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747만원 냈는데 강의는 ‘버벅버벅’, 국제대학 학생들 ‘불만만 쌓이네’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미국 아이비리그(Ivy league) 수준의 교육을 하겠다.”
지난 2005년 가을, 정창영 연세대 총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UIC·Underwood International College)을 ‘한국의 아이비리그’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UIC는 전 교과과정을 영어로 수업하는 한국 최초의 국제대학으로, 각 분야마다 국제적인 안목과 탁월한 의사소통 능력을 겸비한 전문가와 리더를 육성하겠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2006년에 문을 열어 △문학과 문화 △경제학 △정치학 △국제학 △생명과학과 기술 등 5개의 전공 과정이 개설됐다. 2007년 3월에는 ‘국제학부’에서 ‘단과대학’으로 승격됐다. 단과대학이라지만 인문계와 이공계를 아우르는 ‘대학 안의 또 다른 대학’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UIC가 탄생한 지 한 학기가 지났다. 정 총장의 말대로 UIC는 학생들에게 ‘아이비리그’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을까?
연세대가 국제대학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단과대학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획기적이지만, 한국의 대학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거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 대학들이 처한 상황은 ‘사면초가’이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고등학교 졸업생 수는 계속 감소하는 한편, 한국 대학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해외 유명 대학으로 진학하고 있다. 교육 개방을 앞두고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내 내로라하는 대학들조차 각종 국제적인 대학 평가에서 상위 200위권 안에도 못 드는 등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연세대도 예외는 아니다. 2006년 10월 영국 에서 발표한 세계 200대 대학에 서울대 63위, 고려대 150위, 한국과학기술원 198위였지만, 연세대의 이름은 없었다. 2005년에도 연세대는 세계 200대 대학 순위에 들지 못했다. 연세대가 고려대에 밀린다는 소문이 돌았고, 정창영 총장의 사퇴론도 불거져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UIC는 ‘송도 캠퍼스’와 함께 연세대 위기론을 타개할 꿈이자 희망이었다.
국내외 언론 “역유학 트렌드 만든다”
국내외 언론들도 ‘아시아의 아이비리그’라며 UIC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몇몇 언론은 UIC가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인 도널드 존스턴, 2002년 노벨상을 받은 스위스 연방과학기술원의 쿠르트 뷔트리히 교수 등 세계적 석학을 석좌교수로 초빙해 강의를 개설할 정도로 교수진이 훌륭하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해외 명문대학에 합격한 우수한 인재들이 UIC를 선택한다면서 ‘역유학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고도 소개했다.
그러나 기대가 무너지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비리그 수준의 교육도, 노벨상 수상자의 강의도 예상과는 달랐다. 다만 아이비리그 뺨치는 비싼 등록금만 존재했다. 2007년 UIC 입학생의 한 학기 등록금은 747만원, 2학년생의 등록금은 656만원이다. 연세대 문과대학 2007년 한 학기 등록금인 331만원의 두 배 이상이다. UIC 재학생 민효정(20·가명)씨는 “UIC에 많은 것을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UIC에서 언론 플레이를 지나치게 한 것 같아요. 노벨상 수상자 등 외국인 교수들을 유치했다고 언론에 나와서, 교수진도 훌륭하고 수업도 다양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민씨는 2006년 가을 뷔트리히 교수의 강의를 듣고 깜짝 놀랐다. 2주 동안의 특강이었기 때문이다. 1학점으로 인정되긴 했지만, 통상 한 학기 동안 이뤄지는 대학의 수업 방식과는 달랐다. “2주 동안의 세미나 형식이라는 사실에도 실망했지만, 생물 변천 과정을 강의하셔서 더 실망했어요. 일반론적인 내용으로 다른 사람한테도 배울 수 있는 거거든요. 한마디로 ‘낚인’ 느낌이었어요.”
연세대의 언론 플레이에 ‘낚인’ 학생들을 실망시킨 것은 노벨상을 받은 교수가 없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토플 평균 288점(300점 만점)인 UIC 학생들에게 몇몇 한국인 교수들의 ‘버벅’거리는 영어 강의를 듣는 것은 “곰이 마늘을 먹고 웅녀로 변신하는 것만큼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최지훈(가명·20)씨는 말했다. 최씨는 “특히 한 교수가 영어를 못해 답답했는데,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그걸 죽죽 읽는 게 수업의 전부였다”며 “‘교수가 영어를 못하니까 스크립트(대본)를 미리 짜오는 게 아니냐’고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참다못해 똑같은 과목이되 차라리 한국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들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15학점 이상을 UIC에서 개설하는 수업만 듣도록 정한 학사 규정 때문이다. 일반대학 수업은 전공과목일지라도 교양과목으로만 인정돼 이수 학점을 채울 수 없다. “배우고 싶은데, 그 욕구를 채울 수 없으니까 답답해요. 이런 식의 수업을 계속 들어야 하나 회의가 컸어요.”
이상한 것은 UIC 학생들이 일반대학의 수업을 듣는 것은 제한돼 있지만, 일반대학 학생들은 UIC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UIC의 수업 가운데 몇몇 교양과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다른 단과대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고 전공 학점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된다. UIC 경제학과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일반 학부생들이라고 한다. UIC 학생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반대학 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듣고, 그들은 우리 수업을 들으면 학점이 인정되는데 왜 우리만 등록금을 두 배나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다.
일반대학 학생들은 그냥 듣는데?
인원이 적은 생명공학 전공 학생들은 “차라리 일반대학 수업을 듣는 게 낫겠다”고도 말한다. 김민영(가명·20)씨는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학년마다 7명밖에 안 된다. 소수여서 수업의 질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선택의 폭이 좁다”고 말했다. 인원이 워낙 적어서 학교 쪽에서 다양한 강의를 개설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박천완(21·경제학) UIC 학생회장은 “등록금 인하를 원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학교 전체 행정과 관련된 문제인데다 막상 학비를 내리면 교육의 질이 더 떨어질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재학생 대부분이 외국 생활을 한 친구들이라 수업의 질에 대해 눈높이가 높은데, 지금은 과도기라 그렇다고 우리끼리 얘기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대학을 만든 게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UIC는 2004년 4월에 정창영 총장이 취임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 ‘언더우드국제대학 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이듬해인 2005년 2월 모종린 교수가 UIC 학장으로 발령받았다. 1년 남짓한 기간은 수준 높은 교수들을 확보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짜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이렇게 국제학부를 ‘빨리빨리’ 만든 것은 연세대만이 아니다. 2001년 이화여대가 국내 최초로 국제학부를 설립하면서, 많은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국제학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등록금은 연세대만큼 비싸지 않지만 대체로 과도기적 진통을 겪고 있다(표 참조). 한양대 국제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이원모(20)씨는 “신설 학과여서 교수도 부족하고 커리큘럼도 불안정하다. 원래 수업을 하던 강사가 갑자기 바뀌는 일도 있고, 과목 이름도 자주 바뀐다”고 말했다.
UIC에 실망하고 유학길 오르는 학생들
대학들이 왜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국제학부, 국제대학을 설립하는 걸까. , 등 해외 유명 언론기관 등에서 대학을 평가할 때 ‘국제화’는 주요 평가 항목이다. 국제화 평가에는 외국인 교수 비율, 외국인 학생 비율 등이 반영된다. 교육인적자원부의 박대림 사무관은 “정부도 대학의 국제화를 위해 어학 실력과 국제적 감각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의 국제화를 권장하지만 국제화가 얼마나 내실 있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관리하지 않는다. 교육부 최창익 사무관은 “등록금 책정도, 수업의 질도 모두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정부가 간섭할 권한이 없다”며 “시장 원리에 따라 교육의 질이 좋으면 인재가 몰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시장 원리를 ‘잘’ 따르는 학생들이 UIC를 떠나고 있다. 2007년 7월 현재 UIC를 선택했던 109명의 신입생 가운데 6명은 유학길에 오른다. 이들 중에는 해외 유명대를 휴학하고 UIC를 다니다 수업에 실망해서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도 있다. 가을 학기부터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는 이현주(20·가명)씨는 “UIC 친구들과 정도 많이 들었고,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유학을 가고 싶지는 않아서 5월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수업이 안 좋아서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종린 학장은 과의 인터뷰에서 “UIC는 같은 수업이라도 전 강의를 영어로 하므로 연세대의 글로벌 랭킹이 상승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화의 기준이 ‘영어’라는 학교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재학생 김정훈(20·가명)씨는 “같은 수업이라도 준비되지 않은 교수가 영어로 강의를 하면 수업의 깊이도 얕고 진도도 더 느리다”며 “우리는 한국어를 써도 수준 높은 강의를 원한다”고 말했다. 언어보다 수업의 질적 수준이 국제화의 척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화’에 대한 학교와 학생 간의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등록금은 아이비리그인데 수업의 질은 ‘아니야’리그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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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학의 설립 목적은 무엇인가.
= 글로벌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다. 2004년 4월 정창영 총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2004년 10월에 ‘언더우드국제대학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해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6년부터 입학생을 받았고, 2007년에 단과대학으로 승격했다. UIC는 ‘국제학’ 관련 수업만 있는 다른 대학 국제학부와 다르다. 경제학, 생명과학 등 다양한 전공을 공부할 수 있는 큰 단과대학이다. 단과대학으로 키운 이유는 ‘위상’ 때문이다. 대내적으로는 학교 행정에 영향력이 커진다. 대외적으로는 일본, 중국, 대만 등의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프로그램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과 경쟁하려면 학부 차원에 머물러선 안 된다.
학생들은 “UIC의 등록금은 비싼데 수업의 질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불만이 많다.
= 학교에서는 UIC에 많은 돈을 투자해서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다. 영어로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다 보니 돈이 많이 든다. 교수를 초빙할 때 일반 교수들에 견줘 연봉도 더 줘야 하고, 아파트도 제공해야 하고, 이사 비용 등도 지급해야 한다. 계약직 직원을 뽑더라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뽑으니까 돈이 많이 들 수밖에. 비싼 만큼 앞으로 ‘동아시아 리더십 프로그램’ 등 UIC만의 자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 국제대학 학생들은 일반대학 수업을 못 듣게 돼 있는데 보통 등록금을 내는 일반대학 학생들은 국제대학 수업을 듣고 학점 인정까지 받으니 형평성 논란이 생기는 게 아닌가.
= UIC 전공 수업을 일반대학 학생들도 함께 듣도록 하고 있지만, UIC 학생들만 듣는 ‘온리(유일한) 강좌’도 있다. 100% 온리(only) 과목만 듣게 되면 UIC가 섬이 돼버리고, 또 일반 학부생들과 수업을 100% 함께 들으면 UIC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아이비리그 수준의 글로벌 교육을 위해서는 중간점이 좋다.
언론에는 노벨상을 받은 석좌교수 등 100% 외국인 전임 교수가 UIC에서 가르친다고 보도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UIC 전임 교수도 부족하고 한국인 교수들이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인가.
= 석좌교수는 주로 1학점짜리 수업을 맡아 2주 동안 강의를 한다. 교수 충원이 완료되는 시점은 2008년 1학기까지다. 현재 8명의 외국인 교수가 있는데, 내년까지 25명의 외국인 교수를 충원할 예정이다. 한국인 교수들이 강의를 맡는 이유는 일종의 ‘통합형 세계화 모델’로, 일반대학 전공과목의 영어 트랙을 모아놓았다고 보면 된다. 일종의 이중 언어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과도기적이지만 조만간 UIC가 연세대의 글로벌 랭킹을 상승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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