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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하고만 아옹다옹할 일이 아니다?

등록 2007-06-15 00:00 수정 2020-05-03 04:25

이지스함 진수식에서 감격에 젖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위험한 국방비 증액

▣ 워싱턴=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

지난 5월25일 대한민국 이지스함 제1호인 ‘세종대왕함’ 진수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국방정책과 관련해 세 가지 중대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첫째는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며 “앞으로 해군력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의 전투력”을 강화해 “광의의 방위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언제까지 북한하고만 아옹다옹하고 있을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이지스함 보유를 비롯한 일련의 전력 증강이 주변국 위협을 상정한 것임을 밝혔다. 셋째는 “동북아에 멈추지 않는 군비 경쟁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다”며 동북아 군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지스함 쾌거’ 뒤의 비밀

이런 대통령의 발언에 호응하듯, “국방부가 스텔스 전투기 60대를 도입키로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스텔스 전투기는 록히드마틴사의 F-35나 F-22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정부 방침은 최근 일본이 미국에 F-22 전투기 판매를 요청한 것과 맞물려,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동북아가 냉전시대에 버금가는 군비 경쟁 시대에 돌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6자회담 참가국들이 세계 총군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에 달한다. 이런 군사비 증액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이 군비 증강의 주된 명분으로 삼고 있는 북한과 일본의 군사비는 정체 내지 소폭 감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대양해군의 꿈을 열었다는 이지스함의 문제이다. 김대중 정부 때 결정된 차세대구축함(KDX-Ⅲ) 사업에는 미국의 이지스 전투체계와 네덜란드의 탈레스 시스템이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 그런데 국방부는 탈레스 시스템이 이지스 전투체계보다 약 2천억원이 저렴함에도 이지스를 선택했다. 다른 성능은 거의 비슷하지만 탈레스에는 미사일방어체제(MD)를 유도·통제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군당국은 이지스함에 장착할 MD용 요격미사일로 SM-2 BlockⅣA를 제공하겠다는 미 국방부의 말을 믿고 이 기종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요격미사일은 개발 비용은 폭등한 반면 성능은 시원찮아 펜타곤이 개발을 취소했다.

이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지스함 1호에는 SM-2MR이 장착됐는데, 이 미사일은 탄도미사일 요격용이 아니라 주로 항공기 요격용으로 사용된다. 탄도미사일 요격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2천억원이 비싼 이지스 전투체계를 선택했는데, 정작 요격미사일은 구형인 것이다. 이에 따라 1척당 2천억원씩, 모두 6천억원의 국민 세금의 낭비가 불가피해졌다. 거의 모든 언론은 세계 최강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쾌거’를 대서특필했는데, 정작 이 문제를 지적한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이 ‘과거지사’라면 또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되는 ‘미래지사’가 있다. 이번에 진수한 이지스함은 베이스라인 7.1로 일본의 이지스함보다 성능이 뛰어나고 미국이 보유한 이지스함에 필적할 만한 성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MD 기능이다. 얼핏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요격미사일은 ‘선택 사항’이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이 SM-3를 도입·장착하면 한국도 해상 MD 체제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이 SM-3를 도입하는 순간, 한국의 MD 참여의 모호성은 사라지게 된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필자에게 “SM-3를 도입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했는데, 일단 ‘참여정부’는 이 장담을 지켰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앞으로 MD 참여에 비교적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SM-3를 사서 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국의 MD 참여 모호성이 사라지고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MD 체제가 본격화되면, 동유럽 MD 배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제2의 냉전’의 불똥은 중국의 개입까지 맞물려 동북아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될 수 있다.

‘평화번영 정책’ 아래 꾸준한 군비 증강

본론으로 들어가 앞서 소개한 노 대통령의 ‘안보관’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살펴보자. 세계 최강의 이지스함을 바라보며 감격에 젖은 노 대통령의 메시지는 결국 ‘북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주변국 위협을 생각해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북한은 이지스함 진수식 날 사거리 100km로 추정되는 지대함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통상적인 군사훈련이라는 시각과 함께, 한국의 이지스함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면서도 중대하다. 설사 남한이 북한이 아니라 주변국을 의식해 최첨단 무기체계의 증강에 나서고 있다 하더라도, 북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무기체계를 북한용, 주변국용으로 나눈다는 것도 우스운 얘기다. 더구나 한-미동맹 재편에 따라 한국은 “독자적인 대북억제력 확보”를 위해 자주국방을 추진하기로 했고, 주한미군은 지역적 역할을 강화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또한 한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대미·대일 억제력용이라는 이유로 용인하지 않듯이, 한국의 군비 증강을 북한이 양해해주길 기대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가장 큰 걱정거리는 한국의 자주국방과 북한의 선군정치가 충돌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최대 과제로 일컫는 군축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평화번영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노무현 정부가 심각하게 숙고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는 국방비이다. ‘자주국방’을 천명하고 나선 노무현 대통령 임기 동안 국방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첫해인 2003년 17조5천억원이던 국방비는 매년 8~9%씩 늘어나 △2004년 19조1천억원 △2005년 21조5천억원 △2006년 22조5천억원 △2007년 24조5천억원을 기록했고, 2008년에는 약 2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노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국방비는 무려 56%가량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국방비 증액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국방개혁 2020’에 따라 2006~2020년까지 총 621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고, 중기적으로 2011년까지 매년 9.9%씩 늘려 2011년 국방비 목표액을 36조원으로 잡고 있다. 이런 국방비 증액을 통해, 현재 전투력보다 △전차 전력 1.8배 △헬기 전력 2배 △수상함 2배 △잠수함 2.6배 △전투기 1.7배로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운운하는 것이 쑥스러울 정도의 엄청난 군비 증강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불확실한 위협’이 ‘확실한 위협’으로?

한국의 군사비 지출은 이미 세계 7~8위 수준이고, 전투력도 이 정도에 해당한다.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1위권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구나 세계 최강국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주변 강대국이 과거와 같이 한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동기도 이유도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늘날 한국의 군비 지출은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 막연한 ‘안보위협론’에 기대어 군사대국을 향해 뛰어가는 동안,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많은 국민들은 지쳐 쓰러지고,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물어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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