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왜 서울은 ‘블랙홀’이 되었나

등록 2001-03-13 00:00 수정 2020-05-02 04:21

중앙집권제의 역사, 위계적 사회구조 등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서울을 만들었다

“망아지는 제주도로 보내고 자식은 서울로 보내라.”

사실 우리나라의 서울중심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세기를 넘어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들에게는 서울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 그리고 서울로 가는 것 자체를 성공으로 보는 인식이 뿌리깊게 머릿속에 박혀 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하다는 데 이견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특성처럼 굳어졌다. 이제는 거의 모든 젊은 세대들이 “언젠가는 서울로”를 외치며 서울로 향하는 그날을 기다릴 정도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국민들이 심리적으로는 ‘서울공화국 시민’이 될 판이다. 이 심각한 서울중심주의의 심리적, 역사적, 구조적 이유는 뭘까.

통일신라부터 시작된 중앙집권관료체제

전문가들은 예외없이 우리나라의 오랜 중앙집권주의를 지금의 서울집중화, 즉 일극중심주의의 원인으로 꼽는다. 기본적으로 왕권의 중심지인 서울이 모든 지방의 위에 군림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울보다 북쪽에서 서울로 가더라도 “서울에 올라간다”고 표현하는 ‘상경’이란 단어에서도 잘 나타난다. 특히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유럽, 혹은 입지가 비슷한 동아시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중앙집권 정치체제가 발달했다. 작은 나라들인 연방이 합쳐진 유럽 국가들이나 워낙 땅덩어리가 커 중앙의 힘이 지방까지 완벽하게 통제하기 불가능했던 중국, 그리고 막부들의 발호로 지역마다 거의 국가나 다름없는 지방정권이 생겨났던 일본과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전남대 인류학과 최협 교수는 “적어도 통일신라 이후 우리나라는 1000년 넘게 중앙집권 관료체제를 이어온 독특한 역사를 지녔다”며 중앙집중화현상이 역사적으로 너무나 오래됐다고 풀이한다. 특히 조선조 이후에는 지방의 지도층인 사대부들이 중앙, 즉 서울로 진출해야 다시 지방에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됐고, 이 때문에 조선조 역사를 보면 집권층은 조직을 강화하고 서원을 만드는 등 기득권 유지에 온 힘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송도영 교수도 “역사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좁은 나라에서 한번 서울이 중요해지니까 모두 거기에 모여들고, 그러다보니 다른 곳으로 중심을 옮기거나 분산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너무 커져 엄두를 못 내게 됐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조선시대부터 도시라는 개념은 서울 이외에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며 “서울이라는 단어가 도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서울의 반대말은 시골이라는 개념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에 비해서는 아무리 큰 도시인 부산이나 광주도 시골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런 이유라는 것이다. 조선 초기 이미 서울은 든든한 배경을 업고 있는 ‘핵심’들이 모이는 곳으로 정착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료주의 이전에 지리역사주의적 요인으로 논농사문화와 집약적 농업경제를 집중화의 요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관개농업에 기반을 두는 집약적 논농사경제는 치수의 문제 때문에 조직적으로 물관리를 하기 위한 집중된 조직과 통제수단이 발달하기 쉬워 결국 중앙집권형태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 중심주의가 역사적으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 현상이 특히 산업화 이후 극도로 심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처럼 심화한 이유가 역사적 요인보다도 산업화 과정에서 벌어진 개발독재의 부작용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라는 글에서 정치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서울집중 문제를 분석한 바 있다. 이 글에서 최 교수는 우리나라의 중앙집중화를 ‘초집중화’로 정의했다. 정치적 권력뿐만이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서 자원이 서울이라는 하나의 공간 내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 초집중화의 이유로 최 교수는 △조선조의 유교적 관료·정치문화 △일제의 억압적 국가관료통치체제 △냉전 아래의 남북한 대결구조 △군사권위주의체제와 국가주도형산업화를 들고 있다. 한국사회가 현대로 접어들며 거쳤던 모든 역사적 단계들이 이 초집중화를 더욱 강요하고 고착화했다는 분석이다.

‘초집중화’가 지역감정 증폭한다

최 교수는 이 초집중화가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지역분열과 지역감정이 초집중화에 의해 발생되고 증폭되기 때문이다. 초집중화와 지역감정에 의한 정치가 다른 현상임에는 틀림없지만, 초집중화가 지역감정의 가장 중요한 원인기기 때문이다. 집중화의 정도가 크면 특정의 소수집단, 소수 엘리트에게 사회적 자원과 가치가 그만큼 많이 집중하는 독점현상이 생겨나고 이는 필연적으로 그 반대편을 배제하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탓이다.

최 교수의 이론처럼 많은 전문가들은 서울일극주의의 가장 큰 폐해로 사회를 위계적으로 만드는 구조,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악화되는 점을 들고 있다. 상지대 교양과 홍성태 교수는 “사람들이 지방을 떠나 서울로 몰리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소득이나 삶의 편리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지난 몇십년간의 변화를 보면 사람들의 삶의 근거가 달라져 서울, 또는 도시로 가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됐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자신의 삶을 만족하고 살 수 없게 만드는 구조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수천년 이어온 지방의 문화나 환경이 무가치해진다. 사람들은 더이상 우리 문화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애착을 갖지 못하게 되고 서울로 몰리고, 서울은 서울대로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저 눈앞의 이익이 있으면 삶의 근거를 옮길 수밖에 없다.”

결국 이같은 집중화가 빚어내는 최고의 부작용은 사회전반의 서열화다. 사람의 사회경제적 능력이 피라미드 구조로 계층화되고, 결국 이에 따라 사는 지역도 우열의 개념을 적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전면을 서열화하고 있다고 점을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결국 서울대 제일주의나 서울제일주의나 한 맥락인 셈이다.

그러고 이런 추세는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 등 통신의 발달로 장소에 따른 정보의 격차는 외견상 사라지고 있고,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아니라 반나절생활권으로 바뀔 판인데도 이 추세는 더욱 빨라진다. 얼핏 봐서는 그만큼 서울을 고집할 필요성은 줄어드는 셈인데도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집중화 심해져

소설가 구효서씨는 문단의 서울집중주의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글쓰는 사람들이 꼭 서울과 가까울 필요도 없고, 팩스나 인터넷으로 글을 쓰기는 더욱 여건이 좋아졌지만 문학계 역시 서울 또는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서울에 가야 뭔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옛날에 사람들이 고향을 쉽게 떠나는 못했던 것은 시간과 지리적 상황, 그리고 지역에서 맺어온 끈끈한 관계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는 곳을 바꾸는 게 아주 쉬운 일이 됐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을 못한다. 그래서 굳이 서울로 문인들이 모이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지역색으로 승부하는 문학도 사라지고 어차피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을 하는 시대인만큼 굳이 지방에 있을 필요도 사라져가고 있다. 어디 있으나 다 비슷하니 그렇다면 차라리 서울로 가겠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30여년 전 경부고속도로가 처음 개통됐을 때, 온 나라는 고속도로 덕분에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됐으므로 지방도 발전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그 고속도로로 사람들은 하룻만에 서울로 이사오게 되면서 서울은 더 비대해졌다. 그리고 이제 더욱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결과는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수도권은 모든 대한민국 국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서 점점 더 덩치를 급속하게 키우고 있다. 그렇지만 해결책은 좀처럼 작은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