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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호남 자민련’ 될라

등록 2007-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총 11명 의원이 자강론 대 통합론으로 갈라지고 김홍업씨 공천을 두고 뿔뿔이 흩어지고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이러다 자민련 꼴 나겠어요.”

민주당 전당대회가 치러진 다음날인 4월4일, 민주당의 한 보좌관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해서 (범여권) 통합이 되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김종필 전 총리가 만든 정당으로 한때 충청 지역을 대표했지만 2004년 4·15 총선에서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뒤 2006년 4월 한나라당에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범여권의 통합이 물 건너갔다고 보고 있었다.

민주당이 4·3 전당대회를 통해 ‘박상천호’를 출범시키고도 향후 항로를 놓고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범여권 통합은커녕 민주당 내부 정비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속 의원 11명이 제각각이다. 향후 정계 개편에 대한 밑그림은 의원들마다 다르다. 여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전 아태재단 부이사장의 전남 무안·신안 전략공천이 악재로 작용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민주당이 ‘호남 자민련’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상천 새 대표는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은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통합론’을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한화갑 전 대표와 현역 의원들의 지원을 받아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였던 장상 후보 쪽과 비교하면 ‘민주당 중심’을 더 강조한다는 점이 차이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국민중심당, 열린우리당 탈당파, 정치권 밖의 중도개혁주의자 등을 통합해 중도정당을 만들고, 열린우리당과는 대선에서 선거 연대를 모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강론? 스스로 강해질 수 있을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상천 대표 체제의 민주당이 범여권의 통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박 대표 주변에 장재식·이윤수 전 의원 등 원외의 ‘총선 예비군’들이 대거 포진해 있고, 이들은 올 연말 대선을 겨냥한 통합보다는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호남 의석을 차지하는 데 더 관심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혹은 탈당파 의원들과 공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통합이 원외위원장들에게는 달가울 리 없다. 민주당이 스스로 강해질 만한 힘이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민주당 자강론’은 ‘독자생존론’의 다른 이름이다.

박 대표 자신도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과의 악연 때문에 범여권의 통합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박 대표는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의 교체를 시도했던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 대표적 논객이었다. 2004년 탄핵 사태 때는 한나라당,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탄핵 국면을 주도했다. 결국 그는 4·15 총선에서 국민의 외면을 받아 정치판을 떠나야만 했다.

“후보 없이 대선에 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범여권의 통합에 공을 들였던 의원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이낙연·김효석 의원은 구상 단계에서 물거품이 되기는 했지만, 임종석 의원 등 열린우리당 재선 의원들과 ‘동반 탈당 뒤 교섭단체 구성’ 방안을 깊숙이 논의했었다. 제3지대를 만든 뒤 이를 기반으로 통합신당의 주춧돌을 놓겠다는 뜻이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출마에 공을 들이고 있는 김종인 의원(비례대표)은 지역구 의원들에 비해 민주당이라는 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 의원들은 전당대회에서 장상 후보를 지원했다. 그런데 장상 후보가 김홍업씨의 전략공천을 허용하면서 갈등 구조가 복잡하게 됐다. 김효석 원내대표와 이낙연 의원 등은 전략공천을 마지못해 수용하면서 동교동계, 장상 후보와 ‘울며 겨자 먹기’로 연대하는 양상이 됐다. 장상 후보는 239표 차이까지 따라붙었지만 뒤집지는 못했다.

김홍업씨 전략공천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견해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박 대표는 4월4일 김홍업씨 공천은 여론을 수렴한 뒤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공천이 번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런데 김씨의 공천에 대한 반발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열 대변인은 ‘민주당 자강론’에서는 박 대표와 견해를 같이하지만 “김홍업씨 공천은 당원과 지역민의 의사를 무시한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통합론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김효석·이낙연 의원은 “출마 안 하기를 바랐지만 다른 선택을 하기가 어려웠다”며 마지못해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김종인 의원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이란 한 지붕 밑에 많지 않은 식구가 살면서, 민주당 자강론 대 통합론으로 갈라져 있고 다시 김홍업씨 공천 문제를 두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셈이다.

박상천 대표는 민주당 중심의 통합, 민주당 자강론을 주장하면서도 아직은 이렇다 할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솔직히 아직 구체적인 통합 로드맵이 없어서 공개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2월에 여당과 후보단일화를 추진하겠다’는 박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유 대변인은 “(민주당의) 후보가 없으면 후보 없이 대선에 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통 전당대회가 끝난 뒤 후유증이 있게 마련이지만, 박상천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 민주당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낙연 의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4월4일 당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간담회에 불참했다. 김종인 의원은 “구심점이 없는 소수 정당이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며 “대통령 후보라는 구심점을 통해 제3지대 통합신당을 만들게 돼 있다”고 전망했다. 사실 경쟁력 있는 후보가 현재의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보가 없는 군소정당은 대선이라는 정치적으로 열린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할 일이 없다. 2002년 대선 당시 자민련을 떠올려보면 자명해진다. 자강을 하든 통합을 하든 상황을 주도할 힘이 없다는 게 민주당의 현실이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앞으로 김효석·신중식·이낙연 등 통합신당파 의원들과 박상천 대표, 이상열 대변인 등 자강론파의 주도권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김효석·이낙연 의원 등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재·보궐 선거 뒤 지각변동을 주목하라

따라서 민주당의 운명은 4월25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정치권의 지각변동에 연동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처럼 범여권의 통합 흐름이 지지부진하다면 자강론이 득세할 것이고, 통합의 기운이 높아진다면 박상천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선택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바람에 순응하거나 그들을 설득하거나 두 가지의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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