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교육부 관계자는 파악 못하는 ‘수입산 쇠고기’ 유통 상황… 학부모 참여만이 해결책인가</font>
▣ 청주=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서울 구로 지역의 영일초등학교 학부모와 교사들은 지난 3월 큰 결심을 했다. 학교 급식에서 수입산 농산물을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학교 급식에서는 단가를 맞추야 하니까요.” 이 학교의 운영위원인 배옥병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가 말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먹일 갈비나 불고기용 쇠고기는 호주나 뉴질랜드 것을 사용해왔다. 단가 때문이다. 지금처럼 수입 쇠고기를 이용하면 아이들에게 쇠고기 불고기를 반찬으로 내놓을 수 있지만, 한우를 사용하면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주저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푸짐한 수입산 농산물을 먹일 것인가, 소박하고 안전한 우리 먹을거리를 제공할 것인가. 결단이 필요했다.
수입 쇠고기 세 번보다 한우 한 번
때마침 우리 나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산 쇠고기가 학부모들의 망설임에 해답을 제공했다. “아이들에게 수입 쇠고기를 세 번 먹이지 말고, 안전한 우리 것을 한 번만 먹이기로 한 거죠. 아니면 돼지 불고기를 먹이거나.” 배 상임대표가 말했다.
우리나라 쇠고기 수입량은 2003년 293만6천t으로 최고점을 찍었다가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면서 2006년 179만4천t으로 줄었다. 2006년 현재 전체 수입 쇠고기의 76.3%는 오스트레일리아산이다(그래프 참조). 그러나 지난 4월부터 본격 수입 개시된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우리 나라 수입 쇠고기 시장의 판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4월부터 6월11일 현재까지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는 모두 248t으로, 이 가운데 51.2t은 검역 불합격으로 반송 또는 폐기됐고, 97t은 검역 중이다. 85.3t은 대형 음식점이나 급식소를 통해 우리 밥상에 오르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수입산 쇠고기가 얼마나 학교급식으로 들어가는지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민운동본부는 “학부모들의 조그만 참여가 있다면 광우병 의심 고기가 아이들의 밥상에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학교급식법 시행령 2조는 학교급식에 관한 중요한 사안은 학교 운영위원회의 심의 또는 자문을 거쳐 학교장이 결정하도록 못박고 있다. 학교 운영위원회는 △학교급식 운영 방식 △식재료 품질기준 △식재료 조달 방법 △업체 선정 등 학교급식과 관련된 대부분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국민운동본부는 6월7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학부모·조리사·교사·한국생협연합회원 등 1152명이 모여 ‘광우병 학교급식 감시단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이들의 밥상에 광우병 의심 고기를 올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요.” 기자회견장에 모인 어머니들이 말했다. 국민운동본부는 “학교 운영위원회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학교 반입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며 “앞으로 감시단을 점점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류 위조’만으로 한우로 둔갑
그러나 이는 쇠고기가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성방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 급식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최근 청주에서 일어난 쇠고기 유통 사고는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미국산 쇠고기가 언제든 아이들의 밥상에 올라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준다”고 말했다. 청주에서 10년 넘게 축산물 납품업을 해온 ㄱ씨는 올해 3월부터 경쟁 업체인 ㅅ사 쪽에서 말도 안 되는 입찰가를 써내는 것을 보며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에서 쇠고기 1천만원어치를 경쟁입찰에 붙인다고 합시다. 그럼 우리끼리는 800만원 이하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는 것을 알거든요.” 그런데 ㅅ사는 700만원 선에서 납품가를 써내기 시작했다. ㅅ사는 정부가 식자재 납품업체 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기준원 인증까지 받은 업체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청주 흥덕경찰서 관계자는 “ㅅ사는 HACCP를 만족하지 못한 업체 3곳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축되지 않은 육류를 받아 학교급식에 납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명백한 학교급식법·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이다. 불법 납품된 고기는 수입산일 수도 있고, 식육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아 밀도살된 병든 소나 돼지일 수도 있다. 경찰은 6월7일 청주 흥덕구 사직동 분수대 근처의 사설 주차장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 2동과 냉동창고 1개에 든 3t가량의 뼈와 고기를 압수해 축산과학원에 DNA 검사를 의뢰했다. ㅅ사는 5월 현재 청주 소재 28개 학교에 쇠고기 1570kg, 돼지고기 5872kg을 납품한 청주 시내 2위 업체다. 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물량이 불법 유통돼 아이들의 입속으로 들어갔을까. 경찰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분명히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확보한 ㅅ사의 축산물 등급판정확인서와 도축검사증명서를 보면, 쇠고기 불법 유통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ㅅ사는 청주시 송절동에 있는 ㄷ사에서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443kg짜리 암소 한 마리를 잡았다. 암소는 양지(47kg)·사태(20kg)·갈비(47kg)·등심(41kg)·뼈(51kg) 등으로 분류돼 5월15일 2등급 판정을 받았다. 5월28일 이 확인서를 근거로 ㄱ초등학교에 양지 38kg, ㄷ중학교에 20kg, ㅇ중학교에 양지 6kg을 납품했다. 청주 흥덕서 관계자는 “ㅅ사는 이같은 증명서를 위조해 육류를 불법 유통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 서류를 1장 위조하면 수입산 쇠고기 443kg이, 10장을 위조하면 4430kg이 한우로 둔갑한다. 서류에 적힌 443kg이 진짜 한우인지 아니면 불법 유통된 수입소나 병든 소인지 지금으로선 확인할 도리가 없다. 2007년 학교급식 기본 방향은 ‘학교급식 안전성 검사’ 항목에서 한우 사용 학교들은 ‘DNA 추출법에 의한 유전자 검사’를 할 것을 못박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가 검사 결과까지 일일이 확인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정육점으로 나가는 학부모들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다시 학부모들이다. 6월1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대방동에 있는 서울 여성플라자 4층 시청각실로 30여 명의 한국생협연합회 소속 어머니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주부 200여 명이 참여하는 생활감시단을 만들어 대형마트, 정육점, 외식업체 등을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 원산지 표시제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미국산 소고기를 취급하는 업체가 있다면 항의하는 활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어머니들은 쇠고기 유통업체 쪽에 축산물 등급확인판정서와 도축검사증명서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8개월 동안 미국은 다섯 차례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어겼고, 한국 정부는 “그것은 ‘인간적 실수’였다”는 미국 쪽의 해명을 받아들였다. 잠시 중단됐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다시 시작됐다. 어머니들의 기약 없는 싸움이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돼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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