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부천순천향병원 사건’ 고발UCC로 달아오른 누리꾼들, 저널리즘을 바꾸는가 </font>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최근 인터넷 공간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부천순천향병원 사건이었다. 지난 3월29일 부천순천향병원에서 여중생 임아무개(14)양이 오른팔 골절 치유 수술을 받은 뒤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불거진 이 사건은 임양의 주검을 두고 농성을 벌이던 유족들을 병원 쪽에서 물리력을 동원해 해산하는 장면을 찍은 사용자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이 ‘순천향병원 사건’ 또는 ‘부천순천향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려지면서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병원 쪽에서 사설경호업체 인력과 경찰력을 동원해 임양의 주검을 영안실로 옮기는 과정이 보여준 충격 때문에, 이 동영상은 순식간에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누리꾼들의 반응도 격렬했다. 동영상만으로 보면 80년대 시국사건에서 주검을 ‘탈취’하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여기에다 사망자가 중학생이었던 점, 팔 골절 수술 도중 숨졌다는 점, 사망한 뒤에도 이를 유족들에게 즉각 알리지 않았다는 점 등이 겹쳐져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병원과 유가족은 합의했지만…
병원과 임양의 유가족은 지난 4월4일 부분 합의를 통해 유족은 농성장을 철수하고 병원은 진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합의 과정에서 병원은 임양의 사망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던 점을 사과했고 유족은 과격 시위에 대해 사과했다. 유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원 로비의 농성장을 철수하고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을 삭제하기로 했다. 병원 쪽은 진료비와 장례비를 전액 지원하고 소정의 위로금도 지급하기로 했다.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누리꾼들은 “위로금은 필요 없고 진실을 밝혀라”는 비난성 댓글에서부터 “국회에 표류 중인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을 제대로 손질해야 제2의 임양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의 사회적 대안까지 쏟아내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병원 정황을 역추적하면서 임양에게 시행된 ‘골수주사요법’의 타당성까지 따져묻고 있다. 부검 결과가 공식 발표되면 이번 사태는 다시 한 번 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사건의 진행과 별개로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존 언론매체들이 사건 초기에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가 인터넷 공간이 뜨거워진 뒤에야 이를 비중 있게 보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언론은 처음부터 보도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는데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는데, 사태를 처음부터 비중 있게 보도한 매체는 황우석 전 교수를 지지하는 이들이 만들어 운용하는 인터넷 매체인 뿐이었다. 기존 언론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개인의 안타까운 사연’에 그칠 수도 있었던 사건이 ‘전국적인 이슈’가 된 것은 순전히 UCC 동영상이 지닌 힘과 누리꾼들의 여론 때문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UCC 동영상 확산이 언론의 보도행태 등 저널리즘 일반에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변화의 양상을 예고하는 전문가들도 나오고 있다. 이화행 동명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역의제 설정’(Reverce Agenda Setting) 현상이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언론의 기본 기능이 의제 설정 기능인데 기존 언론은 한정된 지면과 시간, 제도권과의 공생관계 때문에 의제 설정에 일정한 제약이 따른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게 인터넷 언론이다. 특히 동영상 UCC는 이런 면에서 보면 별 제약이 없다. 결국 역의제 설정은 UCC가 의제를 제공하고, 기존 언론이 그 의제를 확대재생산해내는 과정을 뜻한다. 또 하나의 영향은 뉴스 가치 기준의 변화다. 기존 언론은 이제 인터넷 공간의 이슈를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이슈 논평·분석 UCC 등장할 가능성도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UCC 동영상이 다루는 분야를 전통적인 뉴스매체가 다루던 고발 영역으로까지 넓혔다는 의미도 띠고 있다. UCC 동영상이 지금까지 주로 다룬 분야는 개인의 일상이나 관심 분야, 전문 분야의 정보와 지식, 재미있는 콘텐츠 등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카메라출동식’의 현장고발 기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개인의 의견이나 분석을 담은 동영상 UCC도 조만간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웹2.0’으로 불리는 인터넷 미디어의 진화에 따라 동영상의 제작·유통·공유가 쉬워졌다는 점과, 뉴스 생산의 출처보다는 이슈 자체에 관심을 돌리는 누리꾼들의 뉴스 소비 패턴의 변화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UCC 동영상의 확산이 저널리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이상길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감정적인 호소력과 소구력이 큰 만큼 부작용도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어떤 사건을 동영상으로 보게 되면 마치 객관적으로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든다. 동영상의 파급력을 설명할 때 객관성이나 생동감 같은 이데올로기를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동영상 역시 특정한 관점에서 촬영된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동영상을 접하는 이들은 맥락을 제대로 짚어내기 힘들어진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오히려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의 구실이 더 중요해진다고 본다. UCC 동영상이 사회적 이슈로 되는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더라도 사회적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대부분 기존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보도돼야 한다. UCC 동영상을 만드는 이들이 기존 언론의 시선을 끌기 위해 동영상을 선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런 메커니즘 때문이 아닐까. 기자들이 UCC 동영상과 관련한 기삿거리를 판단할 때 균형성·정확성·객관성 같은 언론 본연의 가치 기준을 잣대로 이런 점을 면밀히 검토한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은 여전히 저널리스트가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상업적 포털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이희은 광운대 강사는 “이번 사건이 자극적인 동영상이 아니었고, 포털 사이트들의 검색어 순위에서 수위를 차지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라며 “이번 사건만을 가지고 고발성 UCC 동영상 확산의 예고편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고 과장된 판단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UCC 동영상 확산이라는 현상은 처음부터 상업적 포털 업체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고발성 UCC 동영상이 저널리즘에 미칠 영향’은 언론학계에서도 점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다. 텍스트보다는 동영상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경향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언론이 ‘전문 저널리즘의 기능 강화’와 ‘콘텐츠의 차별화’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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