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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따라 널뛰는 ‘자본주의 역사책’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해방-한국전쟁-5·16-유신독재 겪으며 당시 지배 세력의 요구에 충실했던 교과서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경제 교과서엔 한국 자본주의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대에 따라 지배적인 세력의 요청과 필요에 경제 교과서도 부응해왔다.

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소장된 4차 교육 과정기(1981~87) 고등학교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를 맛보기로 분석해봤다. 당시 경제 과목은 따로 없었다. 경제 관련 내용은 사회에 포함됐다. 교사용 지도서를 보면 ‘국민 경제’ 단원에서, 단원 목표란에 요구되는 태도가 나온다. “인류의 경제생활의 발달 과정을 바르게 이해하여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단원 전개 계획에선 좀더 구체적으로 “경제생활의 발달 과정에 있어서는 (학생들이) 마르크스의 경제 발전 단계설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했다. 진단 및 준비 학습 부분에선 “남북한 경제의 비교와 우리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했다. 도 마찬가지다.

“경제 발전으로 북한 야욕 포기시켜”

1988년 5차 교육 과정기엔 가 폐지되고 과목이 등장했다. 문교부가 당시 펴낸 고등학교 사회과 교육 과정 해설집을 보면, “새 교육 과정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의 시장경제(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가지게 하는 데 경제 교육의 목표를 크게 두고 있으므로, ‘국가 사회 8대 강조 사항’의 하나로 경제 교육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제 발전을 ‘북한 공산 집단의 남침 야욕을 포기시키는 첩경’이라고도 표현했다.

또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계획엔 많은 양을 할애하면서도 호의적으로 기술했다. 단원 목표의 하나로 “우리나라 경제개발 계획을 이해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적 협조 자세를 함양”하는 태도를 학생들로 하여금 갖도록 했다. 단원을 전개하면서도 교사가 “(학생들이) 국가의 경제 발전 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를 가지게 한다”는 점에 유의하도록 했다.

국가와 기업 및 시장과의 관계에선 지금과 달리 국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훨씬 강조됐다. 국민경제 단원에서 다룬 ‘대규모 기업의 출현’ 부분을 보자. 국가로서 대기업 성장 전략이 불가피했다고 먼저 전제한 뒤, 관련 부분의 절반 이상을 ‘독과점 형태’ ‘경쟁 배제’ ‘시장경제 약화’ 등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로 기술하고 있다. “…마침내는 소득과 부의 불균등한 분배라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재계는 과거 국가 주도의 고도 성장을 찬양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교과서 논쟁’에서 보인 경제 논리대로라면 당시 교과서는 너무나 반기업적, 반시장적이다.

반공부터 시장·자본에의 봉사까지

해방 뒤 교수요목기(1946~54)를 지나, 1차 교육 과정 시기(1954~63)엔 한국전쟁의 경험이 컸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교육적 과제가 ‘반공사상의 고취와 기술 교육’이었다. 2차 시기(1963~74)에도 반공통일과 자립적 경제 번영을 이루는 데 필요한 태도 등이 주요 과제였다. 3차 시기(1974~81)엔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을 기본으로 방침을 정했다. 교육 과정 변화의 시기도 해방-한국전쟁-5·16-유신독재 등 한국 정치사의 변곡점과 사이클이 일치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경제(사회) 교과서는 1999년 7차 교육 과정기를 거치면서, 이데올로기적 ‘봉사’의 대상을 시장, 기업, 자본 쪽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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