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콩트] 황금돼지를 잡아라

등록 2007-02-16 00:00 수정 2020-05-03 04:24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 지 5년, 1등 출산자에게 500만원 상금이 걸리고, 슬기 엄마와 배씨네는 젊은 새댁을 경계하며 선착순 출산 경쟁에 뛰어드는데…

▣ 권지예 소설가

마을 공판장 배씨네에 찐고구마 소쿠리를 앞에 두고 세 여자가 모여 앉아 있다.

“그래, 어제 결혼기념일은 잘 보냈어?”

이장댁 슬기 엄마가 배씨네의 옆구리를 쿡 치며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잘 보내긴… 개뿔! 그 화상,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고 요 계곡 밑에 새로 생긴 모텔에나 한번 가려고 했더니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왔어. 어제가 디데이였거든. 꽃다발은 준비해왔더구만.”
“어머! 언니네 오빠, 무드 죽인다!”

예지씨가 손뼉을 치며 말한다.

30대 중반인 두 여자에 비해 아직 젊은 예지씨는 쌍춘년인 지난해에 시집온 새색시다.

“근데 국화 꽃다발이었어.”
“국화?”
“어제 읍내 초등학교 동창 부친상이 있었대. 술 취한 화상이 화환에서 몇 송이 슬쩍 뽑아왔다나. 그걸 결혼기념 꽃다발이라 내밀더라고.”
“그러게 남자들은 왜 결혼하면 다 그렇게 되는 거야?”
“우린 뭐 안 그래? 뒤뚱뒤뚱 집오리밖에 더 돼? 직장 다니며 일이백 벌어오는 청둥오리도 아니고, 연봉 1억원 되는 황금오리도 아니고.”
“아 참! 언니들, 용구씨 도망간 연변 색시 말이에요. 도망갈 때 임신 3개월이었대요.”

예지씨가 고자질하듯 말하자 두 여자의 얼굴에 부러움이 잠깐 스쳤다. 두 여자가 동시에 혀를 찼다.

“애까지 밴 여자가…. 이야, 용구씨 오래 안 쓰던 연장인데 성능 괜찮네. 아이구 하느님도 불공평하시지. 뭐야, 도망갈 여자한테는 애를 점지하시고.”

슬기 엄마와 배씨네는 정해년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열렬하게 임신을 원하고 있던 터였다.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기는 재물복을 타고나는 복덩이라고 한다. 슬기 엄마는 5대 독자 남편에게 시집와서 8살 난 딸 슬기를 낳고는 시부모의 은근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장인 슬기 아빠는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슬로건을 소신껏 지키자는 주의였지만, 주변의 압박에 꼬리를 내리는 중이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거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50호 남짓한 동네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 지 5년이 넘었다. 특히 올해는 600년 만에 온다는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군에서도 올해 선착순으로 아이를 먼저 낳는 산모에게 200만원이란 상금이 내려지게 되어 있다. 이장인 슬기 아빠가 그 정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선착순이라 당연히 동네 사람들에게는 한동안 그 사실을 쉬쉬했지만 그 정보를 아는 사람은 다 알게 된 것 같다. 배씨네는 결혼한 지 6년째지만 애를 써도 태기가 없었다. 올해 아이를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예지씨, 아직 소식 없어?”

슬기 엄마가 슬쩍 묻는다.

“아이, 없어요. 급할 거 있나요? 오빠랑 둘만의 인생을 좀 엔조이하다 가져도 되지요. 오빠가 나이가 좀 되지만.”
“구럼, 구럼!”

슬기 엄마가 예지씨의 등을 토닥이며 속으로만 말한다. ‘강력한 라이벌 하난 제쳤고, 배씨네가 있지만 워낙 그쪽은 적중률이 떨어지니 나밖에 없잖아?’

“근데 그 오빠란 소리 좀 하지 마. 요즘엔 개나 소나 다 오빠래. 슬기네는 남편보고 아빠라 그러지 않나. 뭐 근친상간도 아니고.”

지청구를 먹인 게 좀 미안했던지 배씨네가 커피를 내왔다. 노곤해서 마시고 싶지만, 슬기 엄마는 사양한다. 아들을 낳으려면 참아야 해. 대신 정자의 왕성한 활동을 위해 새벽마다 남편을 깨워 사약 같은 커피를 안기니 슬기 아빠는 점점 마누라가 두려워졌다.

슬기 엄마가 궁둥이를 털고 집에 들어서자 시어머니가 반겼다.

“마실 갔다 오냐? 얼릉 방에 들어가봐라.”

슬기 엄마가 방으로 들어서니 웬 퀸 사이즈의 침대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왜 용구 색시가 도망갔잖냐. 벌써 넉 달이나 지났으니 돌아오기야 하겄냐? 느이 시아버지가 용구 아버지한테 졸라서 헐값에 얻어온 물건이다. 원래 멍석이 좋아야 재주도 제대로 나오니라.”

시아버지가 큼큼 잔기침을 했다. 지원사격이 만만치 않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침대에 벌렁 누우니 68kg의 몸이 가볍게 붕 떴다. 으음, 쿠션 장난 아닌데. 마흔셋의 용구씨는 쌍춘년을 맞아 중국에 가서 연변 색시를 데려왔다. 늙은 총각이 얼마나 좋았던지 신혼가구를 최고급으로 뽑았다. 침대가 너무 편안해 스르르 잠이 왔다.

“난 넣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아. 넌?”
“쏙쏙 들어갈 때 너무 기분 좋지 않니?”
“아니, 난 뺄 때가 더 좋은데.”
“맞아! 근데 넌 뺄 때 어떻게 해? 난 안 빠져서 힘든데.”
“난 찢어. 그래야 빼기 편해.”

웬 야한 대화가 잠결에 들려왔다. 이게 뭔 소리랴?

방문을 열고 나가니 마루에 슬기가 친구 둘과 돼지 저금통을 안고 있었다. 연말에 농협에서 나누어준 황금돼지 저금통이었다. 슬기 엄마는 피식 웃었다. 에고, 그놈의 황금돼지가 뭐기에 관심이 요상한 데로만 돌아가니….

며칠이 지나자 5년째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마을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인근 ‘돼지호텔’의 강 사장이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마을에서 가장 먼저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에게 300만원을 쾌척하겠다는 것이다. 돼지호텔이란 돼지를 키우는 축사가 호텔 못지않게 고급스러워서 붙인 별칭이다. 고급 사료에다 목욕시설까지 갖추고 짝짓기를 할 때는 거의 침대 수준의 방을 제공하는 그야말로 돼지들의 호텔 파라다이스다. 그곳의 돼지는 병도 잘 걸리지 않고 육질도 담백하고 쫄깃쫄깃해서 아주 비싸게 팔려나간다. 올해 아이만 낳으면 거금 500만원이 굴러 들어오는 것이다.

며칠째 배씨네는 싱글벙글이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연 사흘째 돼지가, 그것도 황금색 털을 가진 돼지가 배씨네의 등에 척 업히는 꿈을 꾼 것이다. 분명히 태몽이다. 왠지 속도 메슥거리는 것 같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김치 냄새도 싫고 이상하게 매운 고추만 된장에 찍어먹어야 밥이 먹혔다. 이장집 슬기 엄마를 생각하니 고소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그 돼지처럼 욕심 많은 여편네가 늦둥이 아들을 낳고 유세하는 꼴을 그려보면 배알이 꼴려 미칠 지경이었다. 나야 아들이든 딸이든 욕심을 버린 몸. 어떤 인간이 더 착한지 하늘이 잘 알겠지. 게다가 500만원이라니. 이깟 허접스런 공판장 물건에 댈까? 느글대는 속을 달래려 귤 하나를 집으려고 바깥 진열대로 나가려 하는데 예지씨가 휙 지나쳤다. 부르려다가 만다. 아직 처녀티가 나는 날씬한 뒷모습이 부럽다. 시골에 묻혀 살기엔 아까운 인물이다.

노총각 박씨가 데려온 여자라 근본은 알 수 없지만 그 애교나 웃음으로 보아 보통은 아니다 싶다. 읍내 노래방 도우미를 몇 번 나갔다가 남편에게 걸려 그만두었다 한다. 어찌 되었건 인사성과 붙임성이 좋아 마을의 누구와도 잘 지내는 여자다.

귤 하나를 까먹고 있는데 슬기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딸기 없어요?”
“어쩌나, 떨어졌는데. 안 팔리면 금방 물러 터져서 잘 안 갖다놔요.”
“아, 슬기 엄마가 딸기 노래를 부르는데 읍내까지 가야 하나…. 이놈의 여편네, 웬 딸기만 계속 찾는지, 원. 아 알았어요. 수고하세요.”

슬기 아버지가 나가자 배씨네는 공연히 무릎에 힘이 빠진다. 설마 슬기 엄마한테 선수를 뺐기는 거 아냐?

다음날 오후에 예지씨가 슬기 엄마를 찾아왔다.

“미안해요, 언니. 어쩌죠?”

며칠새에 예지씨의 얼굴은 단무지처럼 노랬다. 슬기 엄마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래 뭐가 그리 급혀!”

예지씨가 임신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분명 상금은 선착순 ‘출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실망할 필요 없다. 슬기 엄마는 부아가 치미는 걸 참고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왠지 예지씨의 얼굴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우연의 일치인 걸까? 요즘 한동안 서먹하여 얼굴 본 지도 꽤 되었는데 슬기 엄마와 배씨네는 공교롭게도 읍내에 있는 산부인과 의원 대기실에서 만났다. 무척 어색했다. 진료실에서 슬기 엄마를 먼저 불렀다. 배씨네는 혹 슬기 엄마가 임신했다며 희희낙락 나오는 꼴을 마주 보게 될까봐 화장실에 들어가 오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설날 연휴에 동네잔치가 있었다. 타향받이로 5년 전에 동네에 들어와 뒷산 공터에 돼지 축사를 지어 동네 사람들의 욕을 얻어먹었던 강 사장의 돼지호텔이 돼지해를 맞으면서 신문에 크게 난 덕분에 강 사장이 예상 외의 큰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강 사장이 막걸리와 돼지를 잡아 한턱을 썼다. 술이 여러 순배 돌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얼큰하게 취했다. 기분 좋게 술이 취한 강 사장이 일어나 말했다.

“여러분! 올해는 돼지해. 돼지처럼이란 말이 욕으로 쓰이지만, 돼지는 정말로 깨끗하고 영리한 동물입니다. 아 그리고 저는 다음 생에선 돼지로 태어나고 싶습니다요. 왜냐? 거 돼지란 놈이 말입니다. 동물 중에 오르가슴을 느끼는 시간이 제일 길답니다. 장장 30분이랍니다, 하하하! 여러분 덕분에 돼지 키워 저 돈 좀 벌었습니다. 차린 건 없지만 술과 고기는 마음껏 드십시오. 제가 받은 것, 앞으로 차차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올해 첫 사업으로 약속대로 이 마을에 돼지처럼 복스러운 아기가 태어나길 기원하며 산모에게 300만원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게 꼭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부지런히 돼지처럼 열심히 사랑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강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호기로운 소리가 들렸다.

“걱정 마세요. 우리 집이 따논 당상이니까!”

배씨의 목소리였다.

“아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우리가 먼저 내보낼 거여!”

슬기 아빠의 당찬 목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쳤다. 슬기 엄마와 배씨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얼마 전 자연유산이 되어버려 중도 탈락한 예지씨도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