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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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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보따리장사’ 울며 다니네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기대하던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령에서도 제외…4시간씩 이동하고 찜질방에서 새우잠 자도 강의료는 최저생계비에 못 미쳐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4월19일 노동부는 흥미로운 브리핑을 하나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령을 발표한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한 직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길을 터줘 그 구체적인 시행 계획을 놓고 노동계의 갑론을박이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인 시간강사들도 초조하게 법안이 공개되길 기다려왔다. 낭패였다.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는 법 적용의 예외로 삼는다.”

대부분 박사학위를 가진 시간강사들은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됐고, 정규직 전환의 실낱 같은 기대도 무산되고 말았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에서 고등교육개장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동애(61) 전 교수는 “대학이 전체 강의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강사를 착취하면 이는 강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고 말했지만, 이윤을 앞세운 대학들의 상업 논리 앞에서 그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강의 1개당 수입은 160만원, 강사료는 3만원

김 전 교수가 강사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싸움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은 8년 전이다. 그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한성대에서 ‘대우교수’라는 직위로 중국 현대사를 강의하던 평범한 학자였다. 신분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99년이었다. 한성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대우교수’이던 그의 직위를 ‘강사’로 변경했다. 김 전 교수는 이에 반발했고, 돌아온 반응은 ‘느닷없는’ 해고 통보였다. 2000년 8월의 일이다. 그는 한성대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직위해제 및 감봉처분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요구 조건은 간단했다. 비정규직 교수도 전임강사처럼 ‘교육공무원’(이하 교원)으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12월11일부터 교육인적자원부 앞에서 시작한 1인시위는 2004년 6월15일 국가인권위원회의 강사제도 개선 권고가 나올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됐다.

투쟁은 쉽지 않았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2002년 겨울, 김 전 교수는 학교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을 하다 위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천막으로 돌아와 단식을 계속했다.

“저처럼 나이 먹고 자기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겨울 단식투쟁을 하면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추위도 배고픔도 아닌 나를 ‘벌레’처럼 쳐다본 교육부 사무관의 눈빛이었습니다.”

김 전 교수의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지금도 교육부·국회·청와대를 전전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그의 질긴 노력에도 변한 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이 시간강사를 착취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18학점을 신청한 대학생이 한 학기(15주)에 듣는 수업 시간은 약 270시간이다. 등록금을 450만원 낸다고 가정할 때, 학생은 1만6천원의 수업료를 내고 1시간짜리 강의를 듣는 셈이다. 한 강의실에 100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는다고 하면 1시간 강의 1개당 대학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160만원이다. 반면 시간강사 임금으로 나가는 비용은 고작 3만원 남짓(시간당 평균 사립대 3만605원, 국립대 3만9천원). 대학 처지에서는 157만원이 남는 장사다. 이에 견줘 강사들의 연간 강의료는 1080만원으로, 2006년 3인 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시간강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보따리장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계약서 쓰지 않고 느닷없이 잘리기도

임순광(37)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장은 일주일에 16시간씩 강의를 한다. 그는 “강의를 줄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학기에 임 회장이 강의를 맡은 대학은 경북대·금오공대·한국방송통신대·대구대·상주대 등 5개. 대구, 경주 찍고 안동, 상주를 돌아다니다 보니 하루에 차 안에서 4시간 이상을 허비하는 것은 물론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임 회장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구를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강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도 많다”고 토로했다. 이승철(가명) 대구가톨릭대 강사는 “강의를 맡을 때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느닷없이 잘리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그는 “2001년 2학기에 강의를 배정받고 강의계획서를 프린트까지 했는데, 8월 중순쯤 학교 쪽에서 ‘강의를 줄 수 없다’고 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찍히면 다른 학교에서 강의를 받기도 어렵고, 강의를 준 지인이 다칠까봐 대다수의 시간강사들은 대학에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그는 답답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시간강사들이 어쩌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걸까. 1949년 제정된 고등교육법 75조는 “대학 교원으로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강사, 조교를 둔다”고 못박고 있었다. 그러나 1972년 ‘교육공무원법’에서 교원의 정의에 ‘전임강사’란 단서를 달았고, 1977년 교육법 75조를 변경해 ‘강사’를 ‘전임강사’란 말로 바꾸면서 (시간)강사들은 교원의 지위를 잃게 된다. 강사를 ‘전임강사’로 범위를 좁힌 이유에 대해 홍영경 성공회대 영어학 강사는 “전임강사 제도는 지식인들이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지식인 탄압 수단’으로 이용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임강사와 시간강사를 구분해 체제에 저항하는 학자들은 신분을 보장해주지 않는 방법을 써 지식인을 옥죄었다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졸업정원제’(입학생은 많이 뽑고, 적게 졸업시키는 제도)를 채택하면서 많아진 학생 수만큼 강사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홍 강사는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군부독재 정권과 학생 수를 늘려 재원을 확보하려는 학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 시절, 비정규직 법안이 1996년에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시간강사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고착화됐다.

고등교육법에서 법적 지위 부여해야

그 와중에 사건이 터졌다. 2003년 5월, 서울대에서 강의하던 백준희 강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비정규직 교수 문제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게 된 것이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도적으로 시간강사의 신분을 보장하라는 ‘시간강사 처우개선 권고’를 교육부에 보냈다.

또 지난 4월5일에는 대법원이 고려대와 연세대 등 사립대학 50여 곳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업재해보상보험료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시간강사도 근로자”라며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는 대학 시간강사의 지위를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로 못박는 것으로써, 비현실적 급여와 불안정한 고용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시간강사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큰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냉정한 시각도 존재한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교육부는 예산 문제 때문에 난색을 표하고 있고, 사립학교는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고 나오고 있다”며 “실질적인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고등교육법상 시간강사의 법적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니나다를까. 실제로 교육부는 국공립대 강사 강의료를 조금 올린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도 방조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백정하 대교협 정책위원회 부장은 “시간강사를 정규직화하는 것은 돈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부담이 있고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반응은 어떨까? 국회는 서울대 백준희 강사가 자살한 2003년에도 시간강사 처우 관련 예산 1400여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최순영 의원이 2004년에,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6년에 각각 강사들에게 교원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실제 법 개정까지 갈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최 의원의 법안은 지난해 교육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통과에 실패했고, 이 의원의 법안은 아직 교육위에 상정도 안 된 상태다.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도 인건비 등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에 필요한 경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준비 중인데, 법안을 실행하려면 연간 7천억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법안이 통과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교육위 소속의 한 여당 의원은 “시간강사 처우 개선 문제는 정부 예산을 수반하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대학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학들의 저항이 불보듯 뻔하다.

최순영 의원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주장하고 있다. 최 의원은 “대학이 시간강사를 착취해서 재산을 불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재정 건전성을 측정할 수 있는 지수를 개발하는 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2000년에서 2005년까지 사립대학 전체 누적 적립금의 합계는 5조7677억원에 이르며, 그중 42.7%가 건축 적립금이고 기타 적립금도 40.8%에 이른다”고 밝혔다. 상당수의 대학들이 교육이나 연구에 투자하기보다 몸집 부풀리기에 몰두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적립금은 원래 학교의 장이 적립금 사용계획을 관할청에 사전에 보고해야 한다(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 22조2항). 그러나 최 의원은 “대학이 교육부에 학교 회계 예산서만 제출할 뿐, 교육부는 대학이 적립금을 어떻게 쓰는지 실질적인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학교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교육부가 이를 제대로 감시하면 사용처가 불분명한 국립대 기성회비와 사립대의 적립금을 비정규직 강사를 전임강사로 채용하는 데 쓸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적립금·기성회비 내역을 감시하면…

김 전 교수는 “교육은 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느냐. 무엇을 위해 교육을 해야 하느냐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시간강사가 교원으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을 때까지, 상업화로 물든 대학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할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쯤이면 김 전 교수가 외로운 싸움을 그만둘 수 있을까. 그가 작은 어깨에 멘 배낭이 너무 크고 무거워 보였다.



절반의 사람들, 1/9의 인건비

전임교원의 인건비가 국립대의 경우 시간강사의 9배, 사립대는 7.7배

4년제 대학 시간강사는 2006년 기준 국공립대 1만7960명, 사립대 3만5405명으로 총 5만3365명이다. 이들이 대학 강의를 맡는 비율이 국공립대는 37.1%, 사립대는 34.6%에 이른다. 성별로는 남성 시간강사(국공립대 61.2%, 사립대 54.7%)가 여성 시간강사(국공립대 38.9%, 사립대 45.3%)보다 더 많다.
국공립대의 경우, 학교당 평균 시간강사 수는 427명이다. 한국방송통신대가 2758명으로 시간강사 수가 가장 많고 서울대 1251명, 부산대 1162명 등이 뒤를 잇는다. 사립대 중 시간강사를 1천 명 이상 고용하고 있는 대학은 중앙대(1455명), 경희대(1315명), 단국대(1219명), 이화여대(1171명) 등이다.
시간강사가 받는 임금은 전임강사의 20~3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국공립대에서 전임교원(전임강사에다 조교수·부교수·교수 등 포함)의 인건비는 시간강사의 9배이고, 사립대의 경우엔 7.7배이다. 강의료 이외의 시간강사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거나 열악한 실정이다. 의료보험과 퇴직금 등 사회보장이 거의 없다. 국공립대의 경우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적용되지만 사립대는 113개 대학 중 60개 곳에서 아무것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은 “열악한 상황에 놓인 시간강사들을 방치하면 대학 경쟁력에서 마이너스가 된다”며 “전임강사를 늘리면서 질 좋은 교원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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