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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잡았네, 인천공항고속도로

등록 2007-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건설사들이 배불리는 동안 엄청난 통행료를 감당해온 영종도 주민들의 투쟁

▣ 영종도=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있다. 멀쩡한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씌워 ‘사법 살인’을 자행한 인혁당 사건이 그렇고, 총칼로 권력을 쥔 쿠데타 세력이 자국민을 때리고, 찌르고, 총 쏘아 죽인 광주 학살사건이 그렇다. 사회는 민주화됐고, 겉으로 보기에 그런 ‘해도해도 너무하는’ 사건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공사비 부풀리고 교통랑 조작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해도해도 너무하는’ 일들의 성격이 바뀌었을 뿐이다. 권력과 자본은 한 세대 전같이 노골적으로 총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르는 제도의 틈새에서 소리 없이 움직인다.

은 지난 8월3일치(671호) 특집 기사 ‘세금 먹고 뻗어버린 하마, 민자고속도로’에서,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채 국민에게 625억원의 부담을 떠안긴 이화령 터널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후 독자들로부터 많은 메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신철(34) ‘인천공항고속도로통행료인하추진위원회’ 위원장은 2000년 12월 개통된 공항고속도로와 5년째 투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는 고속도로를 ‘산적’이라고 불렀다. “완전히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삥’ 뜯는 거죠. 그게 산적이 아니고 뭡니까.”

그의 분노를 이해하려면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둘러싼 지난 10년사를 알아야 한다. 1995년 정부는 인천 영종도에 공항을 만들어 그곳을 동북아 물류 교통의 ‘허브’(Hub)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진행 중이었다. 공항 건설에 따라 섬과 육지를 잇는 도로를 만들어야 했다. 정부는 그 사업을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삼성건설·한진중공업·동아건설·포스코개발 등 10개 건설사로 구성된 신공항하이웨이주식회사와 1995년 10월27일 실시협약을 맺었다.

그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건설사의 한 전직 임원은 “그때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먼저 건설사들이 빼먹을 만큼 공사비를 한껏 부풀립니다. 그렇게 뻥튀기해 먹는 게 전체 공사비의 40% 정도. 그 다음은 공사비에 맞게 교통수요 예측치를 끼워맞추는 작업을 합니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의 총사업비는 1조4602억원, 하루 교통량은 11만622대일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실제 교통량은 5만 대 수준에 머물렀고, 고속도로는 대규모 적자를 보는 게 불가피해졌다.

그냥 서서 당하고 있을 건설자본들이 아니었다.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2000년 12월, 실제 교통량이 애초 예상한 교통량에 못 미치면 그 교통량의 최대 90%까지 수입을 보전해준다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9년 4월이었다. 위기에 놓인 권력과 자본은 백주에 대담한 일을 저지른다. 이미 맺은 계약을 ‘개정’해 최소운영수입보장 적용 대상이 안 되는 고속도로를 적용 대상으로 바꾼 것이다. 2000년 12월27일 이뤄진 계약 개정으로 정부가 그동안 신공항하이웨이주식회사에 퍼부은 돈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동안 4017억원이고, 수입보장이 끝나는 2020년까지 2조원 가까운 돈이 지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자본들은 계속 회사를 손에 쥐고 운영하기가 머쓱했던지, 2003년 회사를 교원공제회 쪽에 떠넘기고 ‘먹튀’에 성공한다.

남은 것은 주민들이었다. 섬인 영종도를 육지와 잇는 유일한 길은 고속도로뿐이었고, 지금 현재도 고속도로뿐이다. 고속도로의 통행료는 승용차 편도 기준 7100원, 한 번 왕복에 1만4200원이 든다. 1㎞당 요금은 197.2원으로 경부고속도로 45.8원보다 4.3배나 된다. 경부고속도로와 견줘볼 때 적정 요금은 편도에 1700원 안팎이다.

“1년이면 400만원이에요”

참다 못한 주민들은 2003년부터 투쟁에 돌입했다. 주민들은 요금을 10원짜리로 내는 투쟁을 이어갔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냈다. 당시 유료도로법이 ‘그 부근에 통행할 다른 도로가 있어 당해 도로의 통행을 불가피하게 하지 아니하는 도로’만 요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헌재의 답은 “뱃길도 대체도로다”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건설교통부와 인천시가 2003년 8월부터 영종도 주민들에 한해 인천·서울 방향 요금을 48.4% 감면하고, 2004년 8월부터는 인천 방향 요금을 면제했다. 그러나 그 제도는 지난 3월31일을 끝으로 폐지됐다. 재정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8월23일 영종도 공항신도시 소방파출소 옆에서는 ‘인천공항고속도로 통행료 감면을 위한 촛불 한마당’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행사에 나온 공아무개(47)씨는 영종도 토박이다. 그는 “남편이 인천으로 출퇴근하는데 돈이 없어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대신 택한 것은 배다. “편도 한 번에 원래 8천원인데, 영종도 사람은 4천원 깎아주거든요.” 공씨의 중·고등학교 동창 김용분(47)씨도 “옆집 사람은 직장이 여의도인데 통행료 부담 때문에 이사 나갈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한 번 왕복에 1만5천원이니 다닐 수가 있어야죠. 한 달이면 30만원, 1년이면 400만원이에요.” 록그룹 ‘사랑과 평화’가 나와 노래를 불렀고, 주민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촛불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요금 감면, 요금 감면! 우리가 ‘봉’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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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먹고 뻗어버린 하마, 민자고속도로



제도 개선 다 이루어졌나

수입보장제와 계약 독점 문제 손질했으나 업체 로비는 여전

건설교통부와 기획예산처는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크고 작은 지적이 이어질 때마다 “이미 많은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잘되면 내 탓, 못되면 국민 탓’의 구도를 가능하게 했던 최소운영수입보장제와, 최초로 사업 제안을 한 회사가 계약을 따낼 수 있게 만든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의 독점적 구조였다. 기획예산처는 2006년 1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를 크게 축소했고, ‘제3자 회사’도 사업제안서를 제출할 문을 터놓아 독점 구조를 깨뜨렸다.
여러 회사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평가하는 것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피맥)다. ‘피맥’이 대학교수와 업계 전문가 가운데 제안서를 평가할 위원들을 뽑으면, 위원들이 제안서를 심사해 최고점자를 뽑는다. 현재 우선협상자 선정 작업이 진행 중인 사업은 ‘서울~문산’(서울 마포구 상암동~경기 파주 내포리 44km)과 ‘서울~포천’(경기 구리시 교문동~포천군 신북면 45.4km) 민자고속도로다. 각 사업에 5개 업체가 제안서를 제출해 5 대 1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는 중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업체들의 치열한 ‘기술 영업’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기술 영업’을 쉬운 말로 고치면 로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체별로 평가위원 후보들을 집중 마크하는 기술 영업을 벌이고 있고, 흑색선전도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경전선, 전라선 사업 때도 평가위원 후보들을 접대하느라 강남 룸살롱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큰 금액의 뇌물이 오간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훌륭한 사업계획을 가진 회사가 기술 영업에 밀려 탈락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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