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객은 여행지 환경과 문화를 존중할 책임이 있다’… 청소여행, 자전거 투어 등 다양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제주생태관광 제공
지난해 9월 말 네팔의 안나푸르나로 트레킹을 다녀온 학원강사 정미연(37)씨는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설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쪽팔려서”다. 정씨는 배낭만 한 쓰레기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주우며 트레킹을 하는 몇몇 유럽인들을 만났다. 요즘 유럽에서 뜨고 있는 에코투어(Eco-tourism), 친환경적인 ‘책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신선한 느낌도 잠시 “얼굴이 화끈거려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했다. 쓰레기 봉투에는 컵라면과 새우깡 봉지 등이 적지 않게 담겨 있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정씨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한국 여행객들의 ‘무책임한 모습’이 오버랩돼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200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
책임여행이란, 여행객은 여행하는 곳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매너 있는 여행’이다. ‘네팔 히말라야 쓰레기 줍기’처럼 적극적인 여행뿐만 아니라, 여행하는 곳의 현지인들이 좋아할 선물을 준비하거나 여행지의 전통을 따르는 것도 포함된다. 가난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생각해 다국적 체인 레스토랑 대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숙소를 이용하는 것도 작지만 의미 있는 책임여행이다.
책임여행은 1992년 리우회담에서 ‘대안관광’이 제시되면서 처음으로 그 개념이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한다. 2001년 처음으로 책임여행을 표방하며 만들어진 영국 여행사 ‘리스폰서블트래블닷컴’(www.responsibletravel.com)을 이용한 여행객은 지금까지 2만5천 명, 매년 매출이 4배씩 증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슬로트래블’(www.slowtravel.com), ‘그린글로브’(www.greenglobe.org), ‘에티컬이스케이프’(www.ethicalescape.co.uk) 등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여행사와 여행 관련 단체들이 책임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책임여행사에서는 어떤 상품을 내놓고 있을까? 리스폰서블트래블닷컴은 앙코르와트 청소여행, 베트남 요리 배우기 여행, 프랑스 요가 여행 등 일반 여행사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상품이 많다. 스페인 알리칸테 걷기 여행, 프랑스 남부 자전거 투어, 스코틀랜드 카약 여행 등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도 눈길을 끈다. 비행기는 이산화탄소를 엄청나게 배출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적되는 탓에 개발한 상품이다. 그렇다고 청소, 자전거 투어, 걷기처럼 지친 몸을 쉬려는 이들에게는 ‘엄두’가 안 나는 여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관광여행과 같으면서도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곁들인 상품도 있다. ‘터키 안탈리아 해안 여행’은 일반 여행상품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행 수수료로 지불한 일정 금액은 그 지역의 바다 거북이를 보호하는 데 쓰인다. 이 여행사는 홈페이지에 각각의 상품들이 현지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배낭여행 전문 ‘트래블게릴라’의 김슬기씨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책임여행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많지 않다”며 “일부 요구가 있긴 하지만, 상품화하기에는 너무 ‘실험적’”이라고 말했다. ‘소극적 의미’의 책임여행을 기획해도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지 않다. 아직은 ‘저가 여행’ ‘폭탄 세일 여행’ 등 패키지 관광에 사람들이 몰리는 실정이다. 이런 여행은 현지 가이드와 소규모 여행사를 결과적으로 ‘착취’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책임까지 생각하며 여행 비용이 ‘더 드는’ 상품을 고르는 이들을 찾기는 힘들다.
현지인과 의상 코드를 맞추는 건 어떤가
하지만 뜻있는 이들이라면 여행사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굳이 상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책임여행을 시도할 수 있다. 현지인들의 의상 코드(code)에 맞춰 옷을 입거나, 여행지의 특징을 미리 공부해 현지에서 문화적으로 금기시하는 행동을 자제하는 등 여행자 스스로 ‘규범’과 ‘원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여행하면 그게 바로 책임여행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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