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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 노동판결, 피가 마른다

등록 2007-06-29 00:00 수정 2020-05-03 04:25

꼬박 4년 걸려 역사적 판결 받아낸 김준규씨,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얼마나 더 견뎌야 하나

▣ 아산=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작가 정을병이 옥중 체험을 소설화한 ‘육조지’를 발표한 건 1974년 겨울호를 통해서였다. 소설은 ‘호되게 때리다’는 뜻인 ‘조지다’의 6가지로, “순사는 때려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도둑놈은 먹어 조지고” “마누라는 팔아 조지고”를 들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지는 게 “판사는 늘여 조지고”였다. 사법적 판단의 지연으로 억눌린 이들이 고통을 겪는 악습을 고발한 것이다. ‘육조지’ 발표 뒤 서른세 해를 지낸 지금, 사법 현실은 얼마나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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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 6월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법정 건물 앞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비자금 조성과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에 대한 서울고법 형사10부의 결심 공판이 있던 날이었다. 예정된 시각보다 조금 이른 9시10분께 법원 앞에 나타난 정 회장 면전에 갑자기 유인물이 어지럽게 흩뿌려졌다. ‘현대자동차(주)는 불법 파견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법원 판결에 따라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유인물을 뿌린 이들은 곧 현대자동차 임직원으로 보이는 300명 안팎의 무리에 의해 제압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일한 지 2년 지나면 원청 직원…”

정 회장의 결심 공판날 유인물을 배포한 이들 속에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지회 소속 조합원인 김준규(34)씨도 끼어 있었다. 한바탕 몸싸움을 치른 뒤인 이날 오후 충남 아산시청 근방에서 만난 김씨의 오른손과 팔은 온통 긁히고 찢겨 있었다. 그는 “(양복바지 차림에 구두를 갖춰 신은 모습을 가리키며) 평소엔 운동화를 신고 편하게 입고 다니는데 오늘은 법원에 갔다 오느라 이런 차림이다”라며 웃었다. 툭하면 법원 문 앞에서 쫓겨나고, 유인물을 뿌리거나 구호를 외치다가 바닥에 동댕이쳐지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사로 여기는 듯했다.

그가 상처투성이 오른손을 보면서도 조금 여유를 부리며 웃을 수 있는 건 얼마 전 나온 법원의 판결 때문인지 모른다. 김씨는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에서 승소한 4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1명이다. 지난 6월7일 나온 이번 판결은 국내 노동분쟁 역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원청(현대차)과 하청 업체 사이의 도급 계약에 대해 자동차 공장의 조립 업무처럼 파견 금지 대상이라는 이유로 ‘불법 파견’이라는 판정이 내려진 사례는 여럿 있었어도 여기에 덧붙여 ‘고용 의제’(원청에 고용된 것으로 여기는)라고 판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씨를 비롯한 4명의 노동자에 대해 법원은 “일한 지 2년이 지난 날(김씨의 경우 2003년 5월)부터 현대차 소속 근로자의 지위를 갖는다”고 밝혔다. 법원 판결대로라면, 현대차는 이들 노동자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현대차만 하더라도 1만 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는 대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지위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폭발력을 띤 사안이다.

김씨가 여유를 보일 수 있는 대목은 여기까지다. 1심 판결의 노동운동사적 의미는 크지만, 그의 ‘구체적인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기엔 아직 너무 먼 얘기다. 정몽구 회장 앞에 뿌려진 유인물의 요구대로 현대차가 1심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기 때문이다. 6월14일 현대차의 항소로 이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가 있다. 2심을 거쳐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그는 또 얼마의 세월을 견뎌내야 할지 알 수 없다. 검찰 신문, 변호사 반대신문, 재판 연기로 이어지는 지루한 법정 공방은 그 끝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상대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모르고, 잠자지 않고 몇 년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현대차라는 ‘로봇 같은 법인’인 반면, 김씨는 굶고 날밤을 새우고는 하루도 견디기 힘든 ‘구체적인 인간’이다. 앞으로도 2년 안팎을 더 겪어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재판 기간은 생활인인 그에게 거대한 짐이다. 더욱이 1심 판결의 방향이 대법원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회사에 의해, 또 법원에 의해 ‘미뤄 조지기’가 계속되고 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퇴직금으로 버티다 생계 위해 아르바이트

김씨가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세월 못지않게 1심에 이르는 지난 수년의 세월 자체가 ‘미뤄 조짐’을 당한 노동분쟁 사건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가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업체에서 현대차의 대표 브랜드인 쏘나타와 그랜저를 섞어 같이 생산하는 라인에 배치돼 일하던 중 해고를 당한 건 2003년 6월이었다. 트렁크 부분의 단차(스패너 같은 기구로 상하좌우 균형을 맞추는) 및 검사 작업을 맡고 있던 때였다. 그가 소속된 하청업체에선 회사 명예 실추, 무단 결근 등을 사유로 들었지만, 노조 활동에 대한 보복성의 정황이 뚜렷했다. 지방·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가 기각당하고, 행정법원을 상대로 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도 패소한 뒤 ‘불법 파견’이라는 새로운 이슈를 내걸어 1심에서 승소를 이끌어내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처음엔 퇴직금, 고용보험금으로 버티는 거지요. (상위 단체인) 금속노동조합연맹에서 해고자들에게 1년 동안 ‘신분보장기금’을 또 지원해주기 때문에 좀더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게 1년쯤 지나고 나면 서서히 바닥에 이르기 시작해 주위 동료나 친·인척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처지로 내몰린다. 그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선거철에 민주노동당 쪽에 배정된 선거관리위원회의 공명선거감시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김씨가 4년의 세월을 버틴 비결 중 하나는 씀씀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가족이 딸리지 않은 독신이어서 그나마 가능했을 터이다. 통신비와 자동차 기름값처럼 필수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비용 20만~30만원은 그래도 어떻게든 조달해야 한다. “가장 난감한 일은 집안 경조사를 전혀 돌아볼 수 없다는 거지요. 부모님 생일도 못 챙기고, 조카들한테 용돈도 줄 수 없습니다. 큰형 결혼할 때는 수배 중이었고….”

그가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03년이었다.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업체에 입사한 지 2년 만이었다. 그해 3월 현대차 아산공장에서는 원청업체의 관리자가, 월차 요청을 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인 세화산업 소속의 한 노동자를 식칼로 찌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1989년 ‘현대중공업의 식칼 테러’에 이은 또 하나의 ‘식칼 테러 사건’이었다. 아산공장 사내하청 업체 노동자들은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이는 금속노조 산하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지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노조 출범 당시 김씨는 회계 감사를 맡았으며 지금도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는 “부모님도 그만하라고 말리고, 저 또한 순간순간 흔들리지만, 지금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장으로 돌아가야지요, 꼭. 그래야 부당하게 해고된 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는 신속한 판결 못지않게 정확한 판정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장 조사를 벌였던 노동부와 법원에선 불법 파견임을 인정한 반면 경찰과 검찰에선 불법 파견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현장 조사를 해보면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같은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걸 뻔히 알 수 있는데, 경찰과 검찰에선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로만 조사한 거지요.” 김씨 등이 제기했던 불법 파견 건은 2004년 노동부 현장 조사에서 ‘인정’됐지만, 경찰·검찰에 넘겨진 뒤 ‘무혐의’ 처리된 바 있다. 노동부처럼 현장 조사를 벌였던 1심 법원은 “현대차가 (김씨 같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해 구체적인 지휘·명령과 이에 수반하는 노무 관리를 해왔다”며 “현대차와 사내 하청업체의 도급 계약은 소속 근로자를 현대차에 파견해 이뤄지는 근로자 파견 계약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해고 뒤 어머니가 보험설계사 시작

김씨는 그나마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경우지만, 원문숙(30)씨는 거꾸로다. 김씨처럼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지회 조합원인 원씨는 부당해고 구제 신청에서 지방·중앙노동위에선 ‘인정’ 결정을 얻어냈다가 행정법원과 그에 이은 지난 5월 고등법원 판결에선 패소했다. 2003년 첫 해고 뒤 복직됐다가 2005년에 다시 해고를 당하는 4년 동안 생계를 정상적으로 꾸려가기는 불가능했다. 아산 온천동의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에서 만난 원씨는 “제가 해고된 뒤 어머니가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며 쓰게 웃었다.

원씨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도 2003년의 ‘식칼 테러 사건’이었다. 당시 그는 테러를 당한 노동자처럼 세화산업 소속이었다. “너무 분했습니다. 월차를 쓰겠다고 얘기한 사람을 식칼로 찌르다니…. 손이 떨려 일을 못하겠더군요.” 테러 다음날 세화산업 노동자들은 작업을 거부했고, 이는 다른 하청업체들로 번지면서 전체 생산 라인의 가동이 중단됐다. 노동조합 결성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노조 출범 초기 원씨는 조직부장, 총무부장으로 일했다.

원씨가 현대차 하청인 신흥기업으로 옮겨 일할 때 두 번째로 해고당한 빌미 또한 노조 활동이었다. 업체 쪽은 늘 하던 대로 불법 쟁의, 회사 명예 실추, 근태 불량 따위를 해고 사유로 들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쳤고, 노동부에 신고까지 해 정상 절차를 밟았는데 불법 쟁의라고 하니….” 합법적인 파업이었음은 해고 뒤 이어진 지방·중앙노동위에서도 그대로 인정돼 정당성을 확인받았다. 사단은 회사 쪽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벌어졌다. 서울행정법원은 2006년 9월 판결에서 지방·중앙노동위의 부당노동행위 구제 판정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사내하청 지회는 개별 기업별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해야 함에도 전체 지회 조합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했으므로 위법”이라고 밝혔다. 이는 고등법원 판결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원씨는 “하청업체들의 작업장이 멀리 떨어져 있고 해서 지회 차원에서 투표를 실시하는 게 관례였다”며 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지적한다. 행정법원 판결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원씨는 “(법정을) 확 엎어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리대로라면 2005년 3월 충남지방노동위의 결정 뒤 회사 쪽에서 복직시키는 모양새여야 함에도 2년여를 끌면서 상황은 뒤바뀌어 원씨의 고생은 헛일로 돌아갈 지경에 빠졌다. “해고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돈을 아끼는) 요령이 생기데요. 누가 차 타고 어딜 가면 얼른 붙어서 따라 이동합니다. 그렇게 차비를 아끼고, 또 명절 같은 때면 (300명 안팎의 지회) 조합원들이 돈을 거둬 주기도 합니다.” 시일을 오래 끌다 보니, 주변의 도움도 불편하기만 하다. 얼굴은 웃고 있어도 “사실 피말리는 시간들”이라고 말한다. “연락을 해온 이들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물을 때마다 괴롭죠. 일이 좀 빨리 진행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명명백백 승소 재판에서 지고…

고등법원을 거치고 이제 대법원 판결을 앞둔 그에게 승소의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수년을 끌어온 지난 세월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앞에서 비겁해지고 싶지 않아서”란다.

‘육조지’의 “판사는 늘여 조지고” 대목 후반부는 이런 독백으로 이어진다. “…증인 심문하다가 또 연기하고, 증인들이 안 나타나서 또 연기하고… 도대체 재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장 쪽에야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만, 도둑놈들의 짧은 식견이 그런 것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고, 재판장의 늘여 치우는 태도에만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8년 만에 복직 판결이라니

현대미포조선 김석진씨… 노동위에서 180일, 행정소송 넘어가면 2년 예사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노동분쟁 사건을 해결하는 절차는 노동위원회 심판과 법원 소송이라는 두 갈래 구조로 이뤄져 있다.
지방·중앙노동위 심판에 불복하는 경우 중앙노동위를 피고로 하는 행정소송으로 이어진다. 그 뒤의 고등법원, 대법원 판결까지 포함하면 노동사건 구제 절차는 사실상 5심제다. 이 때문에 신속한 구제가 어렵고, 사건 처리 지연으로 노동자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노사관계가 불안해진다는 지적이 많다.
지방·중앙노동위에 접수되는 노동 관련 심판 건수는 한 해 8천 건 안팎에 이르며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2006년엔 8631건으로 전년(8295건)보다 300건 이상 늘었다. 처리 상황을 보면, 전부 인정 1084건, 일부 인정 222건, 기각 2186건, 각하 431건, 취하 3205건, 화해 250건, 진행 중 1253건이었다. 중앙노동위 재심 판정에 불만을 품고 행정소송을 내는 비율이 40% 안팎인 데서 노동위에 대한 불신감을 엿볼 수 있다. 노동위 심판을 거쳤거나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사소송을 진행한 건도 해마다 2만 건 안팎에 이른다.
노동위 심판 절차에만 통상 180일이 걸린다. 행정소송,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2년을 넘기는 건 예사다.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김석진씨는 1997년 4월 해고 뒤 무려 8년3개월 만인 2005년 7월에야 대법원의 복직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에서만 3년5개월을 끌었다. 또 다른 ‘김석진들’은 지금도 계속 태어나고 있다. 노동분쟁의 특수성을 감안해 신속하고 공정한 소송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 666호 주요기사

▶ 기다리다 지쳤어요, 노동법원
▶ 아시아는 넓고 살 것은 많다
▶뜨겁게 숨쉬고 고맙게 먹으며 가볍게 걷는 길
▶돈 없고 ‘빽’ 없다면 쇼를 하라
▶‘666호’라고 두려워 말라
▶질문하는 경영자가 성공한다
▶‘김대중 납치사건’풀리지 않는 의혹
▶시골의사 박경철의 주식투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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