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점 사업으로 ‘산별 교섭 쟁취’ 내건 제4기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계단식 산별 확대전략’으로 대공장 사용자까지 교섭 테이블로 이끌 수 있을까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서울 영등포에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사무처의 한쪽 벽에 걸린 게시판을 보면 편지 두 통이 눈길을 끈다. 하나는 포항교도소 구속노동자가 보낸 것인데, “지난해 6월 현대·기아차를 포함해 대공장 노조들이 산별 조직 전환을 결의해 노동운동의 희망이 보인다”는 격려 편지다. 또 하나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단대표가 보낸 것으로 “산별 노조 전환으로 정규·비정규, 대기업·중소기업, 업종·지역을 뛰어넘어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고 환영하는 메시지다.
현대·기아·GM대우자동차 등 대공장 노조들이 기업별 노조 체계를 벗고 산별 노조 전환에 성공한 뒤 금속노조의 모든 활동은 산별 교섭에 맞춰져 있다. 실질적인 산별 금속노조 초대 지도부도 새로 구성됐다.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을 지낸 정갑득 후보가 지난 2월26∼28일 사흘 동안 실시된 전국금속노동조합 임원선거 결선 투표에서, 5만5126표(51.43%)를 얻어 4만7809표(44.6%)를 획득한 기아차노조 출신 정형기 후보를 누르고 제4기 산별 금속노조 위원장에 뽑혔다. 이번 선거에서는 완성차 대공장·중소부품업체·조선(중공업)·일반기계·전기전자 업종을 총망라해 금속산업 조합원 13만3천 명이 직선 투표로 새 지도부를 선출했다.
본격화된 산별 노조 시대
정 신임 위원장은 조합원 15만 명을 거느린 산별 금속노조의 올해 중점 사업으로 ‘산별 교섭 쟁취’를 전면에 내걸었다. 올해 한국 노사관계의 태풍의 눈은 ‘산별 교섭’이다. 삼성경제연구소도 2007년 국내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산별 노조 확산’을 선정했을 정도로 산별 교섭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형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경우 2006년 말 현재 산별 노조 전환율(기업별 노조에서 산업별로 전환한 노조 비율)은 75.6%에 이른다. 전국 규모의 대규모 산별 노조는 금속·공공서비스·운수산업(철도·버스·택시·화물)·보건의료·공무원·전교조·언론·대학·화학섬유 등 9개 노조가 있고, 소규모 산별까지 합치면 총 27개 산별 노조(소속 사업장은 총 1688개 지역·기업지부)에 산별 조합원은 총 56만8천 명(민주노총 총조합원은 75만 명)이다. 산별 노조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올해 현대·기아차 등 대공장 사용자들이 산별 본교섭(중앙교섭) 테이블에 나와 역사적인 산별 교섭이 이뤄질 수 있을까? 금속 산별 교섭을 둘러싼 가장 큰 관심사는 △교섭 테이블 구성과 사용자단체 결성 △산별 교섭 의제와 교섭 구조 △산별 교섭 요구를 위한 총파업 여부다. 올해 초 벌어진 현대자동차의 연말 성과금 싸움이 보여주듯 산별 교섭을 둘러싼 노사 간 샅바 싸움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연말 성과금을 둘러싼 대립은, 회사 쪽이 성과금 지급을 조건으로 산별 파업 자제를 유도하는, 즉 산별 노사관계를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올해 금속 산별 교섭의 가장 큰 대립은 사용자단체 구성을 둘러싸고 전개될 공산이 크다. 현대·기아차 등 대공장 사용자들은 “사용자단체를 구성해 중앙교섭 테이블에 나오라”는 노조 쪽 요구를 거부하거나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점쳐진다.
“사용자가 교섭 거부시엔 투쟁 불가피”
물론, 산별 금속노조를 사용자 쪽이 인정하는 분위기는 형성되고 있다.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들의 월급날인 지난 2월5일 4억5천만원의 조합비가 금속노조 통장에 입금됐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로 바뀌었으니 조합비를 일괄 공제해 이제 금속노조 통장으로 자동이체시켜달라”고 요구한 것을 회사 쪽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매달 금속노조 총조합원 14만5천 명의 조합비 23억2천여만원(연간 약 280억원)이 금속노조 통장에 입금될 예정이다. 금속노조 조건준 국장은 “사용자 쪽이 산별 금속노조와 전면전을 벌이겠다면 조합비 이체부터 거부할 것인데 수용한 것을 보면 현실을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산별 노조 인정의 핵심은 산별 교섭인 만큼 교섭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면 투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총파업의 힘만으로 완성차 대공장 사용자 대표들을 중앙교섭 테이블로 불러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동안 금속산업 노사간 중앙교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부터 대부분 중소 사업장인 87개 업체 사용자들이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를 구성해 중앙교섭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제 대공장 사업장까지 산별에 포함된 상황에서 현대·기아차 사용자가 교섭 테이블에 나오지 않게 되면 다른 중소 부품업체 사용자들까지 눈치를 보면서 교섭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조건준 국장은 “기존에 중앙교섭에 참여한 중소 사용자들이 ‘우리가 지난 3년간 맺은 산별 단체협약이 이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대공장이 들어왔으므로 다시 바꿔야 한다’면서 대공장에 모든 것을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며 “당장 올해 산별 교섭 싸움은 완성차 대공장 사용자들이 사용자단체를 구성해 중앙교섭에 나오도록 요구하되, ‘기본협약’ 정도를 쟁취하는 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별 단체협약은 △기본협약 △고용협약 △임금협약 △금속산업정책협약 등으로 구분되는데, 기본협약에 담기는 내용은 주로 산별 노조 인정과 사용자단체 구성 등에 관한 사항이다. 임금과 고용(비정규직 문제), 산업정책협약을 맺는 싸움은 내년으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사용자 쪽, 이중교섭·이중파업 문제 제기
이와 관련해 정갑득 신임 위원장은 올해는 산별 교섭 토대를 마련하고, 2008년에 산별 교섭을 완전 쟁취한 뒤 2009년에 산별 교섭을 제도화하는 ‘계단식 산별 확대전략’을 내놓았다. 또 산별 교섭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올해 1단계 총파업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산별 교섭을 해온 보건의료노조도 산별 교섭 초기에 파업이 가장 많이 일어났는데, 대부분 사용자들을 중앙교섭 테이블로 불러오기 위한 파업이었다. 노조가 조직체계를 기업별에서 산별로 전환했다 하더라도 사용자들이 사용자단체를 구성하지 않고 중앙교섭에 나오지 않는다면 현행법상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할 수단은 없다.
물론 사용자 쪽은 “기업지부는 산별 중앙의 파업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업장의 실정과 무관한 파업이 발생할 우려가 크고, 산별 중앙교섭(최저임금협약)과 기업별 보충교섭을 병행하는 복잡한 교섭 형태가 전개될 것”이라면서 ‘이중교섭’과 ‘이중파업’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실 사용자들이 교섭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중앙교섭은 올해도 중소업체 사용자들만 참여해 이뤄지고 현대·기아·GM대우·쌍용차는 빠져나가 독자적인 기업별 교섭을 계속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또 산별 중앙 본교섭-지역별 지부교섭-사업장별(지회) 보충교섭 등 3중 교섭 형태를 띨 수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더 이상 기업별 수준의 대응으로는 노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경쟁력 확보도 어렵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산별 사용자단체를 구성해 교섭에 나서야 한다”며 “교섭 때만 급히 구성되는 임시 사용자단체가 아니라 법적인 사용자단체를 구성해 단체협약 체결권을 여기에 부여하면 기업마다 노무관리 비용을 기업 바깥으로 떠넘길 수 있고, 기업 내부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에 주력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산별 중앙교섭에 참가해온 금속 87개 사업장의 경우 노동쟁의가 발생한 사업장은 12곳인데 파업지속기간은 산별교섭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금속 사업장에 비해 6배나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도 3배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산별체제이기 때문에 중앙 지도부가 강한 교섭력과 조정 능력을 갖고 있고, 현장 분규에 대한 통제력도 크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노조 이재인 교육위원은 “싸움을 해서든, 또는 중앙교섭 의제를 잘 정해 사용자들이 테이블에 꼭 나오게 만들든 산별 본교섭을 성사시키는 것이 금속 산별 노조의 과제”라며 “노동조합끼리 문패만 바꾸는 건 위력적이지 않다. ‘무늬만 산별’을 뛰어넘어 교섭을 통해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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