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MB가 정치하겠다 떠들면서 망했다”

등록 2007-08-24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변호사 통해 김경준씨 6시간30분 접견 취재… “세 회사 BBK·eBK·LKe뱅크 190억원, 다스에서 왔다”</font>

▣ 로스앤젤레스=특별취재팀

2000년 무렵 서울에서 두 남자가 만났다. 현대건설 전문경영인 출신인 이명박은 예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에서 금융전문가로 성공한 김경준은 몸값이 오르고 있던 30대 중반이었다. 둘은 ‘사이버 종합금융회사’를 꿈꾸며 손을 잡았다.

‘주장’ 뒷받침할 증거 얻기 위해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 이명박 쪽은 김경준을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해 대선 판을 흔들었던 김대업씨에 빗대어 ‘제2의 김대업’ ‘위조 전문가’라고 공격한다. 사기꾼이라는 얘기다. 김경준은 유력한 대선 후보 가운데 1명인 이명박에 대해 “전략이나 분석과는 거리가 먼, 무조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며 관리자나 매니저로서는 상당히 부족하다”고 비난한다. 게다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에게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말만큼 심한 욕이 또 있을까.

무엇이 이들을 갈라놓았을까. 서로에게 기대어 큰 꿈을 펼쳐보려고 했던 두 사람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같이 사업을 하다 갈라져 서로를 비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다르다. 한쪽 당사자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어서 누구 말이 맞는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핵심은 ‘BBK’사건이다. BBK투자자문이라는 회사가 운용한 마프(MAF) 펀드가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의 주가조작에 이용됐고, 이 때문에 5200여 명의 소액투자자들이 수백억원의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이명박은 “BBK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의 취재 결과는 달랐다. 하지만 핵심 당사자인 김경준은 그동안 말이 없었다. 사건의 실체를 가리려면 양쪽을 두루 만나봐야 할 텐데 한 사람은 큰 ‘스피커’를 갖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갇혀 있었다. 취재팀이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경준을 인터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명박 캠프의 논평(장광근 대변인)처럼 “이명박 후보를 죽이려는 공작정치 음모에 놀아난” 것이 아니라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 애쓴 것뿐이다.

취재팀은 8월9일 김경준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가족, 변호인에게 한 달에 300분 전화할 수 있는데 그중 일부를 할애했다. 그는 “이명박씨가 대표이사 회장이었던 LKe뱅크가 BBK의 지주회사였고 이 회장이 BBK 투자를 모두 유치했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8월13일치)와 (673호)에 실렸다.

전화 인터뷰는 한계가 많았다. 게다가 김씨의 ‘주장’일 뿐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취재팀은 다시 인터뷰를 추진하면서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변호인 접견 형식을 빌리면 장시간 면회가 가능했다. 또 간접적인 방식이나마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취재팀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 중인 현지 변호사 여러 명에게 취재팀을 대신해 인터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김경준이 바라는 방식이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10여 년간 검사와 공무원(공익변호사)을 지낸 데이비드 백 변호사가 어렵게 취재팀의 요청을 수락했다. 인터뷰는 8월14일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30분까지(미국 서부 시각) 무려 6시간30분 동안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구치소의 변호사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백 변호사의 두툼한 노트는 까만 글씨로 빼곡했다. 아래는 백 변호사가 전달한 인터뷰 전문을 취재팀이 핵심만 추린 것이다.

김경준은 서류가 가득 담긴 상자와 파일을 들고 웃으면서 접견실로 들어왔다. 구치소 안에서 한국 검찰의 수사에 대비해 증거를 모으고 공부를 많이 한 인상이었다. “한국 검찰이 48시간 이내에 기소하지 못하면 풀려나는 것 아니냐”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LKe뱅크는 왜 BBK의 마프 펀드를 팔았는가

그는 초반 2시간 정도 준비해온 자료를 보여주며 BBK가 ‘엠비 리’(영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경준은 이명박을 이렇게 불렀다)의 회사라고 주장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자료는 스톡 퍼처스 어그리먼트(Stock Purchase Agreement·주식 거래 계약)였다. 영문으로 된 자료로 30쪽 정도였다. 김경준은 표지와 맨 뒷장만 보여줬다.

표지 제목(Stock Purchase Agreement) 밑에 ‘by & among A. M. papas & associated MYUNG BAK LEE, KYUNG JOON KIM 2001. 2.21’이라고 적혀 있었다. 맨 뒷장엔 계약 내용 서너 줄 밑에 3명의 사인이 있었다. A. M. 파파스 관계자와 이명박, 김경준 순이었고 이름 옆에 서명이 있었다. 김경준은 공개되지 않은 비밀 자료라면서 “LKe뱅크(이명박이 대표이사 회장, 김경준은 대표이사 사장이었다)가 BBK와 eBK(e뱅크증권중개·이명박이 1대 주주, 김경준이 2대 주주였다)의 홀딩 컴퍼니(지주회사)라는 내용이다. 엠비 리가 LKe뱅크 지분을 100% 갖고 있으며 자회사인 BBK와 eBK 지분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다”라고 말했다. 내용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서울에 가서 검사에게 직접 넘기겠다”고 했다. 이명박과 김경준의 주장이 서로 다른, LKe뱅크와 BBK의 관계와 이명박의 지분 부분만이라도 보자고 했지만 나중에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런 자료는 ‘개인 계약’, 즉 비밀계약서의 일종인데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제시한 자료는 LKe뱅크의 동원증권 계좌(계좌번호 001-503195-01)였다. 그 계좌에 마프펀드(BBK가 관리·운용했던 펀드) 4종류를 거래한 기록이 나온다. 마프펀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속단할 수는 없지만, LKe뱅크가 다른 회사(BBK)의 상품(마프펀드)을 팔았다는 건데 두 회사가 밀접한 관계가 아니면 그럴 수 없다. 쉽게 말해 펩시콜라가 아무런 계약도 없이 코카콜라의 상품을 파는데도 코카콜라가 가만있는 것과 비슷하다.

또 다른 자료는 LKe뱅크가 하나은행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보였다. 첫 페이지에 2차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제목이 나오고 그 밑에 ‘2000. 5.15. 17시. 하나은행 20층 컨퍼런스룸’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나은행에서는 윤○○ PB지원팀 조사역, 주○○ 가계금융팀과장이, LKe뱅크에서 김백준 부회장(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서울메트로(옛 서울지하철공사) 감사를 지냈으며 현재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 중이다), 김경준 사장, 오○○ 이사, 허○○ 부장이 참석자로 나와 있다. 이 자료의 두 번째 페이지에는 BBK가 LKe뱅크의 자회사로 기록돼 있었다. 김경준은 “하나은행에 프레젠테이션했던 자료까지 내가 위조했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은행에 위조 정관을 보냈겠나”

또 LKe뱅크가 2000년 6월21일 하나은행에 팩스로 보낸 LKe뱅크와 BBK의 정관을 봤다. 둘 다 30조 2항에 이명박과 김경준이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서로의 대표들이 아니면 중요한 결정을 못하도록 기록돼 있었다. 전체를 꼼꼼히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동일한 내용으로 보였고 활자체만 달랐다. 김경준은 “(이명박 쪽이) 내가 BBk 정관을 위조했다고 하는데 위조한 정관을 하나은행에 보냈겠나. 팩스를 받은 오○○ 과장이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김경준은 △LKe뱅크의 외환은행 계좌와 법인 장부 △서울공증인합동사무소의 공증을 거친 LKe뱅크의 임시 주주총회 의사록(2001. 4.18) 등을 제시하며 각 자료에서 LKe뱅크와 BBK의 관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설명했다.

김경준은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한 것이 아니었다. 재판 때문에 말을 아끼는 동안 자기를 사기꾼으로 만들어놨다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자료를 공개한다고 말했다. 방에 자료가 더 있는데 다 가져오지는 못했다고 했다. 논리정연하게, 차분하게 진술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자료를 다 보고 나서 준비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취재팀이 백 변호사에게 건넨 질문지는 A4용지 6장 분량이었다).

다스 울산지점 계좌를 보라

<font color="#216B9C">당신과 이명박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었나. 각각 얼마를 투자했고 어떤 손해를 봤나.</font>

=나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따라서 금전적인 피해는 없다. 이렇게 감옥에 앉아 있는 게 피해라면 피해다. 엠비 리가 얼마를 썼는지는 잘 모른다. 확실한 것은 다스가 BBK에 투자했다는 190억원은 BBK, LKe뱅크, eBK의 자본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세 회사 모두 이명박 회사다(다스는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고, 이 투자금은 자본금이 아니라 돈을 불려달라고 맡긴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font color="#216B9C">다스가 이명박 회사인가.</font>

=다스가 투자한 돈은 이명박 돈이다. 그 회사 지분 구조를 보면 웃긴다. 엠비 리의 형인 이상은 49%, 친척 김재정이 47%, 나머지는 김아무개인데 엠비 리의 중학교 친구로 알고 있다. 지분을 다 쪼개놨다. 엠비 리가 통제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사실상 그의 회사다.

<font color="#216B9C">다스는 BBK에 자금 운용을 해달라고 투자한 회사 아닌가. 세 회사의 자본금으로 썼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font>

=LKe뱅크 자본금 60억원이 모두 다스에서 왔다. BBK에는 30억원, eBK에는 100억원이 들어갔다. 모두 합쳐 190억원이다. 다스는 나를 상대로 낸 민사 소송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김경준이 찾아와 BBK에 투자하라고 했다, 지분 투자를 한 게 아니라 자금 운용을 해달라고 투자했다, 김경준과 이명박의 관계는 모르고 투자했다고 한다. 어떻게 내가 아무 배경도 없이 제조업체인 다스에 가서 투자하라고 하고 그 많은 투자금을 받아낼 수 있었겠나. 다스는 당기순이익이 20억원 수준인 회사였다. 그런 규모의 회사가 190억원을 투자한다? 다스는 그 돈을 채권자한테 빌렸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이다.

<font color="#216B9C">증거가 있나.</font>

=다스의 계좌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명세서를 보여주며) 이것은 다스의 외환은행 보통예금 거래 명세서다. 2000년 12월29일 이상은이 10억원을 입금한다. 다음날 10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한다. 그 현금이 LKe뱅크로 들어간다. 다스의 울산지점 계좌를 뒤져보면 여러 거래 내용이 등장할 것이다.

<font color="#216B9C">금융 전문가인데 자금 운용은 당신이 했나.</font>

=이명박과 김백준이 자금 운용, 회사 관리를 했다. 나는 인터넷상에서 사이버 금융거래를 하는 틀을 만드는 기술적인 분야에 집중했다.

뜨기 시작하니 금융감독원에서 전화

<font color="#216B9C">당신은 금융 전문가로 이명박과 손을 잡은 것 아닌가.</font>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인터넷 거래 상품, 파이낸셜 상품을 개발하는 기능적인 일을 했다.

<font color="#216B9C">BBK는 당신이 대표이사였다. BBK의 자본금을 이명박이 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font>

=1999년 초기에는 내가 잘나가던 때였다. 보너스로만 20억원씩 받던 때였다. 그때 김백준이 찾아왔다.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면서 엠비 리를 소개했다. 그는 파이낸셜, 자금 운용 쪽에 관심이 많아 이것을 바탕으로 재기할 생각이었다. 나는 그가 돈이 많아 큰일을 도모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자회사, 증권거래, 자금투자회사를 만들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엠비 리는 BBK를 만들고 LKe뱅크를 홀딩 컴퍼니로 만들자고 했다. 처음부터 엠비 리가 원하는 내용이었고 그 지시에 따랐다. 나는 명목상 BBK 대표이사였다.

<font color="#216B9C">당신의 주장이 맞다면 스카우트됐고 고용 관계였다는 것인데 왜 대표이사를 맡았나.</font>

=엠비 리는 ‘동부에 있을 때’였고 나는 잘나갈 때였다. 개인적으로는 비자 문제도 있어 대표이사가 되면 유리했다. (백 변호사는 한국 정치인들이 정치적 공백기에 주로 미국 동부 유명 대학에서 연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의미로 말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명박은 선거법 위반 혐의가 확정되어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뒤 1998년 11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연수를 떠났다가 1999년 10월 돌아왔다.)

<font color="#216B9C">BBK가 운용한 마프펀드의 초기 수익률은 괜찮았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나.</font>

=…. 2001년 4월부터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처음 시작했을 때 약속했다. 정치 안 하겠다고. 정치를 하면 창투사는 타격받을 수 있다. 어느 날부터 기자회견을 열더니 이런 훌륭한 자금거래 회사 대표이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출마하겠다는 얘기도 했고 정치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러자 FSS(Financial Supervisory Service·금융감독원)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뜨기 시작하면 주목받는다. 그런 조사를 받으면 골치 아파진다. 엠비 리가 정치한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망하기 시작한 거다. 자기가 망쳐놓은 다음 나한테 회복시키라고 했고, 그걸 못하니까 내가 사기쳤다고 공격하는 것이다.

<font color="#216B9C">한국 정부는 당신이 옵셔널벤처스 주가를 조작하고 회사 자금 384억원을 횡령했다고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했다. 옵셔널벤처스는 당신 혼자 설립한 회사 아닌가.</font>

=그 회사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이명박 쪽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검찰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LKe뱅크, 옵셔널벤처스 주식도 판매

<font color="#216B9C">그 회사도 LKe뱅크와 관계가 있나.</font>

=2001년까지만 해도 LKe뱅크가 수차례 뉴비전벤처캐피탈(옵셔널벤처스의 전신) 주식을 계속 팔았다. 팔려면 (주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font color="#216B9C">당신의 변호인 가운데 한 명인 심원섭 변호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다스의 실제 투자금이 24억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와 당신의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font>

=그가 잘 모르고 얘기한 부분도 있고 사실과 다르게 보도됐다고 들었다.

<li>관련기사</li>

▶“이후보 대표지낸 LKe뱅크 BBK의 지주회사 맞다”
▶김경준씨 “이명박씨가 BBK 투자 유치”
▶“BBK, 자기가 창업했다더니 이제 와 딴소리”
▶“빨리 돌아와라, 우리도 바란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