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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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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하사는 지옥의 중심에 있었다

등록 2007-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악화일로인 아프간 치안상황, 새해 들어 탈레반의 전방위 공격 시작…딕 체니의 숙박 일정 알려진 몇 시간만에 자살폭탄 공격으로 능력 입증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기어이 애꿎은 젊은 피가 테러와의 전쟁터에 뿌려졌다. 전쟁이 시작된 땅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져 귀국을 두 달여 앞둔 한국군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하사가 처참히 스러져갔다. 베트남전 파병 이후 한국군이 외국에서 적대 행위로 목숨을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하사의 주검을 수습하기 위해 3월1일 이른 아침 한국을 출발한 전세기에는 또 다른 전쟁터인 이라크 에르빌로 향하는 자이툰부대 젊은이들이 타고 있었다.

사실상의 ‘춘계 대공세’

윤 하사를 죽음으로 내몬 사건은 2월27일 오전 10시께(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50여km 떨어진 파르반주 바그람의 미 공군기지 정문 부근에서 벌어졌다. 이날 폭발로 숨진 이들은 모두 23명이다. 윤 병장과 함께 미군 병사 1명과 미국인 용역업체 직원 1명도 목숨을 잃었지만, 대부분의 희생자는 부대 출입을 기다리던 아프간 트럭 운전사들이었다.

탈레반은 이날 공격을 현지를 방문 중이던 “딕 체니 미 부통령을 겨냥한 암살 시도”였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정문에서 1km 남짓 떨어진 부대 안 안전지대에 머물고 있었던 체니 부통령도 “거대한 폭발음을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탈레반의 공세는 대담했다. 이날 사건이 아프간의 불안하기만 한 치안 현실과 이미 일정 궤도에 오른 탈레반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01년 10월 9·11 동시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간을 침공한 미군이 권좌에서 축출한 지 5년이 넘게 흘렀지만, 탈레반의 거센 저항은 여전히 불을 뿜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 집중하는 사이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힘을 길러온 탈레반 탓에, 한때 ‘카불 정권’이란 비아냥에 시달리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아프간 정부는 이제 수도에서조차 안전을 장담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아프간에선 모두 139차례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5년에 비해 5배나 급증한 수치로, 2001년 침공 이래 최악의 핏빛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지난여름 처음으로 아프간 남부와 동부 일대에 배치된 37개국이 참여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도의 국제치안지원군(ISAF)이 191명의 전사자를 냈다는 최신호의 지적도 놀랄 일만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숨진 게 확인된 아프간 주민만도 3700여 명에 이른다. 이는 미국 주도의 ‘항구적 자유’ 작전에 따른 사상자 수치와는 별개다.

탈레반의 공세는 새해 들어 더욱 격렬해졌다. 이미 이달 초부터 사실상 ‘춘계 대공세’에 들어간 탈레반은 아프간 북부 일부를 제외한 온 나라에서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이 지난 2월23일 전한 소식은 탈레반이 아프간 동·서·남부에 걸쳐 벌이고 있는 전방위 공세의 실상을 극명히 보여준다.

아프간 34개 주 가운데 탈레반이 공세를 집중하고 있는 지역은 헬만드·칸다하르 등 남부 2개 주와 서부 파라, 중남부 오루즈간, 중서부 고르 등 5개 주로 전해진다. 이 방송은 현지 주둔 나토군 관계자의 말을 따 “탈레반은 현재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 공세를 펼침으로써 나토군의 작전반경을 최대한 분산시키려는 전술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점 중심에서 게릴라 전투로 전술 바꿔

현지 주둔 미군과 나토군은 탈레반의 ‘춘계 대공세’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탈레반 쪽은 이미 지난 2월2일 헬만드주 무사칼라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공세의 서막이 올랐다고 주장한다. 은 “탈레반이 장악한 무사칼라에서 불과 25km 떨어진 거리에는 아프간 남부 지역 재건·복구의 관건으로 불리는 카자키 수력발전소 댐 건설 현장이 있다”며 “현재 이 지역에선 영국군 해병대 수백 명이 공사현장을 보호하기 위해 매일이다시피 탈레반과 격전을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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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탈레반은 오루즈간·헬만드·칸다하르 3개 주에서 확보한 거점을 중심으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탈레반은 한번에 200여 명씩 동원해 강력한 게릴라 전투를 벌이는 쪽으로 전술을 바꿨다. 활동무대도 남부 3개 주를 넘어 서부까지 확대하고 있다.” 이 방송은 이슬람 무장단체를 연구해온 파키스탄 언론인 아메드 라쉬드의 말을 따 “탈레반의 게릴라 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나토군도 활동 지역을 넓힐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결국 탈레반의 거점을 집중 소탕하려던 나토군의 계획이 제약을 받게 되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신이 전하는 최근 상황은 탈레반의 공세 범위가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월19일 아프간 동부 파키스탄 국경지대 쿠나르주에선 미군이 탈레반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미군 병사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남부 오루즈간주에선 도로 매설 폭탄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던 아프간 정부군과 나토군이 탈레반의 기습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튿날인 2월20일에는 남동부 호스트주에서 탈레반 요원으로 추정되는 자살 공격자가 의사로 위장해 지역 병원을 덮쳐 미군 7명이 다쳤다. 윤 하사의 죽음이 느닷없이 닥친 건 아니란 얘기다.

윤 하사의 죽음을 부른 자살폭탄 공격 자체에 대한 분석도 요긴하다. 지금까지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숙박을 한 미국 고위 인사는 단 1명도 없었다. 하지만 카르자이 대통령 면담을 목적으로 아프간을 방문했던 체니 부통령은 급작스런 눈보라로 발목이 잡혀 바그람 기지에서 예정에 없던 숙박을 해야 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탈레반이 체니 부통령 암살을 노린 것 자체가 탈레반의 ‘능력’을 입증한다는 얘기다.

〈AP통신〉은 군사·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아프간 전문가 세스 존스 연구원의 말을 따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자살폭탄 공격을 실행에 옮기려면 잘 발달된 자살폭탄 공격자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악화일로를 치닫는 아프간의 치안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체니 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탈레반엔 엄청난 선전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전했다. 후사인 하카니 미 보스턴대 국제관계센터 소장도 “이번 사건은 탈레반의 위협이 부시 행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탈레반 빠져나간 뒤에야 나토군 출동?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벌이고 있는 치고 빠지기식 게릴라 전술은 실상 이라크 저항세력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과 마찬가지로 탈레반은 치밀한 계획 아래 시간과 장소를 골라 계산된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공세가 사방에서 벌어지는 터라 미군과 나토군은 이들의 움직임을 뒤쫓느라 분산될 수밖에 없다. 특정 지역에 공세를 집중하고 도시를 손에 넣은 탈레반이 이튿날 외곽 지역으로 빠져나간 뒤에야 미군이나 나토군이 출동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아프간이나 이라크나 마찬가지다.

아프간에 전쟁의 암운이 드리워진 것은 30년 전부터다. 냉전의 극한 대립이 몰고 온 소련의 침공은 냉전이 끝난 뒤 아프간 내부의 종족갈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탈레반의 집권으로 잠시 주춤하던 폭력의 악귀는 21세기 들어 ‘테러와의 전쟁’이란 새로운 형태의 장기전으로 번져나갔다. 그 한가운데에 한국군 다산·동의부대가 있었고, 윤장호 하사가 있었다. 그들은 왜 그곳으로 갔는가?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윤 하사의 사이버 분향소에 남긴 글에서 “세계 평화 유지와 국위 선양”을 언급했다.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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