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김문기’ 투쟁으로 ‘사학법’이란 제도적 문제에 다다른 여준성 전 총학생회장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여준성(36)씨의 이메일은 ‘반문기’다. 알파벳 ‘banmunki’. 대학 선후배들은 그가 이메일 주소를 불러주면, 바로 웃는다고 한다. 여씨는 상지대를 나왔다. ‘반문기’는 김문기 전 이사장과의 질긴 악연의 흔적이다.

여씨는 김문기씨가 언제 구속됐는지 정확히 기억했다. 1993년 4월. 김씨는 공금횡령과 부정입학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여씨는 상지대 총학생회장이었다. 90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체육학과 건물을 빼곤 학교의 모든 건물을 학생들이 점거했다. 흔히 말하는 캠퍼스 낭만은 없었다. 그는 “대학생활은 ‘반김문기’로 시작해서 ‘반김문기’로 끝났다”고 말했다. 유독 그가 유별났던 건 아니다. 김문기란 이름이 언론에서 종적을 감추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때도, 상지대를 나온 이들에겐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대학 동문들이 모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문기란 이름이 나오는 거예요.” 학생·교수·교직원 거의 모두가 92~94년 46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농성에 참여했다. “92~94년 졸업한 학생들은 취업도 어려웠어요.” 분규 사학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이었다.
대학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혼란의 연속이었던 대학은 94년 대법원이 김문기씨에게 부정입학 혐의 등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시나브로 가라앉았다. 그는 사학 비리 고발과 투쟁의 전도사가 되었다. “분규가 있던 사학을 다니면서 강의를 했어요. 분규가 있으면 모두 상지대를 쳐다봤죠. 어떻게 사학 비리가 저질러지고 또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그때의 인연은 98년 그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가의 길로 이끌었다.
한동안 희미해진 김문기씨의 이름을 다시 마주친 것도 그즈음이다. 99년 7월29일 김덕중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상지대 문제에 다시 불을 지폈다. “대학에는 주인이 있어야 하고,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당시 김 장관은 상지대 관선 이사장과 총장을 만난 자리에 김문기씨를 합석시켰다.
여씨는 다시 ‘반김문기’를 외쳤다. 전교조뿐만 아니라 참여연대, 참교육학부모회 등 28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사학국본)의 간사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학국본이 “상지대를 계기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반김문기’ 투쟁에서 사학법이란 제도적인 문제로 접근할 필요성도 깨달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상지대가 사학법 개정의 한가운데 있었다”고 말했다.
상지대 이사장을 지낸 김문기씨는 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90년 ‘사학법 개정’ 때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80~92년까지 내리 3선을 했다. 여씨는 “90년 사학법이 ‘개악’될 때, 김문기씨가 로비를 한 건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당시 사학법 개정으로 재단의 권한은 한층 강화됐다. 당시 사정에 밝은 박정원 교수노조 부위원장은 “89년 1월 한국대학법인협의회가 각 회원 대학에 발송한 문서에서, 상지대의 김문기 당시 의원은 사학법 소관 상임위인 문공위(지금의 교육위)의 함종한 위원에 대한 로비를 맡았다”며 “당시 친인척 이사의 비율이 5분의 2(기존 3분의 1)로 늘어났고, 과거 대학의 총·학장이 교원을 임명하던 것을 이사회의 의결 사항으로 변경시켰다”고 말했다. 함 의원은 김문기씨가 이사장으로 있던 상지대에 교수로 몸담고 있었다. 이외에도 이사장의 배우자·직계 존비속의 대학 총·학장 임명 금지 조항이 삭제되고, 이사장의 다른 학교법인 이사장 겸직 금지 조항 삭제 등이 이뤄졌다. 90년은 ‘사학법 개악’의 역사로 기록돼 있다.

상지대, 더욱 직접적으론 김문기란 존재로 인해 만들어진 사학국본은 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면서 사학법 개정에 동의하지 않는 의원들의 낙천·낙선 운동을 벌였다. 여씨는 “2000년 총선에서 펼쳐진 낙천·낙선 운동은 사실 사학국본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학법 개정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여씨는 17대 국회가 들어서자 교육위 위원인 정봉주 의원실의 보좌관으로 들어갔다. 의원 중심의 구조인 국회에서 눈에 띌 수 없는 존재였지만, 그는 나름대로 2005년 사학법 개정에 힘을 보탰다. 그는 “당시 한국사학법인연합회가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면서, 국회의원의 일개 보좌관인 제 이름도 넣어서 비판했다”고 말했다.
김문기씨는 2004년 1월 ‘임시이사회의 정이사 선임 결의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에서 졌지만 항소심에 이어 지난 5월17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그가 이겼다. 대법원 판결 가운데 그와 관련된 핵심 내용은 상지대가 정이사 체제로 전환될 때, 과거 정이사였던 김씨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의 환영 사설이 잇따랐다.
이와 관련된 헌법소원도 제기돼 있다. 이번 판결과 연관이 있는 임시이사 관련 규정 등 모두 9가지가 심판 청구 대상이다. 보수언론과 사학은 이참에 “현행 사학법의 ‘위헌적 독소조항’을 재개정하자”고 외쳤다.
여씨가 대법원의 판결이 가져올 파장을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헌재 판결이나 현재 여야가 협의 중인 사학법 재개정 움직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4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사학법을 다시 뜯어고치기로 합의했다. 한나라당의 집요한 요구로 현행 사학법에서 내용이 조금 ‘후퇴’한 것이다. 그는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한나라당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그나마 구두로 ‘합의’된 사학법 개정 내용에 추가적인 양보를 받아내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학법 재개정 과정에서 김문기씨의 판결이 미칠 여파를 우려했다. 한나라당과 보수 사학들은 임시이사와 최근 몇 년 새 가장 쟁점이 됐던 개방형 이사제를 한 묶음으로 본다. ‘개방형 이사제로 임시이사 파견이 늘어나고, 그러면 사학의 자율성이 더 크게 침해된다’는 논리다. 여씨는 앞으로 한나라당이나 보수언론 및 사학에서 “임시이사 제도의 문제점을 많이 부각시킬 테고 임시이사를 임명하는 주체에 대한 문제, 더 나아가 개방형 이사제를 계속해서 흠집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문기와 또 싸워야지?”
5월23일 만난 여씨는 의원의 지역구 업무를 챙기느라 바빴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교육부가 상지대 정이사 문제를 빨리 해결하도록 해야죠.”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 현재 상지대 교원으로 있는 대학 선배 한 명이 찾아와 그와 얘기를 나누고 갔다. 여씨는 김문기씨와 싸운 거의 모든 상지대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정의를 지켜낸 것 아닙니까?” 물론 이들이 말하는 정의와 김문기씨가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얘기하는 정의는 달랐다.
그는 15~16년 전 동문들과 했던 얘기를 요즘 다시 꺼낸다. “김문기와 또 싸워야지?”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버티던 김병기, 결국 사퇴…‘특혜·갑질’ 10가지 의혹 줄줄이

이혜훈 누가 추천?…김종인·정규재는 부인, 여권은 윤여준·류덕현 추측도

과기부, 쿠팡 정면반박…“유출 3천건 아닌 3300만건” 쐐기

김병기, 강선우 ‘1억 수수’ 묵인했나…돈 건넨 시의원 공천

박나래 대신 90도 사과…전현무 “나혼산, 기대 못 미쳐 송구”

‘발끈’ 쿠팡, 꼼수보상 비판에 “1조7천억 전례 없는 액수 아니냐”
![이 대통령, 이혜훈 논란에 “잡탕 아닌 무지개 만들자는 것” [영상] 이 대통령, 이혜훈 논란에 “잡탕 아닌 무지개 만들자는 것” [영상]](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30/53_17670664616545_1817670664462732.jpg)
이 대통령, 이혜훈 논란에 “잡탕 아닌 무지개 만들자는 것” [영상]
![[단독] “회사원 김병기 차남, 낮 3시 헬스장”…편입 조건으로 취직 뒤 근무태만 [단독] “회사원 김병기 차남, 낮 3시 헬스장”…편입 조건으로 취직 뒤 근무태만](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30/53_17670434928681_6017670434355438.jpg)
[단독] “회사원 김병기 차남, 낮 3시 헬스장”…편입 조건으로 취직 뒤 근무태만

이혜훈, 내란 옹호 논란에 사과…“잘못된 과거와 단절할 것”

뻗대는 쿠팡 “국회 통역기 안 쓸래”…청문회 시작부터 잡음

![[속보] 김병기, 원내대표직 사퇴…“시시비비 가리고 더 큰 책임 감당할 것” [속보] 김병기, 원내대표직 사퇴…“시시비비 가리고 더 큰 책임 감당할 것”](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30/53_17670560530648_20251230500724.jpg)
![[단독] 고용노동부 용역보고서 입수 “심야배송 택배기사 혈압 위험 확인” [단독] 고용노동부 용역보고서 입수 “심야배송 택배기사 혈압 위험 확인”](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9/53_17669898709371_17669898590944_20251229502156.jpg)

![[단독] 김병기 차남, 편입조건 중소기업 입사 뒤 부실 근무 정황…보좌진들 “원칙대로 출근시켜야” [단독] 김병기 차남, 편입조건 중소기업 입사 뒤 부실 근무 정황…보좌진들 “원칙대로 출근시켜야”](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30/53_17670542143304_2025123050050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