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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의 마지막 호소

등록 2007-08-03 00:00 수정 2020-05-03 04:25

토지 협상 시한 7월31일, 한국을 찾은 노인들의 희망 순례

▣ 배지원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사무국장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슬픈 역사의 마을, 우토로의 마지막 희망 순례.’

우토로 동포 9명과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의 일본인 활동가 2명이 지난 7월21일 3박4일 일정으로 조국을 찾았다. 지난 6월 우토로의 법적 토지 소유권자가 7월31일로 토지 협상 시한을 설정하고 제3자에게 전매하겠다고 통보해온 다급한 상황 때문이다. 제3자에게로의 매각은 곧 강제철거를 의미한다. 일제 식민지 지배와 전쟁, 민족 차별이 만든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땀과 한의 역사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것보다 먼저 당장 집을 잃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일본 정부는 긴급 피난처를 마련하겠다고 말하지만 긴급 피난처라는 곳에서 상심한 조선인 후예의 심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우토로는 그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역사 청산이니 정의니 인권이니 조국이니 그 무엇도 우토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역사가 남을 것이다. 이 부끄러운 역사가 잘 기록되고 기억될지도 미지수이다.

“조국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외교통상부는 2005년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이 시작될 당시 우토로 지원책을 밝히면서 ‘재외 국민에 대한 구제’ ‘인도적 차원의 지원’ ‘재일동포의 생활권과 거주권 보호’라는 입장을 말했다. ‘우토로가 자자손손 자랑스런 마을로 남기를 기원한다’며 외교부 전 직원이 모금에 참여해 약 2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형평성’ 때문에 곤란하단다. 국회가 아직 시원스럽게 동의를 안 해주었고 청와대 입장도 확인이 안 된 모양인지 공식 발표는 안 하고 있다. 행정을 좀 아는 사람들은 외교부가 발견한 이 고마운 단어 ‘형평성’에 수긍한다. 그러나 국민들 귀에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렇게 정성이 필요한 일을 해본 적이 없을 테니 축적된 경험이나, 하물며 우토로를 지켜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과에 대한 아무런 비전도 창의적 상상력도 없을 것이다. 되묻고 싶다. 우토로 문제를 외면하는 재일동포 단체 재일민단에 수십 년간 100억원가량 지원해온 것은 형평성에 맞는 것인가?

마지막 희망을 찾아 조국 땅 ‘대한민국’을 찾은 동포들의 목소리는 너무 담담해 차라리 처연하다. 마지막 희망의 실마리를 잡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동포들은 큰 목소리의 호소보다는 운명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절박해야 할 마지막 호소는 감사의 말과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잘되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만이라도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나는 끝까지 여기 우토로에 남을 것입니다. 날 부수고 내 집을 부수소.”(김군자 어머니)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끊임없이 정체성에 시달렸던 저에게 국가나 정부, 하물며 조국이라는 것은 정말 먼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조국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모금의 손길과 정부 고관님들의 따뜻한 격려의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지금은 일본 정부와 다름없는 대책을 세우고 있어 실망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버린 우리를 또 한 번 실망시키지 말아주시길 바랄 뿐입니다.”(엄명부 주민회 부회장)

외교부 앞에서 송민순 외교부 장관에게 보내는, 우토로 주민 세대수를 상징하는 65송이의 꽃과 편지를 건네는 김교일 회장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와 함께 강제집행을 저지하는 입장에서 지원책을 검토하고 계셔야 할 한국 정부의 장관님이 강제집행을 전제로 하는 발언을 하신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발언에 대해 저희는 해방 후 일관하여 우토로를 방치해온 우지시 등 일본 정부의 언동과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우토로 바깥의 고령자 복지시설이 우토로 주민을 수용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우토로 주민 그 누구 한 사람도 직접 들어본 적도 없고 상의받은 적도 없습니다. 당사자를 완전히 빼놓고 진행되는 이야기는 사실관계를 무시한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한국 국회 본회의에서 당당하게 언급되고 있다는 것에 저희는 항의합니다. 장관님께서는 주민들의 의향을 무시한 이런 대응책에 대해 진정으로 동의하고 계신 것입니까?”

일본에는 많은 조선인 집단거주 지구가 있다. 똑같이 전후보상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와 싸웠고, 일본 행정의 판단 아래 여러 거주 개선 법률을 적용해 거주권이 보장됐다. 우토로가 이 조선인 집단거주 지역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땅 주인이 개인이라는 점이다. 패전 뒤, 일본 교토부가 군수기업에 불하하고 다시 이 군수기업은 개인에게 이 땅을 약 3억엔의 헐값에 넘겼다. 이 닛산차체라는 기업이 우토로 땅을 매각할 때, 관할 지자체인 우지시와 교토부에 땅 매각을 알렸고 일본 당국은 이를 묵인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우토로 문제는 일본 정부가 말하듯 ‘민사 간의 문제’가 돼버렸고, 우토로 동포들은 법적으로 시효취득도 전후보상도 적용받지 못한 채 강제퇴거의 법적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제발 일본 정부를 혼내주세요.” 우토로 주민 황순례 어머니는 국내 모금자들을 상대로 한 보고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국회 의원회관을 방문해 의원 299명의 우편함에 꽃과 편지를 일일이 꽂으며 말했다. “의원님들 꼭 도와주세요.” 겸연쩍고 송구스러움마저 배어나는 황 어머니의 힘없는 미소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다리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순악 어머니는 마지막 희망 순례에서 다리의 고통을 참으며 끝까지 함께 걸었다. 그리고 편지를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일본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말도 너무 서툴러서 참 내가 어떻게 살아온 건지…. 미안해요. 같이 못 온 우토로 이웃들 얼굴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자꾸 나요.”

“우토로 토지 문제가 생긴 뒤로 술 한 잔이 두 잔이 됐다.” 순례 기간 내내 말씀이 없으시던 하수부 아버지는 떠나기 전날 밤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있는 친척이 우토로에 와 보고는 왜 이렇게 사냐고, 미국에 오면 넓고 좋은 집이 있으니까 같이 살자고 그랬어요. 난 그래도 우토로에 살 겁니다. 여기서 자식 넷을 낳고 손자 열다섯을 봤어요. 때가 되면 모두 여기 모입니다. 얼마나 모두 화목한지 모릅니다.”

통곡이라도 하고 화라도 냈으면…

조국의 동포들 앞에서 통곡이라도 하고 화라도 내면 속 시원할 것을. 공항을 빠져나가는 동포들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3년간 여러 뜻있는 사람들과 시민단체가 모여 ‘우토로국제대책회의’를 구성해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부동산업자의 손에 들어가 있는 우토로 토지를 진정한 주인에게 돌려주기가 쉽지 않다. 일반 시민과 단체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해왔지만, 다시 십시일반의 모금만으로 위기를 넘기기가 어렵다. 이제 참여정부가 답해야 할 차례이다. 정부는 62년간의 우토로의 호소에 답해야 한다. ‘일본 정부를 혼내주’든 애초에 밝혔던 것처럼 토지 매입에 지원금을 보태주든 실질적이고 전향적인 대안으로 답해야 한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이어지는 네티즌 청원 서명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조국은 그 조국을 사랑하는 이들을 품어야 합니다. 어떤 변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조국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어쩌면 일본 땅에서 우토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강제철거를 몸으로 막는 ‘부끄러운’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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