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열린 한나라당 첫 ‘2007 정책비전대회’… “홍보와 달리 일반 시민 출입 없이 당원들만의 행사”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2002년 5월? “정치적 역동성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2002년 국회를 출입했던 한 중앙일간지 기자가 떠올린 당시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002년 5월9일 당의 대선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 최병렬(18.6%)-이부영(10.5%)-이상희(2.4%) 후보가 경선에 참가했으나, 68%의 득표율을 기록한 이회창의 대세론을 흔들진 못했다. 경선 내내 변수는 없었고, 흥행도 없었다. ‘이회창의, 이회창에 의한, 이회창을 위한’ ‘1인용 경선’이었다.
기억·반성 없는 공간만 ‘광주’
2007년 5월? 한나라당은 5년 전과는 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5월29일 광주 5·18 기념문화회관에서 대통령 선거 후보를 뽑기 위한 첫 행사를 열었다. 대통령 후보에 도전한 박근혜 전 당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등 다섯 명이 ‘2007 정책비전대회’에 참가해, 경제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박근혜와 이명박의 대립 구도를 기본으로 진행됐다. 당내에서 두 사람은 아직도 누가 확실한 우위에 섰다고 얘기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한 세 대결을 보이고 있다. 토론회는 동시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이명박과 다른 네 예비후보와의 대립이기도 했다. 분명한 건 5년 전과 달리 ‘1인용 경선’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첫 경선 이벤트 장소로 ‘광주’를 택했다. 텃밭인 영남을 먼저 가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당장 표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호남의 반한나라당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당이 호남을 배려하고 있다는 정치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광주는 또 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이 5년 전 경선을 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던 곳이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에 영남이란 곳이 불편하듯 한나라당에 호남은 어려운 곳이다. 조선대생 등 20여 명의 대학생들이 “5월 광주(의) 정략적 이용, 한나라당을 해체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건물 앞에서 시위를 했지만, 곳곳에서 마주친 시민들은 광주에 온 한나라당을 밉게 보지만은 않았다. 양효동(45)씨는 “한나라당의 정권을 잡기 위한 표심 전략”이라면서도 “어쨌든 가장 어려운 표밭에 먼저 온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계도 또렷했다. 토론회의 누구도 ‘5·18’에 대한 기념이나 기억, 반성을 내놓진 않았다. 토론회의 공간만 광주였을 뿐이다. 이날 행사엔 실제 평범한 광주 시민들의 참여는 배제됐다. 참석 대상은 대선 예비후보를 포함해 중앙당의 경우 대표최고위원과 중앙당직자, 당 소속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지방당은 광역·기초의원, 광역·기초단체장, 중앙위원, 지역 당원 등 1천여 명만이 참석할 수 있었다. 이 전 시장의 팬클럽인 MB연대의 이상훈(31) 정책기획팀장은 “선거를 축제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축제 분위기로 가진 못했다. ‘당심’에 대한 배려가 주가 됐지, 경선 투표권의 50%를 쥔 ‘민심’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당에서는 후보자의 지지자가 몰려들어 토론회가 과열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참여를 제한했다고 하지만, 한나라당 광주시당의 한 부위원장은 “텔레비전 정책토론회 광고와 달리 일반 시민 출입이 없이 당원들만의 행사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아직 누가 간판을 달고 나올지 안갯속인 ‘범여권’에 견줘 수십, 수백 발짝 앞서가고 있다. 걸출한 예비후보가 둘이나 있고, 개성이 강한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등이 경쟁에 동참한 것도 모양새를 돋웠다. 당내 경선 후보 등록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들의 관심이 큰 경제 분야의 정책 중심으로 서둘러 토론회를 열었다. 한나라당이 치고 나가는 데는 후보들 간의 경기장 밖 과열 경쟁으로 빚어질 수 있는 당내 분란을 차단하고, 한나라당 중심으로 대선 분위기를 지배해나가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토론 전 경선 후보 등록을 약속받고, 경선 서약식을 갖는 것도 경선에서 으레 있는 일이지만 반년 넘게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경선 방식과 검증 등을 놓고 대립과 갈등을 일으킨 점에 비춰보면 결코 예사롭지 않은 장면이다.
이명박, 대운하 반대도 반갑다?
하지만 ‘바람’은 없었다. 좋은 시간대가 아니었지만 공중파와 라디오로 생중계를 했는데도 흥행은 없었다. 지난해부터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 2인 중심의 경쟁 구도가 토론회에서도 이어졌다. 선두를 달리는 이명박은 방어적이었고 그를 견제하는 박근혜도 아직 조심스러웠다. ‘실수’를 피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다른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붙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신문에 크게 실리지 못했다. 토론회가 끝나도 곧바로 표결로 이어지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토론회의 관심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텔레비전 토론회 자체도 후보의 지지율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나마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를 둘러싼 논쟁이 흥미를 끌었다. 홍준표 예비후보는 “길이 18km의 경인운하도 10조8천억원을 들여 15년간 추진하다 환경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는데 530km가 넘고 14조원이 드는 경부운하가 되겠냐”며 “청계천 복원은 환경 복원이지만, 경부운하는 환경 파괴”라고 주장했다. 원희룡 예비후보는 “예산이 없어서 못하는 문제가 너무 많은데 물류 목적은 20%밖에 안 되는 운하에 막대한 돈을 들여야 하냐”고 따졌다. 이 전 시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물류는 (한반도 대운하의) 전체 목적의 20%다”라고 밝혔다. 운하를 이용한 물류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해왔던 기존의 태도를 돌연 바꾼 것이다.
논쟁은 장외로도 이어졌다. 박 전 대표를 지원하는 유승민 의원은 토론회 이틀 뒤 “경제성 없는 선거용 경부운하 공약을 철회하라”는 A4용지 6장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유 의원은 “경제성 없는 경부운하로는 우리 경제를 살리기커녕 더 어렵게 할 뿐”이라며 그 근거로 △100원 비용으로 5원 내지 24원에 불과한 편익 △고속도로와 철도의 10배에 이르는 60~70시간의 화물 운송 시간으로 인한 물동량 수요 부족 △한강 취수원의 이전 및 이중 수로 조성 등의 비현실성 △골재와 민자유치의 허구성 등을 들었다.
경부운하 논쟁에서 이 전 시장 쪽의 대응은 느긋하다. 이 전 시장을 돕는 정두언 의원은 “(운하란) 이슈를 계속 키워주는 건, 자기들도 모르게 우리를 도와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도 토론회에서 때론 적극적으로 해명하면서도 “요즘 보면 이명박의 대운하를 반대해야 뭐가 되는 것 같은 정치적인 분위기가 있는 거 같다”고 말하는 여유로움을 보였다. 하지만 정치컨설턴트인 김윤재 변호사의 생각은 다르다. “청계천이라는 것은 2002년 당시 김민석 민주당 후보와의 싸움에서 이슈를 주도하기 위해서 논쟁적인 것을 던진 격”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훨씬 앞서가는 상황에서 굳이 논쟁적인 의제를 던져 자기를 평가받으려는 것은 과도한 확신이자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6월 한 달간 부산·대전·서울 순회 토론회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8월19일 확정된다. 석 달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 한나라당은 6월 한 달간 부산, 대전, 서울을 돌며 교육·복지, 통일·외교·안보, 당 집권 비전 등을 주제로 순회 토론회를 개최한다. 경선 과정이 2002년에 비해 분명 역동적인 요소들이 늘어났지만, 첫 토론회가 바람을 일으킬 만한 흥행을 몰고 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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