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후 판사 재량에 따라 형량이 1년6개월로 줄어드는 등 제도 개선 이뤄졌지만…신원 조회로 기업체 취업이 힘들고 국가고시·자격 시험에 합격 못하는 고달픈 삶 여전
▣ 최정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얼마 전 최근 병역거부를 선언한 친구를 만났다. 2년쯤 전에 상담차 만나게 된 친구인데 당시 그는 신체검사 거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병역거부와 다르게 신검거부는 병역법상 6개월 미만의 실형을 선고받게 돼 있어 까딱하면 예비군 거부처럼 반복적으로 신검통지서를 받을 수 있기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 결국 오랜 상담과 법률 자문을 받고서 그 친구는 신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올 2월6일 징집 명령을 거부하고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막상 병역거부를 하고 보니 학업에 대한 고민, 재판이 길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 부모님 걱정, 출소한 이후 미래에 대한 고민 등 걱정이 많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괴롭히지만 여러 이유로 주변에 별다른 내색조차 하지 못하는 그를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곧 정부가 사회복무제와 관련한 청사진을 제시할 거라 하는데 혹시 모르니 입영을 미루고 좀 기다려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었는데, 그가 병역거부를 하기 하루 전에 발표된 사회복무제에는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어떠한 조처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가 마음속으로 기대를 했는지 영장을 미뤄볼까 고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으로 미안했다.
연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국방부
좀 지난 얘기이긴 하지만 병역거부로 징역을 마치고 출소한 친구와 이란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가 심금을 울리는 어떤 구석이 있어 나도 영화를 보면서 열심히 울었지만 그 친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울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감옥 안 장면이 그에게 어떤 기억들을 생각나게 했던 모양이다. 이후에 몇몇 출소자들과 영화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 보고 울어봤다고 했다.
2006년 12월31일 현재 총 936명의 병역거부자가 전국 교정시설에 수감 중이다. 군대보다 더 지독한 위계서열과 말도 안 되는 처우 속에서 1년6개월을 버티다 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하나씩의 상처를 갖고 있다. 그들을 보며 바쁘다는 핑계로 그래도 자진해서(?) 들어갔으니 잘 버틸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편지 한 통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양심을 지킨다는 이유로 복역을 한 청년들은 출소 뒤에는 신원 조회와 각종 사회적 차별로 인해 변변한 기업체에 취직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각종 국가고시와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더라도 합격할 수 없다. 출소 이후 먹고살 걱정, 학업 걱정, 어떻게 평화주의자로서 신념을 간직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걱정 등 병역거부자들의 고달픈 삶은 감옥 생활 이후에도 쭉 이어진다.
물론 그동안 많은 발전들이 있었다. 2001년 이후 병무청에 의한 강제 입영 시도의 중단, 과거 법정 최고형인 3년형을 일괄적으로 선고받았던 것에 비해 민간 재판에서 판사의 재량에 따라 1년6개월로 줄어든 형량을 선고받는 것, 이외에도 강금실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 외부 인사가 방문하는 종교 집회가 허가된 점, 구속 수사 관행을 고수해온 것에서 불구속 수사 관행이 정착된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17대 국회에 계류 중인 대체복무 법안이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정부에서 발표한 사회복무제 안에도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조처가 포함돼 있지 않아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2005년 12월26일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이 내려진 뒤 결성된 국방부 ‘대체복무제도 연구위원회’는 그 구성원들의 면면에서 시민사회의 큰 반발에 부딪히더니 결국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인권적 차원에서의 고려는 고사하고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반복된 똑같은 토론만을 지루하게 되풀이하다 지지부진하게 위원회의 임무를 팽개치고 말았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말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한국정부보고서 심의자리에서 연구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2007년 6월까지라고 위원회에서 의결되지도 않은 사안을 보고했다가 면피용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현재 올봄 위원회 최종 보고서를 발간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위원회의 토론 과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면 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뻔히 보이는 노릇인데 법무부, 외교부 등 정부의 어떤 부처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국방부에서 현재 연구 중인데…”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외국인을 만나면 세 번 깜짝 놀라더라
지난해 12월 초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최명진, 윤여범씨에 대해 한국 정부에 배상을 포함한 적절한 구제 조처를 취하라는 견해를 밝힌 것을 굳이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국내 인권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우선 한국이란 나라에서 병역거부가 실정법상 처벌 대상이라는 데 한 번 놀라고, 수감자들 수에 두 번 놀라고, 1년6개월의 수감 기간에 세 번 놀란다. 한국은 노동운동, 시민운동, 학생운동이 강했던 나라, 그 열정으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국제사회에서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식된 지 이미 오래인 병역거부가 처벌 대상이 된다고 하니 놀라웠던 모양이다. 그것도 적은 수가 아니라 매년 7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감옥행을 선택하고 있는데 정부 차원의 별다른 조처 없이 반세기를 보냈다는 것에 더더욱 놀라움을 표시한다. 수감 기간도 문제인데 설혹 병역거부가 처벌 대상인 나라들에서도 이렇게 긴 기간을 감옥에 가두는 나라는 별로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랫동안 인권과 평화를 위해 활동했던 해외의 많은 단체들이 한국의 병역거부 상황에 주목하게 되었고, 지난해 월드컵 기간에는 국제엠네스티 독일지부가 월드컵으로 떠들썩한 도시 한쪽에서 한국의 병역거부 상황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했다고 지난가을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1980년대부터 매년 유엔이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를 도입하라고 각 회원국에 권고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유럽연합 같은 곳에선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은 국가에겐 회원국이 될 자격조차 주지 않는다. 한국 외교의 역사상 쾌거니 뭐니 해서 환호하기 전에 유엔 권고부터 제대로 이행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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