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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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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 교섭 시작되나] 대공장 노조, 껴안아야 산다

등록 2007-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현대차 연말 성과금 싸움은 기업별 노조의 틀에 갇힌 행동이란 비판 제기…산별 조직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기업지부’ 극복하고 하나되기 나서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올해 초 벌어진 현대차 연말 성과금 싸움을 둘러싸고 노동계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다. 조합원들의 성과금 지급 요구를 적극 지지해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는데, 한쪽에서는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렸는데도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이런 비정규직 문제에 대응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성과금 싸움에만 매달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대차 조합원과 집행부가 산별 노조 전환에 동의했으면서도 여전히 기업별 노조의 틀 속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지도부에서 배제된 비정규직·중소 사업장

특히 산별 금속노조의 지역·기업 지부는 총 19개인데, 현대·기아·GM대우·쌍용차 등 4개 완성차 노조에는 ‘기업지부’가 설치됐다. 산별 조직의 경우 지부는 지역에 설치하고, 기업별 사업장은 (지부 아래의) 지회 조직으로 재편되는 것이 원칙이다. ‘3년간 한시적으로 기업지부로 둔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현대·기아차 노조 등을 기업지부로 인정한 건 산별 건설 정신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또 이번 금속노조 임원 선거에 출마해 부위원장에 뽑힌 5명 가운데 중소 사업장 노조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갑득 새 위원장을 비롯해 임원 대부분이 대공장 출신이다. 산별 금속노조 지도부 구성에서부터 비정규직·중소 사업장 대표는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산별 교섭 체제의 대의는 ‘사람(조합원)·재정(조합비)·정책·투쟁의 통합과 집중’을 통해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기업별 차이를 넘어 미조직·중소영세·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 계층을 위한 노동운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금속 산별 노조의 첫 출발은 연대와 단결의 원칙에서 꽤 벗어나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지난해까지 3년간, 금속 중소 사업장 87곳이 참여한 산별 중앙교섭에서 비정규 노조가 산별 교섭에 직접 참여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비정규 노조는 기업별 노조 체계뿐 아니라 산별 노조 체계에서도 상대적으로 주변적인 위치에 머무른 것이다. 금속노조에 속한, 자동차용 의자를 생산·납품하는 KM&I 사내하청 노조의 경우 사내 협력업체라서 산별 중앙교섭에 참여하지 못한 채 별도 교섭을 해왔다. 또 KM&I는 2005년 금속 노사가 중앙교섭에서 합의한 ‘불법파견 판정시 정규직 채용 의무화’를 이행해야 하는 사업장이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이 합의는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것이 돼버렸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대기업 사업장에 조직돼 있는 비정규직 노조는 별도 교섭이 불가피해 원청과 분리될 소지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사내하청과 비정규직 관련 노사 교섭은 원청의 후원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며 “따라서 노동조합이 산별 체제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책임 있게 끌어안지 못하면 노사관계 불안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공장-중소기업 ‘조정 문제’ 우려도

과연 금속 산별 교섭 체제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골리앗 대공장 조합원들의 사회적 양보가 우선 전제돼야 하는 것일까? 또 조합원들은 양보를 할 수 있을까? 현대차노조 이재인 교육위원은 “현대·기아차 조합원만 7만 명으로 금속노조 총 조합원의 절반에 이른다. 산별 교섭에서 대공장의 이해를 전면에 내걸게 되면 (산별로) 형식만 바꾼 채 (기존 기업별 노조의) 자기 배만 채운다는 비판이 제기될 게 뻔하다”며 “초기에는 산별 교섭의 대의를 알린다는 측면에서도 대공장 조합원들이 내놓아야 할 몫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등 대공장 조합원들이 지난해 6월 산별 전환을 전격 결의한 배경에는 “기득권 노조로 찍혀 욕만 먹고 있는데, 일단 산별로 가고 보자”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산별로 전환해도 기업별 체제에 비해 달라질 것이 별로 없으므로 부담 없이 산별로 가자”는 잘못된(?) 인식도 꽤 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산별 교섭의 원리와 대의, 작동 방식을 잘 모른 채 산별 전환 투표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은수미 연구위원은 “산별 교섭 때 대공장 조합원들이 뭘 어떻게 양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며 “대기업 조합원은 임금을 깎고 대신 중소기업 쪽은 올리는 것을 둘러싼 ‘조정 문제’가 노동 내부에서 불거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금속 대공장 사용자 쪽이 “산별 교섭에 참여할 테니 대신 노조 내부에서 임금 조정안과 작업장 노사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대공장 노조와 중소 업체 노조 간에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산별 교섭 초기부터 임금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산별 노조 조직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정규직이 손해본다는 생각을 넘어서야”

현대차노조 반일효 실장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깎는 제로섬 방식으로 비정규직·중소 사업장 조합원들의 임금 격차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20년 넘게 해온 기업별 체제를 한순간에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산별로 전환된 만큼 현대차 노조의 힘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규약에 따르면, 교섭권·쟁의권은 산별 금속노조 위원장한테 있고, 이를 지역지부장한테 위임할 수는 있지만 기업지부장한테는 어떤 경우에도 위임할 수 없다. 민주노총 하부영 울산본부장은 “산별 체제에서 정규직이 손해본다는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 임금 외에 장학금·의료비 확보, 금속 실업자 고용안정 기금 마련 등을 통해 대기업 노조의 투쟁 성과가 사회적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산별 교섭 초기에는 현대차노조의 역할이 더욱 크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산별 전환에 따라 현대차가 더욱 전국적 노사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며 “산별 교섭에서 힘을 취약 계층을 위해 사용해야 사용자 쪽도 설득해 테이블로 이끌어내고, 사회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인 교육위원은 “‘아, 이래서 산별 노조가 필요하구나’라는 분위기를 빨리 만들어내야 산별 체제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별 교섭 그냥 둘 수 없다”

금속노조 이후 ‘제조산별 노조’ 구상하는 정갑득 신임 위원장



산별 금속노조 새 위원장으로 선출된 정갑득(48) 전 현대자동차노조 6·8대 위원장은 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산별 교섭을 총체적으로 완성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대공장의 기업별 교섭을 그냥 둘 수는 없다”며 “산별 노조 위원장인 내가 직접 현대차 노사 교섭 테이블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우선 일정이 촉박하기 때문에 금속노조의 산별 교섭 준비가 올해는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의원대회를 소집하고 8, 9월에는 사업장별로 지부장·지회장 선거를 해야 한다”며 “1년 먼저 산별 교섭을 완성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올해는 산별 교섭의 토대를 마련하는 선에서 일단 산별 기본협약을 맺는 싸움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산별 체제에서는 단체 교섭권을 사업장 지부·지회장이 아니라 산별 노조 위원장이 갖고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르는 조합원들도 있는 게 현실”이라며 “지난 20여 년간 관행으로 정착된 기업별 교섭 틀을 바꾸는 노력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사용자 쪽의 산별 교섭 불참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정 위원장은 “무조건 총파업으로 싸우겠다는 것은 아니고, 사용자들의 태도를 봐서 턱도 없이 나오면 파업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미 선거 공약에서 ‘미조직·비정규노동자 조직화사업단’을 구성해 삼성 계열사와 포스코 사업장 등의 재벌 기업과 공단,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대규모 재정과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미조직 노동자들에게까지 산별 협약의 효력이 확장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임금교섭을 중앙교섭 테이블로 가져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임금 외에 사교육비 보장이나 부품 납품 단가 현실화 등을 교섭 의제로 내걸어 임금 격차를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산별로 가면 손해본다는 인식이 대공장 조합원들에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데, 산별 노조가 아무것도 못한 채 조합비만 늘리고 중앙 본조의 노조 간부 수만 늘리면 조합원들이 (산별에서) 튀어 나가버릴 것”이라며 “현재의 금속 15만 명 조합원이 산별 대오에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으면, 화학섬유와 건설플랜트로 조직을 더 확대해 30만 명을 포괄하는 ‘제조산별 노조’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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