 주장의 타당성을 따졌다. 김씨가 유력한 증거 자료라고 제시한 ‘비밀계약서’(그는 표지와 이명박·김경준의 서명이 들어간 뒷면만을 공개하면서 귀국 뒤 한국 검찰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에 대해서도 사실로 단정하고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다. 김씨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과 허위일 가능성을 두루 다뤘다. 이 후보는 소장을 통해 “김경준은 근본적으로 신빙성에 의심이 강하게 제기되는 자인데, 그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의 진위 여부를 모두 따질 수는 없었지만 우선 ‘여과 없이 보도했다’는 대목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취재팀이 김경준씨를 인터뷰한 뒤에 고민한 유일한 잣대는, 그가 ‘신빙성에 의심이 강하게 제기되는 자’라기보다는 그의 주장이 보도할 가치가 있느냐는 문제였다. 나름의 사실 확인 끝에 보도를 결정한 근거는 이렇다. 김씨는 ‘BBK 금융사기 사건’의 핵심 인물임에도 그의 주장이 보도된 적은 거의 없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후보의 주장(김경준은 사기꾼이다, 위조 전문가다, BBK는 김경준의 회사로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은 거의 모든 언론 매체를 통해 여러 차례 반복해 보도됐지만, 이와 상반된 김경준씨의 주장은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이 후보는 큰 스피커를 가지고 있는 반면, 김씨의 주장은 구치소 담을 넘지 못했다.

이 후보의 ‘소장’ 주장대로라면, “김경준은 사기꾼”이라는 이 후보의 주장 역시 ‘여과 없이’ 보도된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또 이 후보의 이런 주장 역시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미국에서 열린 두 건의 재판 결과는 “김경준은 사기꾼”이라는 이 후보 쪽 주장의 근거를 허물고 있다.

8월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은 이 후보의 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다스와 김경준씨의 다툼에서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다스는 2003년 5월 “김씨가 35~40%의 수익률을 올려주겠다고 해서 190억원을 BBK에 투자했으나 김씨가 50억원만 되돌려주고 나머지 돈을 횡령했다”며 김씨를 상대로 140억원 반환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이 이를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기각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스 쪽이 제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김씨의 사기성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김씨가 다스의 경영진을 만나 투자를 유치할 때도 사기를 목적으로 했다고 볼 수 없으며 김씨가 BBK 자금을 운용한 거래도 불법적, 위법적 또는 사기성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다스 쪽 증거로 김경준 사기 입증 안 돼”

이번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의 결론은 지난 3월 미국 연방법원의 또 다른 소송의 판결 내용을 상당 부분 준용했다. 당시 연방법원은 연방정부가 제기한 소송, 즉 김씨의 재산에는 사기와 횡령으로 만든 돈이 포함돼 있으니 이를 압류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기각했다. 연방법원은 “미국 연방정부, 다스, 옵셔널캐피탈의 주장과 달리 김씨가 사기를 쳤거나 횡령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 후보가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부당성을 언급하면서, 지난 3월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까지 거론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다스는 연방법원에 김경준씨의 사기를 입증할 유력한 증거라면서 ‘김경준 자술서’를 제출했다. 김씨의 서명이 담긴 이 서류에는 ‘BBK 투자자문은 사실상 저의 영향력에 있는 법인’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미국 연방법원은 “김경준씨가 ‘어떤 잘못을 했다고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술서는 진짜임을 증명하기 어려운 만큼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서 인정 안한 ‘자술서’ 한국에 또?

이 후보 쪽은 미국 연방법원이 진위 논란 끝에 믿을 만한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문제의 ‘김경준 자술서’를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다시 증거로 제출했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 법정에서 진위 논란 끝에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 문서를 주요 근거로 제시한 이유를 선뜻 이해하기는 힘들다.

김경준씨는 8월9일 취재팀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런 자술서를 작성할 만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고, 금감원에 그런 문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며 위조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별취재팀은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의 진실 공방에서 어느 한쪽을 편들 이유가 없다. 다만 싸움의 한 당사자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고, 도덕성은 공직자의 주요 덕목이기 때문에 BBK 금융사기 사건에 관한 이 후보의 주장에 거짓이 없는지 검증하는 과정에서 김경준씨의 주장 역시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9월 귀국 의사를 밝힌 만큼 중단됐던 검찰 수사가 재개되면 사건의 실체는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 후보의 소송에 대해 BBK 금융사기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는 기사로 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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