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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성큼 북-미가 달려간다

등록 2007-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고농축 우라늄 문제 물꼬 트이며 숨가쁘게 봄맞이하는 북한과 미국…비핵화 목적지까지 첩첩산중, 한국의 움직임은 6자회담의 틀에 갇혀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광폭.’

2·13 베이징 합의 이후 관계 정상화로 향하는 북한과 미국의 움직임이 숨가쁘다. ‘말’의 단계를 지나 ‘행동’의 단계로 들어서면서, 한쪽의 움직임이 다른 쪽의 반응으로 이어지며 상승작용을 일으켜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생각보다 이른 시일 안에,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출구’에 다가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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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미 간 제도적 논의에 앞서 신뢰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불신은 북-미 관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6자회담 중국 쪽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3월9일 “깊은 불신이 6자회담의 고비마다 발목을 잡아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한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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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합의에 따라 3월5~6일 뉴욕에서 열린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북-미가 서로 상대의 신뢰를 확인했다는 점이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등 북-미 현안 전반과, 2·13 합의 초기 이행에 이은 다음 단계(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등)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3월6일 회담을 끝낸 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분위기는 아주 좋았고 건설적이었으며 진지했다”고 말했으며,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2·13 합의에 따라 60일 안에 이행해야 할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인 느낌을 갖게 됐다”고 성공적으로 회담을 평가했다.

북-미 수교 기대마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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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걸림돌로 거론돼왔던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한 합의의 긍정적 신호들이 나오고 있다.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는 2002년 2차 북핵 위기의 출발점이자, 북핵 폐기 과정에서 불거질 최대 복병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힐 차관보는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최종적인 신고 이전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를 ‘서로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데 대해 북한 쪽의 이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큰 틀에서 북-미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해법의 가닥을 잡았고, 구체적으로는 전문가 수준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북-미가 상대방에 신뢰를 보이면서 물꼬가 쉽게 트인 것이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선 북한이 먼저 미국 쪽에 핵 프로그램 신고 이전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얘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쪽에서도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북한 쪽의 능력과 진척도에 대한 평가가 과장됐다는 얘기들을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흘려보냈다. 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온 북한과 이를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해온 미국이 한발씩 물러서면서, 고농축 우라늄이란 난제를 풀기 위한 ‘묘수 찾기’가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3월8일 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부에서 무기급 또는 양산 단계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칭해온 ‘고농축 우라늄’이란 표현 대신, 송 장관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란 말이 더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묘수’의 실체를 어느 정도 내비친 셈이다.

미국은 이번 실무회담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 과정을 가로막았던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를 해결하기로 재확인했고, 북-미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인 적성국 교역법 적용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도 북한과 깊이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발짝 더 나아가 북한은 연락사무소 없이 비핵화의 최종 단계와 연동된 즉각적인 외교관계 수립을 희망할 정도로 대미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북-미 관계의 순항을 근거로 “두 나라가 1년 안에 수교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다소 섣부른 기대마저 나오고 있다. 6자회담은 3월17~18일 베이징에서 다시 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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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의 최종 단계로 가는 도로의 장애물들이 하나둘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는 첩첩산중이다. 서보혁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은 △북-미 간 불능화에 대한 관점 차이 부각 △북한과 미국 내 ‘속도조절론’ 대두 가능성 △핵시설 사찰 대상과 범위 논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처 마련 등이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좀 먼 얘기지만 경수로 지원은 가장 힘든 숙제로 기다리고 있다. 일본인 납치 문제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나, 2·13 합의 이행의 속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4월13일 이후”

출발은 분명 좋다. 하지만 초기 이행 단계 이후 순항을 보장할 순 없다. 김연철 교수는 “2·13 합의는 일정한 구간에 대한 합의다. 따라서 그 구간까지는 가게 돼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4월13일 이후, 즉 다음 구간에 대한 단계적 목표와 그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4월 말께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고 6자 틀 안에서 북-미 외무장관 회담을 통한 ‘통 큰’ 단계적 합의들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배적이지만, 협상은 늘 그렇듯 회담장을 빠져나올 때까지 누구도 낙관할 순 없다.

남북 관계는 북-미가 내는 속도에 처진다. 2월 말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의 합의가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이전의 상태로 남북 관계를 복원해놨을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북-미의 관계 개선 속도에 맞췄다”고 말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미 관계에 후행하는 것이다. 임종석 열린우리당 의원은 “남북 관계를 6자 틀에 연계시킴으로서 남쪽이 주도적으로 북쪽과 관계를 풀어나가는 지렛대를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제재, 부시가 풀면 풀린다

우선 북한이 미 국무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져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양자간 현안을 해결하고, 전면적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 미합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나간다. …참가국들은 상기 초기 조치들이 향후 60일 이내에 이행되며, 이런 목표를 향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 데 합의했다.”
2·13 베이징 합의에 따라 6자회담 참가국들이 ‘병렬적’으로 취하기로 합의한 내용 가운데 일부다.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 교역법 적용은 지난 반세기 북한의 경제를 옥죄어온 차꼬요, 족쇄였다.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킨다고 표현했으니, 최종 해제·종료가 언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북-미 관계의 최근 행보로 미뤄 북한의 숨통이 틔이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는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내려진 대북 수출 전면금지 조처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의 경제제재 강화 분위기에 따라 작성한 ‘북한: 경제제재’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조처는 크게 네 가지 이유로 나눠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북한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미 대통령이 판단해 매년 변경이 가능한 대목으로, 적성국 교역법과 국가비상사태법 등의 규정을 받는다. 둘째, 북한이 미 국무장관이 지정한 테러지원국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이는 1979년 통과된 수출관리법 등의 적용 대상이 됨을 의미한다. 셋째, 북한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공산국가란 점도 경제제재 대상이 되게 한다. 1945년 제정된 수출입은행법과 1961년 제정된 외국지원법 등이 이와 관련된 법률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미 국무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국으로 지목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무기수출통제법과 수출관리법, 2000년에 제정된 이란-북한-시리아 비확산법 등의 적용 대상이 된다. 이 밖에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동결은 9·11 동시테러 뒤 도입된 애국법(패트리엇 액트)에 따라 미 재무부에 부여된 위조 및 돈세탁 방지활동 권한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또 북한은 1998년 미 의회를 통과한 국제종교자유법에 따라 ‘특별우려국’으로 지정돼 있으며, 2000년 통과된 인신매매 피해자보호법에 따른 ‘최악의 범법국’(3등급)으로 지난 2003년부터 분류돼 있어 추가 제재를 받고 있다.
현재 미 국무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 명단에 이름을 올린 나라는 북한과 쿠바·이란·수단·시리아 등 모두 5개국이다. 북한은 지난 1988년 11월29일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의 책임을 묻겠다는 당시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의 결정에 따라 이듬해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페리 프로세스에 따라 일부 대북 경제제재 조처가 완화되면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자국민 납치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면서 무위에 그쳤다.
미 국무부가 지난해 4월 말에 발표한 테러지원국 현황에서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이후 테러활동에 연루된 일이 없다”면서도,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거론하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묶어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북한이 2·13 합의를 성실히 이행해가며 미국과 신뢰를 쌓기만 한다면, 테러지원국 해제가 ‘장기 과제’만은 아닐 수 있다. 핵 프로그램 포기와 대미 관계 개선을 맞바꾸고 지난해 5월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된 리비아가 단적인 사례다.
의회조사국이 보고서 말미에 정리한 ‘미 외교정책 또는 국가안보 목표에 따라 북한에 부과된 경제제재’란 도표를 보면, 현재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조처는 무려 42개 항목에 이른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테러와 관련한 제재가 16건으로 가장 많고 △북한의 체제(공산주의) 관련 10건 △대량살상무기 확산 관련 7건 △외교정책 일반 3건 등의 순이다. 이 가운데 제재 조처를 해제 또는 면제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또는 재무·국무 장관)에게 있는 건수가 모두 34건에 이른다. 나머지 8건은 의회의 입법 조처가 필요하다.
의회조사국은 보고서에서 “북한이 모든 수출금지 조처에서 해제되기 위해선 최소한 국무부가 수출관리법에 따라 매년 지정하고 있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져야 한다”며 “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만 있다면, 대부분의 대북 경제제재 조처가 언제든 손쉽게 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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