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자동차 등 최대 쟁점 남겨두고 촌각 다투는 한-미 FTA 협상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오는 6월 말에 끝나는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신속하고 효율적인 국제협상을 위해 미국 의회가 대통령·행정부에 위임한 무역협상 권한)을 감안할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시한은 3월31일이다. TPA 만료 90일 전까지 협상이 타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 FTA 협상은 촌각을 다투면서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과연 양국 FTA 협상단은 3월 말에 타결 선언을 발표할 수 있을까?
3월8∼12일에 열린 제8차 협상을 끝으로 대규모 협상은 이제 막을 내렸다. 남은 건 ‘고위급 협상’이다. 19일부터 워싱턴에서 3∼4일 일정으로 김종훈 한국 쪽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 쪽 수석대표가 이끄는 전체 고위급 회의가 열린다. 수석대표급 협상과 맞물려 서울에서는 농업 분야, 워싱턴에서는 섬유 분야 고위급 회의가 진행된다. 김종훈 수석대표가 “자동차와 농산물을 연계하는 빅딜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3월 말 협상 타결’에 대한 양쪽의 의지가 강하다면 농산물과 자동차, 섬유 등이 서로 얽혀 들어가는 ‘패키지’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수석대표급 1차 고위급 협상이 끝나면 오는 26일부터 서울에서 다시 2차 고위급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이때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간의 고위급 회의를 거쳐 일괄 타결을 위한 패키지를 최종 정리하고, 그래도 남은 쟁점은 회담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양국 통상 장관급 회담에서 마지막 타결을 시도할 예정이다. 양쪽 모두 ‘3월 말 시한’에 공감하고 절충안 모색에 나선다면 고위급 관료 협상을 통한 타결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양쪽이 쟁점 분야별 마지노선을 쥐고서 끝까지 관철하려 할 경우 고위급 회의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난항을 겪다 깨질 수도 있다. 과연 한국 협상팀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8차 협상이 끝난 뒤 “이익이 되면 체결하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체결하지 않는다”며 “높은 수준의 협상이 아니라 조금 중간 수준이나 낮은 수준에서라도 이익이 되면 그런 합의도 검토해보라. (협상) 기간은 연장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3월 말을 넘길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쪽 협상팀을 보면 ‘3월 말’을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 중단 가능성에 대해 “현 상태로는 그런 검토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고, 김종훈 수석대표도 “최종 타결이 가능한 가시권 안에 들어온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정브리핑은 “타결을 위한 중대한 진전을 달성했다”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고, 한미FTA체결지원단 쪽도 “한-미 FTA는 양국의 균형 이익 달성이라는 성공적인 결승점을 향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오히려 우리 쪽 협상팀은 “시한에 부담을 느끼는 건 우리보다 미국이 더 심하다”고 설명했다.
‘유연성’ 가장한 대폭 양보안?
그러나 시한에 쫓긴 탓일까? 우리 협상팀은 8차 협상에 나서면서 “최대한 융통성과 유연성을 발휘해 ‘절충안 합의 도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월 말 시한이 임박하자 “전체적으로 될 것과 안 될 것을 구분하고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절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섬유 쪽은 기존의 원사 기준 완화 요구에서 후퇴해 ‘공급 부족 목록’(Short supply list·공급이 부족한 특정 소재에 국한해 역외 조달을 허용하는 원사 기준 예외 방안)이라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자동차의 배기량 기준 세제 개편 문제는 ‘전체적인 협상 진전 상황을 고려해 적정 수준에서 논의한다’로, 개성공단 원산지 특례 인정 문제도 ‘미국 쪽의 수용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유연성’을 가장한 대폭 양보안을 미국 쪽에 제시한 셈이다. 실제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16일 열린 국회 한미FTA 특위에서 “미국의 배기량 세제 개편 요구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관세 철폐와 상관없이) 우리 업계도 요구하는 것이어서 검토하고 있다”고 사실상 양보했음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8차 협상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의 이원재(문화연대 사무처장)씨는 “우리 협상팀은 한 번도 FTA 중단을 검토해본 적이 없다”며 “쇠고기 수입 재개와 스크린쿼터 축소 등 ‘4대 선결조건’을 미리 양보해 초기부터 협상 주도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우리 협상팀은 5차 협상부터 무역구제 반덤핑 개선 카드를 내놓고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쪽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도 전에 미국 쪽이 오히려 더 세게 나오면서 우리 협상팀은 계속 끌려가는 양상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TPA 시한인 3월 말이 다가올수록 타결에 목매는 쪽은 ‘더 많은 양보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우리 협상팀의 말과 달리, TPA 시한이 우리 쪽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한 촉박 때문인지 정부 안에서 혼선도 일어나고 있다.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3월15일 “FTA 협상에서 쇠고기의 경우 관세 철폐와 위생검역 문제는 반드시 분리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하루 전날 민동석 농림부 통상차관보(농업 고위급 협의 수석대표)가 “쇠고기의 현행 40% 관세 철폐 문제는 (검역 문제와) 얼마든지 연계해볼 수 있다”고 한 말과 배치된다.
쇠고기가 가장 큰 ‘딜브레이커’
우리 쪽 협상팀은 지금까지 상품 관세 즉시 철폐율을 보면, 양국 모두 △즉시 철폐 85% △조기 철폐(즉시+3년) 90%를 넘는다고 주장한다. 관세 철폐율이 다른 FTA 못지않은 수준이므로 실질적으로 타결 과정에 도달했으며, 양국이 대등한 수준의 협상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관계학부)는 “FTA에 대한 국민 여론은 양분돼 있는 상황이고, 지금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협상 결과인데 우리 쪽 성적은 참담한 상황”이라며 “90%를 타결했다지만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는 자동차와 쇠고기가 이미 타결된 내용들보다 실익 측면에서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현재 남은 최대 쟁점은 쇠고기, 자동차, 섬유, 농산물 등이다. 이 중에서 쇠고기가 가장 큰 딜브레이커(협상을 깰 수 있는 최대 대립 쟁점)다. 쇠고기의 경우 미국은 한국시장 수입 관세(관세율 40%)의 즉각 철폐뿐 아니라 광우병 우려가 있는 ‘뼈 있는 쇠고기’까지 포함한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쇠고기는 우리나라에 수출된 미국산 농산물(연간 27억∼28억달러 규모)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미국 쪽의 최대 관심 품목이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국장은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우리 정부가 나중에 광우병 소의 안전기준을 높이는 정책을 도입하면 미국이 투자자-국가소송제를 적용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국제 소송을 걸 가능성이 크다”며 “2005년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도 미국과 캐나다가 광우병 소의 안전기준을 둘러싸고 소송 다툼을 벌였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영수 정책국장은 “우리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과도한 수출용 농산물 보조금 지급 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국의 약한 고리를 치고 들어갔어야 했다”며 “이 문제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을 결렬시켰을 정도로 미국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인데, 우리 협상단은 한 번도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민감 농산물’의 경우 우리 정부는 8차 협상에서 ‘현행 관세 유지’라는 입장을 일부 포기하고 대신 품목별 민감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관세 철폐 기간 장기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저율할당관세(TRQ·일정 물량에 저관세 허용) 활용을 절충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농산물분야 협상팀 관계자는 “민감하다는 뜻은 관세 철폐를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개방 폭을 줄이고 협상 상황에 따라 관세 철폐 기간을 장기로 가져가는 것도 포함된다”며 “양국이 민감 농산물에 대한 세이프가드 도입에 이미 합의하고, 구체적인 세이프가드 발동 수준과 기준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협상이 막판으로 갈수록 미국 쪽의 공세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미국 상·하원 의원 15명은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의 자동차 수입관세(8%)는 즉시 철폐하되 미국의 자동차 관세(2.5%)는 15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월 말 시한 내 타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지가 확인될수록 미국 쪽이 더 강하게 압박하는 양상이다.
정치권에 대두되는 협상중단론
협상이 숨가쁘게 돌아가면서 정치권에서도 협상중단론이 대두하고 있다. 한나라당 권오을, 열린우리당 김태홍 의원 등 국회의원 38명은 16일 “한-미 FTA 협상이 TPA 완료 시한에 맞춰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며 즉각적인 협상 중단을 촉구했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천정배 의원 등이 속한 민생정치준비모임도 “협상을 즉각 중단하고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무튼 한-미 FTA 협상 타결 여부는 미국의 국내 법 절차인 TPA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만약 3월31일에서 단 하루라도 넘긴다면 TPA 체제 아래서 한-미 FTA 협정을 체결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한-미 FTA 협상이 완전히 깨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복잡하게 꼬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미국 의회가 TPA 시한을 연장해주지 않을 것이란 가정에서 본다면, 일단 3월31일까지 타결된 일부 합의안에 대해서만 미국 의회가 90일간 심의하고, 나머지 쟁점은 ‘다른 절차’를 통해 협상을 진행하는 방안이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다. 그런데 TPA가 만료되면 (부시 행정부가 아니라) 미국 의회가 협상권과 체결권을 접수하게 된다. TPA 없이, 의회를 주도하는 민주당과의 협상을 통해 FTA 협정을 체결할 수는 있는 것이다. 이해영 교수는 “한-미 FTA에 국한해 미 의회가 TPA 연장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부시 대통령한테 민주당이 백지수표 선물을 주는 격이므로 가능성은 낮다”며 “미국 민주당의 경우 FTA 반대 정서가 강한 편이지만, 한국이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에서 실익이 크다면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웬디 커틀러 미국 쪽 수석대표의 재량권은 매우 작다. 한국 시장의 자동차 관세 철폐 요구 같은 미 의회의 요구안을 미국 협상단이 관철하지 못하면 3월 말에 타결을 선언해봐야 의회가 동의해줄 리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3월 말이 임박할수록 미국 협상팀은 한국을 더욱 압박할 공산이 크다. 이해영 교수는 “한국과 달리 미국 쪽은 의회가 협상의 열쇠를 쥐고 있다. 막판 고위급 협상에서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가 ‘절충안’으로 타결되더라도 미국 쪽 요구가 만족할 수준에서 반영되지 못한다면 미 의회가 협상 결과를 문제 삼으면서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3월 말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한국 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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