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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FTA 효과, 수상한 CGE 모형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책 연구기관, 추정 무역수지가 3월엔 적자라더니 지금은 왜 흑자가 된 걸까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가보지 않은 길’의 노면 상태를 둘러싼 다툼의 관전은 참가만큼이나 고단하다. 저마다 내세우는 주장의 논리는 너무 복잡하고 어지럽다. 울퉁불퉁 자갈밭일지, 미끈매끈한 포장길인지 판단하기란 애초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농촌경제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11개 기관이 4월 말 국회 보고자료로 내놓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휘황찬란하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10년 동안 국내 총생산(GDP)은 6.0%(80조원) 증가하고 일자리는 34만 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한-미 FTA가 없을 경우와 견줘 그렇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는 46억달러, 전체 무역흑자는 200억달러 각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너무 큰 거시지표여서 오히려 실감하기 어려울 수 있겠는데, KIEP가 지난해 3월에 내놓았던 효과 분석과 비교해보면 체감도가 조금 높아질까. 당시 발표 자료에선 실질 GDP 증가율은 7.8%였고, 일자리 증가 규모는 55만 개였다. 또 대미 무역수지와 전체 무역수지는 각각 47억달러 적자, 6억달러 흑자로 관측됐다. 재정경제부는 이런 차이에 대해 “실제 (협상) 타결 내용에 따른 부문별 개방 수준의 차이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협상 전 추정치에 견줘 성장률이나 고용 규모는 조금 덜 늘어난 반면,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에선 대규모 적자가 돌연 대규모 흑자로 반전됐으니 “미국에 판정승을 거뒀다”는 협상 직후의 정부 쪽 자평은 지나친 ‘겸손’(!)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피해 줄이고 효과 늘리는 분위기”

FTA 효과 분석에 대한 논란에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듯 이들 연구기관은 보고자료 초반에 ‘분석 방법’을 밝혀놓고 있다. ‘한-미 FTA 체결이 우리나라의 거시경제 지표에 미치는 효과를 추정하기 위하여 연산가능일반균형(CGE) 모형을 사용’했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부분이다. 여기저기 자료를 더 뒤져보니, ‘CGE’(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모형은 복수의 경제 주체 간 상호 연계성을 계량화해 (한-미 FTA 같은) ‘외부 충격’이 경제 주체의 행위에 끼치는 영향을 수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정도로 설명돼 있다. ‘부분균형 분석’과 달리 외부 충격의 변화가 경제 주체에 끼치는 영향을 ‘동태적으로’ ‘충격 전달 경로별로’ 파악할 수 있단다.

정부 용역을 받은 이들 연구기관의 보고자료에서 강한 의구심이 불거지는 대목은 바로 이 CGE와 얽혀 있다. 알 듯 모를 듯 복잡하고 어려워도 뭐 그런 게 있나 보다라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이들 연구기관에서 이미 밝혔듯이 무역수지 효과만큼은 CGE 분석 방법을 쓰지 않고 산업별 무역수지를 합산해 계산했다고 한다. 지난해 KIEP 분석에선 무역효과도 CGE 모형으로 도출했는데 어찌된 일일까? 재경부와 KIEP의 설명은 이렇다. “CGE 모형은 수출입·무역수지 변화를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협상 타결로 산업별 관세 양허안, 서비스 유보안이 나와 있어 이걸 활용하는 게 더 정확하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상쾌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협상 타결 한 달 만에 내놓은 이번 분석 결과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목이 바로 대미 무역수지 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분석에 견줘 ‘방향성’이 정반대로 나온 유일한 부분이기도 하다.

추정 무역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돌변한 것은 상식에 비춰보더라도 의문을 남긴다. 우리나라의 관세는 미국의 3배 수준이다. 장벽을 거의 같게 허무는 협상을 한 터에 우리 쪽의 무역수지 흑자가 늘어난다는 결과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조작”이라고 했다. “무역수지를 CGE 분석에서 뺀 이유는 간단하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피해 규모를 부풀려 보고한다고) 대통령에게 질책을 들었지 않나. 피해를 줄이고 효과를 늘리는 분위기가 있었던 거다.”

KIEP를 비롯한 연구기관들의 효과 분석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는 이들 중에는 고성보 제주대 교수(산업응용경제학)도 있다. 고 교수는 4월27일 내놓은 ‘한-미 FTA가 감귤산업에 미치는 영향분석’에서 실질 생산을 기준으로 5년 뒤 연 605억원, 7년 뒤 923억원, 15년 뒤에는 1002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15년간 제주 감귤산업이 입게 될 누적 피해액은 1조1262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정부 쪽 연구기관들의 피해 산정액은 협정 발효 뒤 1~5년은 연평균 275억원, 6~10년은 연평균 635억원, 11~15년은 연평균 658억원으로 15년간 누적 피해액은 7840억원이다.

정부 쪽의 피해 산정액이 훨씬 적다는 점은 무시해도 남는 문제가 또 있다. 협정 발효 뒤 생산 감소액이 5년차 457억원, 10년차 658억원, 15년차 658억원으로 돼 있는 부분이다. 10년차, 15년차의 피해 규모가 똑같다는 게 논란을 부른다. 우연찮게 숫자가 일치한 것일까? 고성보 교수는 “7년차 이후부터 피해액이 일정한(158억원) 수준으로 돼 있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감귤에 대한 관세(144%)가 15년차에 철폐되는 큰 제도의 변화 속에서 피해액이 어떻게 일정하게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농업 분야의 피해액을 줄이기 위해 모형 중간에 뭔가 ‘강한 가정’을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상식을 벗어나 의심을 갖게 하는 예는 또 있다. 미국 쪽 요구에 따른 ‘지적 재산권 강화’를 제도 개선의 사례로 꼽아놓은 부분을 보자. “신기술에 대한 보다 높은 보호막을 제공하기 때문에 창작에 대한 더 큰 동기를 제공. 활발한 창작 활동은 곧 혁신과 발명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성이 증대되는 효과를 기대.” 한국정보법학회가 지난해 8월 ‘보호기간 연장의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에서 “지적 재산권 연장 효과의 70% 이상이 해외로 유출된다”고 한 것과는 정반대 결과다. 정보법학회는 당시 “저작권 보호 연장은 구체적인 실증 분석을 바탕으로 이뤄지기보다 정치적인 이유 등 저작권 보호의 본질을 벗어난 이유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한 바 있다.

감귤 누적 피해액, 10년과 15년이 똑같다?

농업 부문의 피해액(생산 감소액)이 연평균 6698억원으로 연간 농업생산액 36조원의 1~2%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 것이나, 서비스 부문의 고용 증가가 전체의 80%에 가까운 27만 명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의구심의 대상이다. 농업 부문에 대한 정부의 요란한 대책이나, 서비스 부문의 개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실토와 아귀가 맞지 않는 탓이다.

협상 타결 뒤 잔뜩 고무돼 있어야 할 대통령 직속 한-미 FTA체결지원위원회에는 요즘 묘한 기류가 형성돼 있다. 조직 이름에서 ‘한-미’를 떼내고 ‘재경부 직속’으로 바꾸는 대통령령 개정 작업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재경부 출신들을 빼고는 반길 리 없다. 여러 부처들을 두루 통할하려면 총리실 소속으로 하는 게 맞다는 주장은 사그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재경부의 힘을 새삼 실감케 한다. 정부 쪽 주장대로 한-미 FTA가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지는 불투명해도 재경부 관료들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미 FTA의 고용 증대 효과에는 이 부분도 포함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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