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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1년, 겁나는 급식

등록 2007-06-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서울시 교육청 산하 직영 전환은 딱 한 곳, CJ푸드시스템 책임은 실종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06년 6월16일.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서울 노원구 ㅇ중학교 1학년생이던 주희는 배가 고팠다. 기다리던 급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 반찬은 쌀밥에 팽이두부된장국·과일샐러드·감자튀김·단무지였다. 식사를 마치고 5교시부터 배가 아팠지만 수업을 빠지긴 싫었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배를 움켜쥐고 참았다. 이미 몇몇 친구들이 전날부터 설사나 구토 증세를 보였다. 아침부터 CJ푸드시스템 직원이라며 아저씨들이 와서 아픈 친구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주희는 집으로 가서 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을 굴렀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식중독’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사흘 동안 죽만 먹었다. 죽인데도 먹고 나면 토했다. “아무 생각 없이 믿고 맛있게 먹었던 학교급식인데,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억울해요.”

인천 지역은 모두 직영 전환 마무리

1년 전 주희와 같은 아이들 2872명이 ‘CJ푸드시스템’의 밥을 먹고 주희와 같은 일을 겪었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급식대란’이라고 불렀다. 환자가 발생한 곳은 모두 31개 학교와 1개 사업장. 모두 CJ푸드시스템이 위탁급식 업체로 급식을 관장했다. 6월23일부터 사건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자, CJ푸드시스템은 납작 엎드렸다. “모든 책임을 지고 학교 위탁급식업에서 철수하겠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됐다. 원인을 찾으려던 질병관리본부는 6월30일과 8월8일 두 차례에 걸쳐 “원인균은 노로바이러스인 것 같은데 감염 경로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CJ푸드시스템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그해 12월20일, 검찰도 △오염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고의성이 없고 △식중독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 노로바이러스의 감염 경로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CJ푸드시스템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3천 명 가까운 아이들의 배앓이에 대해 책임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사라진 채로 1년이 지났고,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너머로 사라지는 중이다. 지난해 여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밥을 먹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사고 직후인 지난해 6월30일, 개정 학교급식법이 통과됐다. 개정된 법에 따라 위탁급식을 시행하던 학교들은 3년의 유예기간을 갖고 직영급식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직영 전환은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은 CJ로부터 급식을 공급받다 사고가 난 27개 학교의 직영 전환 상황을 점검해왔다. 사고가 난 학교의 지역별 분포는 서울 17곳, 인천 9곳, 경기 1곳이다.

도시락 싸오는 학생 늘어

전체 27곳 중에 직영 전환이 끝난 곳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인 10곳밖에 없었다. 어떤 학교들이 직영으로 전환했는지 좀더 세심하게 살펴봤다.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됐다. 인천 지역 학교는 모두 직영 전환을 마무리한 데 견줘, 서울 지역 학교는 17곳 가운데 직영 전환이 이뤄진 곳은 덕수중학교 1곳밖에 없었다. 인천에서는 인천시교육청이 적극적인 지침을 내려 직영 전환을 독려했다. 배옥병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서울시교육청은 왜 인천시교육청과 같은 역할을 못하냐”고 답답해했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불만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사고가 났던 서울 ㅅ중학교는 위탁급식 업체를 CJ푸드시스템에서 ㅎ업체로 바꿨다. 이 학교 홍아무개(15)양은 “바뀐 지 얼마 안 됐을 때에 비해 지금은 식단이나 메뉴가 허술해지고 더 불친절해졌다”며 불균질한 서비스가 불만이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의 김아무개(15)양도 “청결 상태가 여전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현재 배식 아주머니들이 모자를 대충 써서 잔머리들이 모자 사이로 다 나오고 마스크를 귀에만 걸친 상태로 대화를 하셔서 음식에 침이나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거든요.”

위탁업체가 ㅇ업체로 바뀐 서울 ㄱ중학교 이아무개(15)군은 “굳은 떡으로 떡볶이를 만드는 등 질이 좋지 않다”며 “음식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도시락을 싸오는 애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CJ푸드시스템이 대형 급식사고를 일으키긴 했지만, 업계를 선도하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급식의 질은 유지될 수 있었다. 아이들 처지에선 심한 배앓이를 한 뒤 더 나쁜 밥상과 마주하게 된 셈이다.

CJ “도의적 책임을 다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빚어졌을까. 우선은 서울 지역 중·고등학교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다. 개정 학교급식법은 2009년까지만 직영급식으로 전환하면 된다. 대부분의 학교는 2009년까지 위탁급식을 1~2년 유예하려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07년에만 160개 학교를 직영급식으로 전환하겠다고 지난해 교육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지난 1월19일 시행령 발표 이후, “42개 학교만 직영 전환을 한다”고 계획을 변경했다.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서울 지역 653개 중·고등학교 중 직영급식으로 전환한 학교는 14개에 불과하다. 중학교 11개, 고등학교 3개다. 낮춰 잡은 42개 학교의 직영 전환 약속은 지킬 수 있을까. 현재 서울 지역 중학교 직영급식률은 10.2%, 고등학교 위탁급식률은 7.2%로 여전히 낮다.

사업이 늦춰질 때마다 들이대는 “예산이 없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교육부는 올해 서울 지역 직영급식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64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직영 전환 학교가 줄어들어 16억4천만원만 지원하면 된다. 배옥병 상임대표는 “예산이 없어서도 아니고, 예산이 충분히 있는데도 학교들이 직영 전환을 거부하는 것은 순전히 학교장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2006년 서둘러 직영 전환에 나선 서울 오남중학교에서는 직영 전환 때 학교들이 일반적으로 지원받는 금액인 1억원보다 7천만원을 더 지원받았다. 교육부 관계자도 “급식 방식이 직영으로 바뀌면 학교장이나 학교에서 부담해야 할 책임이 커지고 업무가 늘어나기 때문에 학교들이 소극적이다”고 말했다.

잊혀질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학교장과 급식업체 사이의 ‘검은 커넥션’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5월,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교장이 위탁급식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고 파면되는 사건이 터졌다. 교육부에서도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다. “급식 업자들과 교장들이 너무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부 관계자가 말했다. 배옥병 상임대표는 “그런 우려가 기우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교장들은 하루빨리 직영 전환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전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CJ푸드시스템도 당혹감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피해를 입은 ㅇ중학교 7명, ㅈ고등학교 2명 등 9명은 지난 1월 CJ푸드시스템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식중독 사고로 인한 설사·복통 때문에 정상적인 수업을 받지 못한 데 대한 위자료를 청구한 것이다. 학생 1명이 신청한 손해배상금은 100만원. CJ푸드시스템 쪽 소송 대리인은 재판부에 낸 준비서면에서 “피고는 이미 가혹한 여론의 질책을 받았으며, 도의적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대응했다. 서울 ㅇ중학교의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은 “학생들의 설사 등의 증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서울 ㅈ고등학교의 경우 사고의 원인이라고 밝혀진 “노로바이러스에의 감염 여부를 미리 검사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보건당국이 “현재의 기술여건으로는 식품 중의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시험법이 없다”고 말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김상중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미국에서는 이미 1998년에 햄, 칠면조 등에서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했고 일본도 2001년에 점심 도시락에서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98년 검출

서울 ㅇ중학교의 황철훈 교사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설사하고 구토하며 수업에 빠져 공황상태가 일어났던 1년 전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무렵 CJ푸드시스템은 아이들의 배앓이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2주 동안 과일젤리와 청량음료 등을 제공했다. “고작 젤리로 면피성 사과나 하고, 정작 져야 할 법적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겁니까.” 황 교사가 물었다.

3천 명이 집단 설사를 했고, 1년이 지났고,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못한 식사를 하고 있는 풍경은 우리 사회가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는 어떤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이보희 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은 “문제만 잔뜩 제기되고는 결국 시행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또다시 3천 명쯤 쓰러져야 정신을 차릴 건가요.” 1년 전 CJ 급식을 먹고 배앓이를 한 서울 ㅇ중학교의 민아무개양은 “그날 이후 장이 예민해져서 지금도 병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이달만 결석 두 번에 조퇴 두 번을 했다. “제가 예민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급식을 먹기가 무서워요.” 부끄럽다 못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좋은 밥 먹이려면 나서세요”

서울 오남중 학교급식 검수단은 말한다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김근희(45)씨는 서울 오남중학교의 학교 운영위원이다.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던 2004년 3월, 김씨는 학교급식 검수단에 참여하게 됐다. “2001년 7월쯤이었어요. 고기·우유·달걀 등 우리 축산물에 포함된 항생제 문제를 처음 알게 된 뒤부터 아이들 먹을거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새벽에 나가 학교로 들어오는 식재료를 검수하고, 점심 때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 무렵 학교는 중견 위탁급식 업체 ㅅ사에 급식 업무를 맡기고 있었다. “그쪽에서도 애를 많이 써주셨지만 아무래도 위탁급식은 애들 입맛에 맞추니까 성에 차지는 않았죠.” 2006년, 둘째아이가 같은 학교에 입학하면서 김씨는 교내 정책 전반을 결정할 수 있는 학교 운영위원이 된다. 그해 6월 ‘CJ 급식 사고’ 이후 직영급식을 의무화한 개정 학교급식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오남중학교는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직영 전환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참여를 의미한다. 위탁급식일 때는 업체만 잘 선정하면 되지만, 직영으로 전환하고 나면 급식과 관련된 많은 잡무를 교사와 학부모들이 떠안아야 한다. 그해 7월 학부모·학생·교사들을 상대로 직영 전환 여부를 묻는 찬반 조사가 시작됐다. 교사들은 65.4%, 학부모들은 83.8%, 학생들은 74.6%가 “직영 전환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떠안고 급식 직영 전환이 결정됐다.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교장 선생님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김씨는 “교장 선생님이 미온적이면 직영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먼저 직영 전환에 나선 학교에 1억7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보통의 경우 예산 지원액은 1억원 안팎이다. 3600만원을 들여 구이용 오븐기를 샀고, 교직원 식당을 허물어 세척실과 배식차 보관소도 만들었다. 그 공사에 3300만원이 들었다.
다음 문제는 식재료 납품 업체 선정이었다. 김씨는 “국산을 사용한다는 것을 가장 큰 원칙으로 꼽았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단가 문제였다. 중학교에서 한 끼를 먹기 위해 아이들이 내는 돈은 2300원 안팎이다. 학교 쪽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 말 많은 수입 농산물보다 국산을 쓰자고 말해 학부모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방침이 정해지자 업체 서너 곳을 정해 서류 심사를 한 뒤 2배수를 뽑아 현장 실사에 나섰다. 그렇게 뽑힌 업체들은 철원농협(곡물류), 하늘사랑(떡), 미림식품(농산물), 농협(축산물), 동화수산(수산물) 등이다. 김근희씨는 “아이들에게 좋은 밥을 먹이려면 어른들의 참여와 희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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