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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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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의 ‘중도’는 ‘진보’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중도 강화’현상은 진보의 이탈 아니다…중도가 진보에 가까운 변화 지향성 유지해

▣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2030’이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는 2002년 대선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월드컵 거리 응원과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한 촛불시위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관심과 정치 참여의 질을 높이는 계기였다. 더구나 인터넷에 익숙했던 젊은 세대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의사 교환과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정치 참여를 확산시켰다.

정치적 무관심과 탈정치적 성향의 젊은 세대가 2002년 대선에서 능동적이고 저항적 참여의 주역이 되었다면, 과연 2007년 대선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설 것인가? 해답은 젊은 세대의 정치적 성향과 태도, 가치관의 변화와 지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30대의 실망과 분노 크다

2030 세대의 정치적 성향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중도 강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20~30대 젊은 세대는 진보 성향을 보이는 반면, 40~50대 기성세대는 보수 성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연령에 따라 의식과 행동에서 차이를 가져오는 ‘연령 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연거푸 진보·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은 뒤 이러한 패턴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20대와 30대 유권자들한테서 중도 강화와 동시에 진보층과 보수층의 동반 하락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는 점이다(하단 그래프 참조). 특히 진보 세력에 대한 열정과 기대가 가장 컸던 30대에서 진보가 하락하고 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만큼 진보 세력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 세대의 이러한 정치적 이념 성향의 변화는 현재 대선 후보 지지와 정당 지지에 일시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인가? 물론 누가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범여권 후보가 될지, 누가 한나라당의 최종 후보가 될지, 선거 구도가 어떻게 짜여질지에 따라 달라질 거다. 하지만 증대하고 있는 젊은 중도층이 과연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느냐는 향후 이들의 행보를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는 지난해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와 함께 ‘유권자 정치이념 조사’를 했다. 대북 지원, 미국과의 관계, 국가보안법, 세금을 통한 정부 지원 등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때 쟁점이 되고 있는 12개 정책 항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중도의 정책 방향성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한국의 중도층은 보수 안정적이라기보다는 변화를 지향하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책 방향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0을 기준으로 마이너스(-)일 경우는 진보, 플러스(+)일 경우에는 보수에 가까운 것을 의미하는데 20대와 30대 중도의 경우엔 정책 방향성이 각각 -0.2348과 -0.1206으로 나타났다. 젊은 중도 세력이 진보에 가깝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또 정책 방향성 이외에 젊은 세대들이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정책 일관성 지수’를 분석해본 결과, 예상과는 달리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보다 일관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정책 일관성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일관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20대와 30대는 일관성 지수가 0.9823점과 1.1082점으로, 40대(1.1438점)와 50대 이상(1.1990점)보다 일관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 40여 나라를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 가치 조사’ 결과도 의미가 크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와는 달리 ‘탈물질주의적 가치’가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과 극심한 궁핍을 경험한 기성세대가 성장, 조직 등과 같은 물질적 가치에 비중을 두는 것과 달리,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는 환경, 개인, 삶의 질 등과 같은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위, 파업, 농성 등 ‘어려운 참여’ 가능성 높아

젊은 세대의 정치적 성향과 가치의 변화, 지속에 대한 이런 분석 결과는 앞으로 한국 대선에서 다음과 같은 함의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젊은 세대의 중도 강화 현상’은 바로 진보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중도가 진보에 가까운 변화 지향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선 환경의 변화와 함께 정당과 대선 후보 지지에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정책 일관성이 높고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훨씬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는 것은 정치 참여 유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젊은 세대는 투표와 같은 ‘쉬운 참여’보다는 청원서 서명, 시위, 파업, 농성 등과 같은 ‘어려운 참여’ 행위에 더 적극적으로 가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어려운 참여의 확산은 ‘노사모’와 같이 특정 후보에 대한 적극적 지지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젊은 세대가 감성적 투표를 많이 한다는 기존의 통설과는 달리 합리적 투표를 할 개연성도 크다. 청년 실업,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이 자신들의 미래 삶과 직결되는 이슈와 쟁점이 선거 과정에서 점화되면 폭발성을 보일 수 있다. 즉, 이슈를 통해 젊은 세대의 능동적·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집합적으로 대선 과정에서 후보와 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중도 보수보다는 중도 진보를 표방하는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도를 표방하지만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는 보수 후보와 변화를 강조하는 후보 간에 경쟁이 이뤄질 경우,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를 계량화할 순 없지만 젊은 층들은 ‘적극적인 참여’(Participation), ‘열정’(Passion), ‘잠재적 힘’(Potential Power)을 바탕으로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shift)를 주도하려는 세대적 특징이 강하기 때문이다.

유스루션 시대는 오는가

미래 학자인 페이스 팝콘은 21세기는 여성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브루션(Evelution)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브루션이란 ‘이브’(Eve)와 ‘진화’(Evolution)의 합성어다. 세상이 진화돼 여성적인 사고방식이 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른바 ‘유스루션’(Youthlution)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스루션’이란 젊음을 뜻하는 ‘유스’(Youth)와 ‘진화’(Evolution)의 합성어다. 만약 이러한 시대가 도래한다면 권위와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지배할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전파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같은 의식과 취미를 갖고 있는 집단끼리 뭉치기를 좋아하며, 인간관계를 중시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이냐라는 차원을 넘어서 과연 젊은 세대의 참여가 유스루션 시대의 도래를 앞당기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느냐가 2007년 대선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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