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가 인지도 못하는 상황에서의 여론조사, 고작 4일간의 공고… 결정지 강정마을에선 이제서야 치열한 신경전 시작돼
▣ 제주=글 정인환 기자inh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정책 결정은 이미 끝났다.”
지난 6월4일 오후 제주시 연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김동문 제주해군기지 사업준비단장(대령)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돌이켜보면 긴 세월이다. 1993년 최초 소요 제기 이후 13년여, 2002년 5월 해양수산부가 연안항 기본계획안 해군기지 반영 여부 의견을 조회한 때로부터만 따져도 5년이 흘렀다. 추진과 반대, 중단과 재개를 이어왔다. 서귀포시 화순항에서 시작한 후보 지역이 위미1리와 2리를 거쳐가며 바뀌는 사이 말도, 탈도 많았다. 지난 5월14일 김태환 제주도 지사는 도민 여론조사를 근거로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을 제주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로 선정·발표했으니, 홀가분해할 법도 하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이제 ‘기정사실’이 된 것일까?
국방부가 양해각서를 일방적으로 작성
“군에서 이제껏 해온 어떤 사업보다도 정보공개 노력을 많이 했다. 지난 2005년 이후로 지역언론에만 80여 차례 출연해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김동문 단장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는 “이는 해군기지 부지 결정 과정에서 지역민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라며 “제주 해군기지 추진 과정은 군기지 건설 추진사업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새삼 강조했다. 따져보기로 했다.
제주시 문연로에 자리한 제주특별자치도 의회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5월22일 도 의회 제239회 임시회에서 발의한 ‘제주 해군기지 관련 각종 의혹들에 대한 행정사무조사’가 이날 본격적으로 시작된 탓이다. 이튿날인 6월5일 김태환 지사와 유덕상 환경부지사 등 도정 책임자 소환을 앞두고 자료 정리에 바쁜 오옥만 의원(행정조사소위원회 간사)에게 행정사무조사의 목적에 대해 물었다. 오 의원은 “해군기지 건설은 국방부 최고책임자가 나서 제주 도민을 설득해야 할 문제고, 도지사는 인·허가 절차만 처리하면 될 일”이라며 “지역민 의견 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도지사가 직접 나서 모든 걸 하는 통에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들러리 꼴이 되고 말았다”고 날을 세웠다.
행정사무조사를 통해 도의회가 밝혀야 할 의혹은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진다. 먼저 ‘사전협약설’이다.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로 선정하기 전에 이미 국방부와 제주도 간에 해군기지 건설 관련 양해각서(MOU)를 주고받는 등 사전에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협의·결정 과정이 진행됐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와 제주도 당국은 “김장수 국방장관이 (지난 4월)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약속한 지역개발사업 등의 내용을, 도민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취지에서 국방부가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제주도청 쪽과 국방부가 도민 의견 수렴 절차 없이 해군기지 건설을 국방부와 사전에 협의했더라도 문제지만, 양해각서를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게 사실이라면 이 또한 지방정부를 깔보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민주적인 의견 수렴’의 근거로 제시된 해군기지 유치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도 도의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오 의원은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여론조사 결과 도민의 70%가량이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인지 여부와 찬반 여부만 물은 여론조사는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태환 지사는 오는 7월 초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며 “정치적 책임을 다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려는 의도를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지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1·2심에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600만원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통탄하다 못해 이렇게 나이 든 사람들이 찾아왔다. 화순에서 5년, 위미에서 2년 걸린 일이 강정마을에선 단 일주일도 안 돼 처리됐다.” 강원철 도의원(행정심사소위원장) 방에는 때마침 강정해군기지 유치반대 추진위원회(이하 반대위) 소속 주민 10여 명이 몰려와 있었다. 한 주민이 격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양홍찬 반대위원장이 찬찬히 말을 받았다.
“이게 무슨 진주만 기습작전도 아니고…”
“마을 향약에는 주민총회를 하려면 7일간 공고를 하게 돼 있다.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린 총회는 고작 4일간 공고를 했다. 수시로 하게 돼 있는 안내방송도 몇 차례 하지 않았다. 총회의 내용도 ‘해군기지 관련 건’이었다. 정작 회의 때는 ‘해군기지 유치 건’으로 바뀌었다. 어떤 공론화 과정도 없이 고작 두 시간여 만에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양 위원장은 “도지사는 강정마을 주민과 대화 한 번 하지 않았고, 해군기지 후보지로 선정할 때까지 마을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며 “전 주민이 결정해야 할 마을의 미래가 해군기지 유치에 찬성하는 주민 80여 명의 박수로 결정됐다”고 강조했다. “기지 건설을 위해선 주민 의사가 가장 중요한데, 강정마을에서 찬성 의견이 절대 우세했기 때문에 후보지로 결정된 것”이라던 해군 쪽 설명과는 사뭇 다른 얘기였다. 마을로 가봐야 했다.
한라산 관통도로를 달려 서귀포로 접어들었다.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바닷가로 다가서자 오른쪽으로 강정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연산호 천연 군락지로 알려진 범섬이 저만치 마을 앞바다에 둥둥 떠 있다. ‘자연생태 우수마을’이란 표석이 아니어도, 중문 관광단지를 지척에 둔 강정마을의 풍광은 뭍사람의 눈길을 쉽게 사로잡았다.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 반대위 회원들이 마을 화훼조합 사무실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해군기지 문제가 처음 강정에서 거론된 건 마을 총회 공고가 난 4월22일이다. 나흘 만인 4월26일 총회를 했고, 그 자리에서 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됐다. 이튿날인 4월27일 찬성파들이 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유치신청 기자회견을 했으니, 꼭 닷새 만에 일사천리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이 내려진 게다.”
“이게 무슨 진주만 기습작전 하는 것도 아니고…. 총회하던 날 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던 시간에 이미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에 찬성했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에 나왔다. 이게 말이 되나. 긴 말 할 것 없다. 마을총회를 다시 열어 뒤집어야 한다.” 흥분한 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나왔다. ‘정책 결정’은 이미 ‘끝’이 났다는 해군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찬성 쪽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해군기지 유치를 주도한 윤태정 마을회장이 운영한다는 민박집을 찾아나섰다. 민박집 2층 구석방에선 이미 여러 명의 ‘찬성파’ 주민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방 주인은 뜻밖에도 송무진 해군기지 사업준비단 통제반장(소령)이었다. 송 소령은 “해군기지 유치 결정 이후 마을 주민들이 이와 관련해 궁금해하는 점을 알려주고,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소개로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찬성파’ 주민 2명과 얘기를 나눴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그들은 “해군기지 유치 추진위원으로 불러달라”며 입을 열었다.
찬성파가 몰려간 곳은 사업준비단 통제반장의 방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한 마을총회 때 방명록에 이름을 쓴 사람만 87명이다. 실제 참석자는 120명이 넘는다. 마을 향약상 주민 50명 이상만 참석하면 총회가 열리게 돼 있다. 반대하려 했다면 그때 얘기를 했어야 한다. 만장일치로 박수를 쳐 통과시킬 때 아무 얘기도 없었으니, 참석자 모두 묵시적으로 동의를 한 게다.”
“바로 곁에 중문단지와 월드컵 경기장을 두고도 강정마을은 개발에서 철저히 소외돼왔다. 마을 길 하나 넓히는 것도 10년여째 숙원사업으로 남아 있다. 지금 상태로 가면 마을은 없어지고 말 게다. 바다가 직장인 해녀들까지 찬성을 하고 나섰다. 오죽하면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겠나.”
마을총회 결정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흥분하던 ‘추진위원’들은 개발에서 소외된 고향 얘기를 하며 잠시 숙연해졌다. 하지만 반대위에서 제안한 총회 재소집 주장에 대해 묻자 “일사부재리도 모르나. 한 번 마을총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또 회의를 열어 뒤집겠다는 발상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말”이라며 다시 열을 올렸다.
윤태정 마을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국책사업으로 확정됐으면 추진하면 되는 것이며, 마을총회에서 번복한다고 바뀔 건 없다”며 “해군기지 유치의 긍정적 측면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 반대파들도 찬성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을발전 종합계획도 곧 나올 것이고, 보상도 주민들에게 절대 섭섭하지 않게 받아낼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였지만, 끝내 입을 열지는 않았다. 팽팽하게 맞선 주민 여론이 조금씩 불안하게 느껴졌다.
“….”
이튿날 아침 마을회관에선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해군기지 유치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 앉은 주민들은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양홍찬 반대위 위원장이 “지난번에 마을총회 회의록과 녹취록을 공개해달라고 했는데 답이 없기에 다시 요청드리러 왔다”며 공문서 양식으로 작성된 요청서를 마을회장 윤씨에게 건넸다. 그는 “알았다. 곧 주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 은 순간 마을회장 사무실에 모여 앉은 10여 명의 사내들 사이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뜨거운 차를 훌훌 불어가며 목으로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이윽고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기어이 고성이 터져나왔다.
당국은 ‘끝’, 강정마을은 ‘시작’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무슨….”
“방금 뭐라고 했어, 너 정말…. 에잇!”
흥분한 사내들이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종이컵에 담긴 녹차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사무실 한쪽에서 깊은 한숨이 새나왔다. 2007년 6월5일 오전 11시45분 제주도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 회관의 풍경이다. 찬성과 반대로 갈려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왔지만, 해군기지 문제로 고성이 오간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제주도와 해군 당국은 서둘러 ‘끝’을 얘기했지만, 강정마을에선 이제 ‘시작’임이 분명해졌다. 결정된 정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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