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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의 묵시록

등록 2007-08-24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엔캐리 사태로 세계적으로 주가·부동산 거품 꺼지나</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1996년 12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은 당시 정보기술(IT) 주식에 대한 투자 과열을 가리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고 경고했다. 활황을 타고 있던 미국 증시는 딱 이 두 단어로 하루아침에 폭락했다. 물론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한 이후 10년 동안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주가지수는 91% 더 상승했다.

프라임 모기지와 기업어음으로 부실 확산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엔캐리’(¥ Carry Trade)가 또다시 비이성적 과열이란 말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다 엔캐리 자금 청산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급격히 축소되고, 이에 따라 “전세계적인 주가·부동산 거품 해소 과정이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높았던 것이 이제 정상화되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신용 경색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서브프라임 부실 파장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것일까?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전세계로 전염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프라임 모기지(우량 주택담보대출)나 기업어음(CP) 쪽으로도 부실이 확산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불똥이 프라임 모기지 판매업체에까지 튀면서 우량 모기지 채권에 투자하는 미국 소른버그모기지는 지난 8월15일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배당금 지급을 연기했다. 은 “2조2천억달러(약 2046조원) 규모인 미국 기업어음 시장도 모기지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공포는 세계 곳곳의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 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 날마다 시장에 터져나오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단 자금을 빼고 보자는 불안 심리가 극도로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인우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서브프라임 문제의 근원은 미국 부동산 시장 하락 가능성에 있다. 올해 미국 부동산 가격은 3~5%가량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데, 이처럼 담보가치가 떨어진데다 1%대였던 미국 연준 기준금리가 최근 몇 년간 5%대까지 인상되면서 대출금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70% 정도를 파생상품을 통해 유동화해놨기 때문에 이자율 인하 등 정책수단을 동원해 직접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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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용 경색이 전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엔캐리 자금 청산 움직임까지 나타나자 국내 증시도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최근 “엔캐리 자금 청산이라는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투자자금이 급격하게 회수되면 외환위기와 같은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로 바꿔 주식·채권 등 고수익·고위험 자산에 투자한 투기자금이다. 그동안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에 힘입어 엔캐리는 국제 금융시장의 주요 자금조달원 역할을 했고, 글로벌 유동성 증가와 자산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브프라임 문제가 단기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엔캐리 청산이 또 대두되고 있다”며 “국내 자산시장에 버블이 끼어 있다면 빠르게 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세계 금융의 최대 복병인 엔캐리 자금의 일본 회귀 현상을 부추기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국면이다.

엔캐리 청산 가능성은 지난해 하반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 행진은 멈춘 반면, 경기 회복세에 따른 일본의 금리 인상 전망이 나오면서부터 제기됐다. 미국과 일본 간 금리 격차가 줄어들면서 고금리 시장에 투자하는 엔캐리의 청산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다. 그러나 올 들어 글로벌 증시가 상승 랠리를 펼치면서 엔캐리 청산 가능성은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신용 경색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다시 높아지면서 엔캐리 청산 분위기가 급속히 대두되고 있다.

엔캐리 자금 청산 본격화됐나

세계 금융시장에 퍼져 있는 엔캐리 자금의 규모에 대한 정확한 추산은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7년 4월 현재 엔캐리 자금 규모를 약 1700억달러(약 158조원)로 추정했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최근 2년간 국내로 유입된 엔케리 자금을 6조7천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만, 엔화가 다른 나라의 통화로 바뀐 뒤 유입된 것까지 고려하면 규모가 급격히 증가할 수도 있다.

엔캐리 자금 청산이 본격화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로는 국제 외환시장에서의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지난 8월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00엔당 30.20원 폭등한 844.6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8월13일 이후 3거래일 동안 무려 58.40원 폭등한 것인데, 7월9일(744.80원)에 견주면 최근 한 달 새 100원 가까이 급등했다. 투자금을 회수해 엔화로 환전하는 수요가 늘면서 외환시장에서 엔화 매수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8월14~15일 보유 채권 매각 방식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3조엔가량의 자금을 회수한 것도 해외에서 엔화 투기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분석된다. 최근의 엔화 강세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며, 엔캐리 청산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안전자산 선호가 확산되면서 기축통화인 달러화 사재기 여파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금융센터 김동완 상황정보실장은 “신흥시장에 투자된 엔캐리 자금의 경우 최근 몇 년간의 신흥시장 주가 상승 덕에 아직도 플러스 수익률을 내고 있으나,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자금을 빼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 불안과 엔캐리 청산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 이후 세계경제 성장은 과잉 유동성이 이끌어온 측면이 크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이 오르면서 그만큼 소비가 늘어 이것이 생산을 부추기고 경제 성장을 이끈 것이다.

한국시장, 가장 먼저 빠져나간다[%%IMAGE4%%]

엔캐리 자금 청산이 급속히 진행되고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빠르게 위축되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엔캐리 자금 청산이 세계 경기를 둔화시키고, 이것이 국내에서는 콜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실물 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유동성이 빠져나가면서 당장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이것이 경기둔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흔들려 펀드 환매 사태가 터질 경우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은 일반적으로 이머징마켓부터 자금을 빼내 환매자금을 마련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펀드매니저들은 신흥시장 중에서도 올해 전세계 주가상승률 1위를 기록한 한국 시장에서부터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사실 국내 금융기관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물린 돈은 극히 적다. 그런데도 한국 주식시장이 진앙지인 미국이나 유럽·일본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이 덩치가 작고 변동성이 높은 한국 주식시장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타깃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도 한국에 제일 먼저 하고 빠져나갈 때도 가장 먼저 팔고 떠나는 것이다.

“완만한 속도의 엔캐리 청산은 한국에 호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금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려 원화가치가 절하되면 수출이 더욱 탄력을 받고, 원-엔 환율이 상승해 대일본 수출 경쟁력이 향상되면서 수출 주도의 경기 회복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엔캐리 자금의 대규모 청산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도 있다. 재정경제부는 “현재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는 0.5%이고 미국 연준 기준금리는 5.25%로 4.75%포인트 격차가 있는데, 일본이 한 차례 금리를 인상해도 주요국과의 금리 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에 엔캐리의 급격한 청산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현재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시장의 눈길은 미국 연준과 일본 중앙은행에 쏠리고 있다. 김동완 실장은 “일본 중앙은행이 8월에 금리를 올릴 것으로 봤는데, 이번 사태가 확산되면서 금리 인상이 연말로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이 연기되면 그만큼 엔캐리 청산 움직임도 약화될 수 있다. 또 미국 연준이 부동산 가격 하락세를 저지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소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와 일본의 금리 인상 연기가 최대 관건인 셈이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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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4" color="#216B9C">
1986년, 1998년,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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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arkblue">저축대부조합 파산·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 사태와의 관련성</font>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서브프라임 사태’와 견줄 수 있는 미국 금융위기의 사례로는 1986년의 저축대부조합 연쇄 파산, 1998년의 대형 헤지펀드(개인모집 투자신탁)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가 꼽힌다.
CJ투자증권의 김승한 애널리스트는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 원인’으로 보아선 1980년대 후반의 저축대부조합 연쇄 파산과 비슷하며, ‘진행 상황’에선 LTCM 사태와 닮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미국 부동산 경기 둔화와 이로 인한 대출 부실화의 문제로 저축대부조합 사태와 비슷한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LTCM 사태 때처럼 대출 부실화가 헤지펀드의 파산 위험을 자극하고 이에 따라 투자은행이 연쇄 부실화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이 긴급자금을 집행하고 있는 데 대해 김 애널리스트는 “개별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이 아니라 단기금리 급등이라는 자금시장의 경색을 풀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아직 구제금융이 제공됐던 LTCM 사태 때와 동일한 단계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세계 경기와 국제 금융시장의 상황 또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으로 지적된다. LTCM 사태는 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 선언 등 신흥시장의 금융시장 불안에서 비롯된 반면, 이번 서브프라임 위기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경기 호황으로 세계 경제가 안정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빚어진 미국의 금융위기라는 점에서다.
다만, 현재 금융시장의 문제가 헤지펀드의 신용 파생상품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확실성의 문제라는 점에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LTCM 사태 때와 비슷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제기되고 있다. 김승한 애널리스트는 “LTCM 사태 당시 신용경색이 확산되며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 급등과 엔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의 일본 엔화로 고금리 통화를 매입해 운용한)의 청산을 가속화한 바 있다”며 “서브프라임 위기로 엔-달러 환율 변동폭이 커져 엔캐리 청산을 자극할 것인지가 주요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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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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