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대 변호사 기고… 범인의 국적이 부각되지 않는 것은 ‘다행’이 아니라 ‘당연’한 일
김윤재(38) 변호사는 ‘성공한’ 이민 1.5세대다.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을 졸업했다. 뉴욕주·뉴저지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2년 전 한국에 들어와 법무법인 자하연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거꾸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 김윤재 법무법인 자하연 미국변호사·한국외대 지역국제대학원 겸임교수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역사상 최악의 학원 총기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더 큰 충격을 받은 이유는 범인이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라는 데 있었다. 만약 이 사건의 범인이 한국 국적자가 아닌 외국인으로 밝혀졌다면 어땠을까? 아니,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조금이나마 안도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이 끔찍한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그곳에서 벌어진 결과나 원인에 집중하기보다는 ‘한국’이라는 브랜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염려하는 데 모아지는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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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사려 깊은 것 아닌가
언론이 세계가 경악하는 사건의 중심에 한국계가 있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관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향하는 지점이다. 한 개인이 개인적 이유로 저지른 범행에 대해, 한-미 간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미국 방송기자의 인터뷰를 내보내는 뉴스나, 현지 언론이 다행스럽게도 범인의 국적을 부각하지 않는다는 앵커의 멘트를 들으면서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언론들의 비슷한 시각의 보도나 한-미 관계를 염려하는 주변의 문의를 받으면서는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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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내가 오랜 이민 생활로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혹시 이런 반응이 한국 사회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최면에 걸린 ‘단일민족’이라는 폐쇄적 민족성에 기인하지 않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민자의 시각으로 밖에서 본 한국 사회는 매우 폐쇄적이다. 일단 한민족이 아니면 한국 사회에서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단일민족, 단일언어의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쳐 있다. 특히 외부의 다름에 반응할 때, 그 결속력은 더한다. 필자는 가끔 동남아나 제3세계에서 한국으로 온 이민자였다면 결코 한국에서 적응해 살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는 외부에서 벌어진 개인의 문제 역시 민족이나 국가 문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다. 성공한 한국인 또는 한국계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보도는 이런 맥락이라 보여진다. 이번 참사에 대해 국가 차원의 조문을 얘기하거나 한국 홍보 광고를 중단한다는 결정과 같은 지나친 사려 깊음(?) 역시 그런 연장선에서 나타나는 반응이 아닐까 한다.
반면에 우리 내부의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이주여성, 혼혈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이다. 아니 매우 차별적이다. 이런 태도는 역으로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행위를 그 외국인의 국가에 대한 문제로 확대하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스럽다. 그 외국인이 공무가 아닌 일로 거주한 상태에서 이념이나 사회에 대한 집단적 저항이나 거부감이 아닌 개인적 동기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다면, 이 경우 그가 어떤 나라 사람이고 어떤 인종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범행과 동기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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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한국인’ 범죄나 ‘미국인’ 범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인의 살인, 흑인의 살인, 백인의 살인, 이런 구분도 있을 수 없다. 모두 동일한 범죄이고 나쁜 일이며 처벌받아야 하며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적이나 민족 또는 인종을 개입시키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낼 뿐이다.
덧붙이자면, 한국에 ‘특수한 미국’이라는 존재가 한국인들이 이번 참사에 더 신경쓰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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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한인 피해는 ‘증오범죄’일 뿐
미국은 다인종, 다문화, 이민국가이다. 이는 아직도 국가가 미완성됐다고 봐야 마땅하다. 많은 긍정적인 부분과 함께 원주민을 몰아내어 터전을 일궜고, 노예제도의 원죄를 가졌고,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합법적으로 인종차별을 유지해온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미국의 일부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정한 뒤 적국인 일본을 모국으로 둔 일본계 미국인들을 격리시켰다. 그들이 일본을 위해 스파이 노릇을 할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당시 피해를 입은 일본계에 대한 경제적 보상과 함께 레이건 대통령 당시에는 공식적 사과도 있었지만, 아직도 대법원에서는 국가안보 상황에서 민족 또는 인종에 대한 차별은 합법적이라는 당시 판결이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한 번도 독일계나 이탈리아계를 일본계와 동일하게 격리시키지 않았다. 냉전 상황에서도 옛 소련계 출신들의 불이익은 들어본 바 없다. 이런 미국을 누구도 인종 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말하지 못한다. 동시에 이런 이유로 미국 사회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인종이나 국가적 차별에 민감해하고,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을 제도적 보완을 통해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어떤 사안에 대해 인종이나 국가로 인한 편견이 드러나는 것을 방지한다.
그래서 한국 국적을 부각하지 않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한국 언론의 시각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국적에 대한 보도는 다른 의도로 비쳐지거나 인종 차별적 보도 행태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분명 무고한 한인의 피해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중국계 출신이 범인이었다 해도 외관상 유사한 아시안계라는 차원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아일랜드계나 독일계라면 걱정하지 않을 일이, 유색 소수민족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좁게는 한인, 넓게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가진 이들이 건수(?)를 잡아 표출하는 용납될 수 없는 증오범죄일 뿐이다.
희생자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마음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범인이 우리와 같은 국적(또는 민족)을 가졌다고 해서 더 죄책감을 느끼거나 외교·경제 활동에서 불이익을 당할 거라는 걱정은 그야말로 ‘오버’다.
이민자의 문화적 혼란과 고립 생각하길
오히려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을 제대로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 사회는 총기 문제의 심각성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또 우울증의 심각성과 주변의 무관심이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문화적 혼란과 고립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서 외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마련해야 한다. ‘코리안드림’이 ‘아메리칸드림’보다 수백 배 이상 어렵다. 또 이번 사건은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하는 게 모든 교육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남과 더불어 사는 우리의 자세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때 이번 참사가 주는 교훈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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