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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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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은 모르겠지만 안직까지는 박근혭니다”

등록 2007-08-10 00:00 수정 2020-05-03 04:25

최대 접전 지역인 대구 민심 기행…검증 영향 크지만 젊은층에선 이명박 강세

▣ 대구= 글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대구·경북(TK) 지역은 흔히 한나라당의 본산으로 불린다. 부산·경남(PK)과 영남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이면서도 PK와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핵심 측근은 이를 ‘TK 정서’라고 규정했다.

“약점 없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역풍을 맞아 궤멸적 참패를 당할 뻔했던 한나라당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도 대구·경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표가 총선 직전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면서 이 지역에서부터 한나라당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부산·경남까지 바람을 확산시킨 뒤 다시 수도권으로 북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8월19일 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가 대구·경북에 쏟는 정성도 각별하다. 특히 두 사람은 저마다 TK주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는 경북 포항이 고향이고, 박 후보는 대구 달성군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최대 접전 지역으로 떠오른 TK, 그 가운데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의 민심은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8월1일 오전 10시께, 동대구역 앞에서 장기판이 벌어졌다. 판이 마무리될 무렵 장기판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경선에 참여한다면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 가운데 누구를 찍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택시기사 안영도(62)씨가 먼저 나섰다. “이 지역에서는 박근혜 지지를 많이 하지요. 이명박씨는 흠이 많애 가지고 공약을 많이 내놓아도 안 된다고 보거든요. 젊은층에게 물으면 이명박씨 지지한다고 그칼지 모르지만 여 와가 물어보면 안직까지는 전부 다 박근혭니다.”

안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료 최영곤(64)씨가 거들고 나섰다. 최씨 역시 같은 이유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공화당 때 어떤 수법이 있었냐면 선거판이 공화당에 불리했단 말이야. 그러면 꽝 하고 전방에 한 방 터뜨렸어요. 이명박이 한나라당으로 대선 출마 안 합니까. 그러면 절마들은 또 해도 했다 카고, 안 해도 했다 칼 텐데, 그렇다면 약점이 없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거예요.”

동대구역 앞에 길게 늘어선 빈 택시의 주인들은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한나라당 경선 관련 토론을 시작했다. 두던 장기는 뒷전이고 택시도 점심시간까지는 그대로 놀리겠다는 태세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대체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보다 높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다.

“옛날부터 투표함은 깨봐야 알고 아는 낳아봐야 안다고 했다. 그리 약점이 많아가 이명박이가 된다고 누가 보장하나. 끝을 마쳐봐야 알지. 역전승을 할 수도 있는 문제고.”

“밑바닥을 몰라가 그래요. 여긴 거진다 박근혭니다. 여론조사는 어디서 하는지 몰라도 여 와가 들어봐야 민심을 압니다.”

이들이 이명박 후보보다 박근혜 후보를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후보로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검증 공방에서 불거진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인한 이 후보에 대한 반감도 일정 부분 작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박균현(71·무직)씨는 “경제는 누구나 살린다고 할 수 있지만 대선에서는 흠이 있는 사람을 내놓으면 한 방에 떨어질 수가 있다”면서 “박근혜는 한번 맡겨볼 만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이유로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황아무개(51·회사원)씨는 “여권에서 이명박 후보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그만큼 그가 두려운 상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한 뒤 “박근혜 후보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이 후보가 먼저 나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이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서 당선되고 박 후보는 다음 대선에서 나온다면 한나라당이 10년 동안 집권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바람인 것이다.

“경제 분야에선 아무래도 기업인 출신이…”

한나라당의 경선 후보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호불호는 대체로 ‘본선 경쟁력’에서 갈리는 셈이었다. 이상학 한나라당 대구시당 사무처장은 이같은 현상을 TK 지역의 강렬한 정권교체 바람과 연관지었다. 이 사무처장은 “대구·경북 지역 여론조사를 보면 올 초부터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이 후보를 앞지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 후보를 겨냥해 가해지는 검증 공세의 영향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정작 본선에서는 아들 병역비리 의혹 등으로 번번이 낙마한 사례가 대구·경북 주민들에게는 쓰디쓴 교훈이 됐다는 뜻이다. 아울러 검증 공방을 주도한 인물이 모두 TK 사람들이다 보니 의혹이 좀더 설득력을 얻었을 수도 있다. 박 후보 쪽 유승민·곽성문 의원은 대구에 지역구를 두고 있고, 김재원·최경환 의원의 지역구는 경북이다.

대구 칠성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 한쪽에 마련된 식당에서 중년 남성 두 명이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최국도(56·KD텍 대표)씨는 기자가 신분을 밝히며 다가가자 대뜸 뒷주머니에 꽂힌 350만원짜리 약속어음을 꺼내들었다. “노가다 대금 받으러 갔더니 5개월짜리 어음을 내놓는기 지금 대구 실정이라 고마. 대구 경기가 이리 나쁘다고. 그러니까 경제를 좀 아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거 아입니까. 박근혜씨는 깨끗하고 다 좋은데, 경제 분야에서는 아무래도 기업 출신인 이명박이 낫지.”

옆에서 파를 다듬고 있던 식당 주인 최순호(62·여)씨가 “박근혜가 욕심은 없는 거로 뵈는데 정치적으로 남자보다 잘하겠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워낙 확신에 찬 어조의 최씨에게 짐짓 이명박 후보가 흠이 많다는데 본선에서는 불안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없어요.” 역시 자신감 넘치는 말투다. 최씨는 “여당 사람들은 인물이 없어서 갈매기떼마냥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는 게 일인데 불안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익기(48) 칠성시장 상인연합회 회장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이명박 후보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시장 상인들 입장에서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후보를 원하죠. 그러면 누구겠어요. 30~40대 상인들은 남녀를 떠나서 이명박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면서도 이 회장은 검증 공방을 지켜보면 다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는 속내를 털어놨다. 과일을 판매하는 이문옥(60·여)씨 역시 원래 이명박 후보를 좋아했는데, 최근 검증 공방 때문에 박 후보 쪽으로 마음을 돌린 경우다.

중·장년층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과 달리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이명박 후보에 대한 호감도가 월등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다만 이들의 경우 한나라당 경선은 물론 정치 자체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세론 형성하면 급격한 쏠림현상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는 유호중·이순기(21)씨는 “이명박 후보가 나은 것 같지만 테레비에서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어영우(28)씨 역시 “남자와 여자의 대결이기 때문에 이명박이 나은 것 같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젊은 유권자들이 보이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엿보이는 이 후보에 대한 불안감. 대구의 현재 민심을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박근혜 후보 쪽이 공략해야 할 지점도 분명해 보였다.

박 후보 쪽 유승민 의원은 “대구에서도 밑바닥 정서는 (박 후보 쪽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면서 “고소득, 고학력 계층에서는 아직 이명박 후보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밑바닥과 중·장년층에서는 기본적으로 이 후보로는 안 된다는 정서가 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남은 기간 동안 대구·경북 판세를 판단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도 있다. 어느 한쪽이 대세론을 형성하는 경우다. 지금은 여론조사 시기와 주체에 따라 TK의 판세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우세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경선이 가까워지면서 어느 한쪽이 대세론을 형성하게 되면 어느 지역보다 급격한 쏠림 현상을 보여줄 곳 역시 대구·경북이라는 게 한나라당 TK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TK공략 방법은?

박근혜는 ‘동남풍’ 전략, 이명박은 스킨십 늘리기

대구·경북 지역 유권자의 비율은 전국 대비 1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 쪽이 TK 지역에 들이는 공은 그 이상이다. TK 지역이 갖는 상징성과 한나라당 지지층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TK 지역에 대한 양쪽의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 박 후보 쪽은 이미 수도권의 전세는 뒤집기 어려워진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선 당일까지 수도권의 격차를 최대한 줄여보려 노력은 하겠지만 대신 사정이 나은 TK에서 압승을 거둬 이를 만회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계산이 맞아떨어지기만 한다면 2004년 총선 때처럼 TK 바람을 부산·경남으로 내려보내고, 이를 다시 수도권으로 북상시킬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른바 ‘동남풍’ 전략이다.
박 후보 쪽 인사로 분류되는 경북도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박 후보 쪽이 근소한 우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만약 TK 지역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 표라도 더 얻는다면 이번 경선에서 박 후보가 이길 방법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후보 쪽 대구선대위 정해용 상황실장은 “탈레반 인질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대구에서 확실히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는데, 지금으로서는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것이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명박 후보 역시 대구·경북을 전략지역으로 공략하고 있다. 특히 이 후보는 자신의 연고가 TK 지역이라는 사실이 박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고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가고 있다.
7월25일 대구를 방문한 이 후보는 “내가 경상도 사람인데 경상도 사람으로 잘 안 알아준다”면서 “우리 집사람은 대구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졸업했고, 우리 어머니 고향은 대구 반야월”이라고 강조했다.
또 대구를 지역구로 둔 박근혜 후보보다 이 지역 당원·대의원들과의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최대한 접촉 빈도를 높여가고 있다. 본인뿐만 아니라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주호영 의원까지 대구 수성에 내려가는 횟수가 늘었고, 부인 김윤옥씨 역시 대구를 자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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