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자 석방엔 앞장서고 자국민에겐 모르쇠, 협상 중재자 체포하기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이탈리아는 탈레반과 그 동조 세력과 맞서 싸우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도의 동맹군에 2천 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수감자 석방은 이런 우리의 인식에 따른 예외적인 조치였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일간 기자 다니엘레 마스트로지아코모가 탈레반에 납치됐다 풀려난 직후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대변인인 모하마드 카림 라히미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마스트로지아코모 기자의 석방을 위해 탈레반 지도급 수감자 5명을 풀어줬음을 밝힌 그는 “앞으로 더 이상의 수감자 석방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카르자이 정권은 이런 ‘공언’을 곧장 실행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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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나쉬크반디는 결국 살해돼
마스트로지아코모 기자는 지난 3월5일 남부 헬만드주에서 취재 도중 납치됐다. 납치 당시 그는 운전기사인 사예드 아가, 통역인 아프간 언론인 아즈말 나쉬크반디와 함께 탈레반에 끌려갔다. 탈레반은 운전기사 아가를 납치한 지 며칠 만에 살해했다. 마스트로지아코모 기자는 석방된 뒤 쓴 기사에서“내 눈 앞에서 아가를 ‘참수’해 주검을 강물에 버렸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마스트로지아코모 기자를 석방한 뒤에도 통역인 나쉬크반디를 풀어주지 않았다. 새로운 요구 조건이 내걸렸다. 탈레반 수감자 2명이 나쉬크반디의 목숨 값으로 매겨졌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수감자 석방은 없다”는 원칙을 지킨 게다. 나크쉬반디는 결국 4월8일 오후 탈레반에 의해 ‘처형’됐다. 당일 헬만드주 탈레반 대변인이라고 자신을 밝힌 샤하부딘 아탈은 등 외신에 전화를 걸여 이렇게 주장했다.
“이탈리아 기자 석방 때와 마찬가지로 아즈말 나쉬크반디의 석방을 위해 탈레반 수감자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탈리아 기자 석방을 위한 맞교환에는 응했던 아프간 정부가 자기 국민에 대해선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나쉬크반디를 죽음으로 내몬 것과 정반대로 카르자이 정부가 지나친 ‘관심’을 보인 인물도 있다. 바로 마스트로지아코모 기자 석방 협상의 중재 역할을 한 라흐마툴라 하네피다. 이탈리아 구호단체인 ‘이머전시’의 병원 운영 책임자였던 하네피는 지난해 10월 탈레반에 납치됐던 이탈리아 출신 사진기자 가브리엘레 토르셀로의 석방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바 있다. 당시 하네피는 토르셀로의 몸값 200만달러를 직접 납치범들에게 넘겨주고 토르셀로의 신병을 넘겨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마스트로지아코모 기자 일행이 납치된 직후 석방 협상에 그가 투입된 것도 이 때문이다.
운전기사 아가가 살해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하네피는 이번에도 타협점을 찾아냈다. 하지만 지루한 밀고 당기기 끝에 납치된 지 2주 만인 3월18일 마스트로지아코모가 풀려난 직후 아프간 당국은 돌연 하네피를 체포했다. 두 차례 성공적으로 외국인 2명의 목숨을 구해낸 것이 죄였다. 탈레반 연루 혐의를 뒤집어쓴 그는 아프간 정보부에 구금된 지 석 달여 만인 지난 6월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아프간 정부가 위태로운 이유가 있다
하네피 석방운동에 동분서주했던 지노 스트라다 ‘이머전시’ 대표는 영국 일간 등과 한 인터뷰에서 “포로 교환이 가능하려면 양쪽이 신뢰할 만한 제3자의 중재가 필요한데, 하네피가 그 일을 해낸 것”이라며 “인질이 석방된 뒤 협상 중재자를 체포한 것은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네피는 구금 기간 동안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맹과의 관계’는 소중하다더니, 자국민의 목숨과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가? 카르자이 정권이 위태로운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닌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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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따라 목숨값이 매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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