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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반란인가, 다수의 폭력인가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비판자를 찾아내 맹렬히 공격하는 네티즌들, 합리적 토론은 실종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마침내 다수의 세상이 도래한 걸까? 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했던 기자, 평론가 등이 온몸으로 대중의 분노를 사고 있다. 영화전문지 김도훈 기자는 7월30일 “(영화가) 재미없었다”라며 “그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명석한 팬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심형래를 더욱 제대로 잘 키워낼 수 있다”고 블로그에 썼다가 231개의 댓글 세례를 받았다. “대중을 얕잡아보지 마라” “당신이 심형래 감독을 키운다니 오만하다” 등의 내용이다. 를 ‘1억원짜리 맛없는 떡볶이’에 비유한 남성패션지 〈GQ〉 문화담당 허지웅 기자의 글에도 유례없이 1953개의 댓글이 달렸다. 개인 블로그로는 댓글 신기록으로 여겨진다. 댓글의 요지는 “당신의 선민 의식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공격성은 어디서 나온 걸까

8월9일 ‘, 한국 영화의 희망인가’를 주제로 열린 문화방송 의 시청률은 평소의 세 배인 4.7%를 기록했다. 다음날까지 시청자 게시판에 1만4천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관객 동원도 9일 만에 400만 명을 돌파해 같은 천만 관객 영화보다 빠르다. 열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전문가 집단에 대한 대중의 반란일까, 대한민국 영화 대표선수 심형래에 대한 뜨거운 지지일까?

는 등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이송희일 감독이 블로그에 쓴 글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들어섰다. 그는 “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라고 직설적인 비판을 했다.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도 “심형래 감독이 조금 더 겸손해야 한다”라며 거들었다. 그들의 발언은 곧장 ‘심형래 vs 이송희일, 김조광수’라는 대립 구도로 이어지면서 네티즌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마침내 비판은 ‘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번졌다.

이송희일 감독의 블로그는 네티즌의 집중포화로 폐쇄됐다. 성정체성을 비난하는 글까지 올라오며 ‘이송희일 논란’이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곧이어 ‘이송희일 안티카페’도 등장했다. 허지웅 기자는 글을 쓴 이후 하루에 수십 통씩 “니가 그러고도 기자야?”라고 소리치는 전화를 받았다. 를 “B급 아동영화”라고 평한 김세윤 영화평론가는 자신이 작가로 있는 라디오 방송 게시판에 네티즌들의 공격이 가해져 업무에 상당한 지장이 생겼다.

네티즌들의 공격성은 어디서 발동한 걸까. 를 지지하는 이들은 다음 같이 쓰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심형래 감독님이 힘들게 작업해서 간신히 만든 영화가 다. 적어도 CG(컴퓨터 그래픽) 면에서나 기타 여러 가지 면을 봐도 다른 영화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훌륭하)다” “심형래는 영화 속 배우가 ‘THIS IS A KOREAN LEGEND’라고 대사를 말하는 순간에 울었다. 당신들 비참하게 머리 깎고 구걸할 때 심형래는 할리우드에서 촬영 허가 받으러 뛰어다녔다.” 심형래는 난관을 극복하고 한국 CG 기술을 발전시켰고, 할리우드에서 한국 영화를 찍으며 고군분투한 성공신화인 셈이다. 심형래의 이런 이미지는 지난 8월1일 방송된 문화방송 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널리 퍼졌다. 이날 방송에서 심형래는 할리우드에서 일궈냈던 고생 끝 성공담을 풀어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LA 시장에게 이메일을 써서 LA 도심 촬영 허가를 받은 일, 미국 드라마 , 영화 등에서 영화음악을 했던 스티브 자블론스키에게 무리하게 음악감독을 맡겨 성공한 일 등은 그것 자체로 ‘인간극장’이다.

“심형래 혼자만의 성공으로 비춰져서야”

게다가 심형래 스스로도 그의 영화를 작은 ‘심월드’로 만들었다. 심형래 얼굴을 부조로 뜬 ‘영구아트무비’ 로고로 시작하는 영화는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찍은 그의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니가 용가리 통뼈냐” “나만 영구 된 거 알아” 같은 개그맨 심형래의 향수를 자극하는 대사들이 이어진다. 악한 이무기인 부라퀴가 짓밟는 동물원은 ‘심의 동물원’(Sim’s Animal Park)이고 2분간 “내가 해냈다”라고 읊조리는 에필로그는 영화 자체가 이무기의 전설이 아니라 심형래의 성공담을 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의 전략은 주효해 심형래의 성공은 한국인의 성공으로 여겨진다. 대다수의 관객은 영화 중반부터 펼쳐지는 화려한 CG 장면에서 심형래 감독의 얼굴을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에 출연한 직후 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않아서 자신의 정체성을 국가나 영웅을 통해서 대리 실현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심형래 아저씨의 성공에 자신을 투사해 기뻐하고 슬퍼하는 형세다.

그러나 심형래의 성공담은 심형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영화평론가 김세윤은 “아무도 를 주목하지 않던 2005년 영구아트무비의 고행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기 때문에 영구아트무비 식구들의 어려움과 노력을 다 알고 있는데, 영화가 심형래 감독 혼자만의 것으로 비춰지는 점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심형래의 성공담에 감동한 네티즌들이 를 비판한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다는 점이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인터넷 매체의 성격이 결합해 생긴 결과다. 허지웅 기자는 “운영하고 있는 커뮤니티 정기모임에 사람들이 찾아오라고 올려둔 휴대전화 번호를 검색해서 알아내 전화까지 한 것 같다”며 “개인정보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보복하는 게 요즘 ‘넷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송희일 감독과 함께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김조광수 대표는 지난해 홍보를 위해 벌인 ‘333운동’ 때문에 “다단계 행각 아니냐”라는 비판을 받았다.

용은 논란을 물고 승천하는가

휴대전화 번호, 성정체성, 몇 달 전에 그가 한 일까지 ‘아무 비밀 없이’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형국에서 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디빠’(를 좋아하는 사람들)와 ‘디까’(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다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황이 되었다. 평론가들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만듦새에 주목하는 내재적 비평을 하고 있고, 대중은 심형래라는 개인적 업적에 주목하는 외재적 비평을 하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느라 합리적 비판은 더더욱 실종되는 모양새다. 여기에 심형래가 영화 끝에서 밝혔듯 “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국제적 야심이 ‘성공’을 꿈꾸는 수많은 국민 개개인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영화관 밖에서 뜨거워진 열기가 다시 영화관으로 이어지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직후 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278명 중 절반 이상이 “토론 직후 영화가 더 보고싶어졌다”고 답했다. 지난 4일 ‘이송희일 논란’ 이후 주말 예매율이 10% 상승하기도 했다.

의 이무기는 여의주가 있어야 용으로 승천하는 운명을 지녔다. 지금 벌어지는 뜨거운 논란이 가 천만 관객 영화로 승천하기 위해 필요한 여의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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