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경선 이후의 전망…당권 노리며 비협조하거나 범여권과 거래할 수도제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시작한 것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두 사람 사이에 파인 감정의 골은 그 기간만큼이나 길고도 깊다. 8월19일 경선은 갈등의 종착역이 될까,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시발점이 될까.
한나라당 안팎의 전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1년 넘게 개와 고양이 사이로 지내온 두 사람에게 정권교체를 향한 2인3각 행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비관론의 배경은 대선이 끝나고 곧바로 총선이 치러진다는 조건과도 맞닿아 있다.
다음 총선에서 지분 노려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 캠프에서 상대방을 향해 쏟아내는 말을 들어보면 정치적 살기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형식적 화합은 몰라도 내면적 화합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단했다.
윤 전 의원이 말한 내면적 화합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은 우선 ‘가만히 있기’이다. 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도 않는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없는 게 도와주는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중립 지대에 있는 한 인사는 “경선에서 패한 쪽은 내년 총선에서의 지분 확보를 위해 당권이라도 얻으려 할 텐데, 이를 위해서라면 당의 후보가 대선에서 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71년 대선의 경우가 그랬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에서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이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 경선 결과 신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사람은 김대중이었다. 하지만 김대중은 훗날 본인 스스로 밝힌 것처럼 당권을 가진 사람들의 비협조 때문에 공화당 후보로 나선 박정희에게 근소한 차이로 졌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고도 경쟁자로 나섰던 이인제 의원의 도움을 전혀 얻지 못해 막판까지 고전해야 했다.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한 정몽준 의원도 공동유세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투표 전날엔 지지를 철회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가 당내 세력을 거의 양분하고 있는 지금의 한나라당 상황을 살펴보면 이런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대선이 총선과 연이어 치러지는 만큼 경선 승자의 대선 패배는 곧 다른 한쪽 세력이 총선을 통해 부활을 노릴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더욱 곤란한 상황은 경선 이후 진 쪽이 탈당하는, 당의 분열이다. 선거법이 개정되어 경선 불복이 불가능하다지만, 탈당 뒤 출마를 막았지 탈당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다. 경선 낙선자 쪽에서 당권이나 지분을 얻어낼 만한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한나라당의 분열을 바라는 범여권과 손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종찬·이인제의 전례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범여권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각각 이인제, 노무현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영남에서 30% 정도의 표를 얻어내야 한다”면서 “독자적으로 영남표를 가져올 유력 후보가 없는 범여권으로서는 한나라당의 분열을 통해서라도 이 표를 가져오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다음 총선에서 철저하게 배제될 것이라는 한나라당 경선 낙선자 쪽의 두려움이 정권 재창출을 향한 범여권의 바람에 반응한다면 한나라당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공천 배제’에 대한 공포는 이미 공천 살생부 논란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이 후보 쪽 정두언 의원은 곽성문·이혜훈 의원을 겨냥해 “다음 총선에서 출마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해 파문을 일으켰고, 박 후보 쪽 김무성 의원 역시 살생부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당 윤리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심지어 이 후보 쪽의 전국구 의원인 진수희 의원이 박 후보 쪽 이혜훈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서초갑으로 이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진 의원이 이 의원의 지역구를 점찍어 놓았다는 이야기가 최근까지 떠돌기도 했다. 이혜훈 의원은 “진 의원의 이사는 총선과 전혀 상관없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진 의원은 서초갑에 아무 연고가 없는데 만약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 8월2일 영남의 유권자 7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한나라당의 불안한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 이후 이명박, 박근혜 후보의 분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영남 유권자의 63.9%는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고 응답했다.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응답은 전체의 7.5%, ‘별로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응답은 전체의 23.9%에 불과했다.
8월19일 경선을 치른 뒤 승자와 패자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손을 잡을 가능성도 물론 생각해볼 수 있다. 영남의 한나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 심리는 매우 강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뭉개거나 당을 뛰쳐나가는 행위는 도박에 가까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대선 당시의 행적이 바로 총선의 성적표로 이어질 수 있다.
박근혜·이명박 후보 쪽은 경선이 끝나면 상대편과 함께 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모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이명박 후보와 오랫동안 함께해온 정태근 특보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겼을 때도 이 후보는 상대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포용했던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 쪽 유승민 의원 역시 “박근혜 대표는 오랜 당대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의원들을 충분히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을 이미 보여줬다”고 말했다.
승자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는 모두 자신들이 승리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1년이 넘는 전쟁을 치른 뒤 패배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승자가 내미는 손을 선뜻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후보 당사자나 국회의원들은 사진 찍힐 때만이라도 웃으면서 악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양쪽 캠프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1년 넘게 으르렁대다보니 이제는 거의 원수처럼 지내고 있다”며 “이런 상태에서 과연 당의 통합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 2위를 기록하는 양강 후보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현실은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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