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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자동결제의 화려한 낚시질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친하게 지내고 싶다’ ‘무료체험’ 등으로 현혹해 매월 돈을 빼가는 콘텐츠 제공업체들

▣ 김현우 인턴기자(한국외대 신문방송학4) 777hyunwoo@hanmail.net

대학생인 강아무개(23)씨는 8월7일 휴대전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곧이어 ‘프로필이랑 사진’이라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누구지?’ 싶어 확인키를 누르니 휴대전화 무선 인터넷인 ‘네이트온’으로 연결됐다. ‘사진 보기’와 ‘문자 보내기’ 항목이 떴다. 사진을 보니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심코 ‘잘못 보내신 것 같은데요’라는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몇 분 뒤 ㅋ사에서 2990원이 소액결제됐다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피해 사례 폭발적으로 늘어

강보영(27)씨는 올 1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박적중 운세 7일간 무료체험’이라는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와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했다. 그런데 7개월이 지나서야 휴대전화 사용료에서 매달 4천원씩 추가로 정보이용료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입된 휴대전화 통신사에 문의했더니 결제 대행사로 알아보라고 했다. 대행사에 문의했더니 이 이벤트를 낸 ㅍ 사로 요금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정회원으로 가입된 사실도 몰랐지만, 지난 7개월 동안 요금이 자동결제되고 있다는 어떠한 공지도 받은 적이 없었다. 뒤늦게나마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계속 요금을 냈을지 모른다. 분통이 터졌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휴대전화 소액결제나 자동결제를 이용해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사기’가 늘고 있다. 아는 사람인 것처럼 문자를 보내 무선 인터넷에 접속하게 한 뒤 서비스 요금을 가져가거나, 일정 기간 이용하는 서비스인 것처럼 가장한 뒤 지속적으로 요금을 인출해가는 자동결제 등이다. 피해자가 우후죽순으로 늘어 관련 피해자 모임까지 생겼다. 인터넷 다음 카페 ‘휴대폰 소액결제 피해자 모임’(이하 피해자 모임)에는 피해 사례가 하루 평균 20건 정도 올라오고 있다. 이 카페는 개설 당시인 2004년 993명이 가입했지만 2007년에는 7월까지만 8831명이 가입했다. 현재 총 가입자 수는 2만7천여 명이다. 관련 민원이 폭주하자 올 초 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은 휴대전화 결제 피해를 전문으로 다루는 중재센터도 만들었다. 이곳에는 한 달 평균 300여 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이 소비자를 ‘낚는’ 방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대학생인 우아무개(22)씨는 휴대전화로 ‘롯데상품권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확인’ 버튼을 누르니 무선 인터넷으로 접속됐다. ‘상품 다운받기’가 떠서 클릭했다. 퀴즈를 푸는 코너로 바로 접속됐다. ‘퀴즈를 풀어야 상품을 주나 보다’라고 여기고 풀었는데, 퀴즈가 계속 이어졌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요금 내역을 조회했다. 이미 3만600원이 청구된 상태였다. 똑같은 사례가 피해자 모임 관련 게시판에 수백 건 올라와 있다. 이 밖에도 팝업창에 악성코드에 감염됐다는 글을 올려 자동결제를 하게 한 뒤 4개월(120일) 이내에는 해지도 못하게 하거나, 전화로 통신비를 줄여주겠다고 유인해 무료 통화권을 주면서 추가로 돈을 내게 하는 일도 잦다.

피해가 이렇게 확산되는 것은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CP·Content Provider)에 대한 명확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통신요금을 부과하는 곳은 세 갈래로 나뉜다. 통신사(KTF·SK 등), 결제대행사(온세통신·인포허브 등), CP(ㅍ사·ㅋ사 등)이다. 하지만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전자금융거래사업자로 금융감독원과 재정경제부의 통제를 받는 곳은 통신사와 결제대행사까지다. CP는 통제를 받지 않는다. 정보통신부 인터넷정책팀 김종호 팀장은 “CP 업체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성인 사이트처럼 하루에도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없어지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CP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피해가 늘어도 제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유료상품’

피해가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는 큰돈이 아니면 피해자가 눈치채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신사는 ‘정보이용료’ 명목으로 소비자에게 요금을 청구하는데, 이 목록에는 결제대행사까지만 표시되고 CP는 표시되지 않는다. 따라서 소비자가 정보이용료 요금을 자세히 따져보지 않으면 CP로 돈이 나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정기적으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몇 개월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나마도 통신사 → 결제대행사 → CP 등을 거치며 일일이 문의해야 알 수 있다.

그러나 CP 업체 쪽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다. 서비스 요금을 부과할 때 이를 문자나 메일로 공지한다는 것이다. ㄷ사 의 한 상담원은 “요금 결제가 이뤄지면, 결제 안내가 문자로 공지된다. 또 인터넷으로 결제할 때 자동결제라고 3번이나 알린다. 이걸 보지 못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 모임의 김호기(59) 운영자는 “가입한 줄도 모르고 있거나 결제해야 할 돈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메일이나 문자로 공지가 오면 스팸으로 여기게 마련”이라며 “문제는 CP 업체가 소비자에게 이 서비스는 자동결제라고 명확히 공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앞서 강보영씨가 응모한 ‘대박적중 운세 7일간 무료체험’ 광고를 보면, 맨 밑에 알아보기 힘든 깨알 같은 글씨로 ‘본 상품은 월정액 유료상품’이라고 나와 있다.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글자 크기는 업체가 정하는 것, 이를 규제하는 내용의 법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보팀 김지원 조사관은 “글자 크기가 어떻든 광고 화면에 서비스 유료 가입에 대한 직접적 고지가 있다면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결제 피해가 급증하자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2006년 12월 ‘피해주의보’를 내리기도 했다. 특정 사안에 피해가 급증하면 소비자들에게 예방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날로 늘어나는 피해 규모를 볼 때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지난 4월 정보통신부에서는 CP 업체의 이런 행태를 법적으로 제재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제대로 심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호 팀장은 “이 법이 통과되면 서비스에 대한 민원이 발생했을 때, 결제대행사에서 CP로 대금이 지불되는 것을 일시 중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현재는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들 집단소송 추진

참다 못한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홍창호(31)씨는 또다른 ㅍ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는 지난 6월25일 휴대전화로 아는 사람인 양 문자가 와서, 네이트온 ‘폰피함’(폰+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예상하지 못한 요금을 청구받았다. 피해자 모임의 김호기씨는 “피해 금액이 소액이라 신고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에게는 쌈짓돈이지만 한번에 최소 몇천 명을 대상으로 하는 업체에는 큰 수익이 된다. 소액이라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더 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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