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군사연구소 해체 통고에 연구원들 소송전..군관련 사건 축소 은폐 의혹도

서울 용산구 삼각지 전쟁기념관. 각종 전시물을 통해 민족의 전쟁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요즘 이곳에는 방학을 맞아 전투기, 전차 등 전쟁 장비를 보러 온 아이들로 하루종일 떠들썩하다. 바로 이 기념관 4층에 국방부 산하 국방군사연구소가 있다. 국내 유일의 군사사(軍事史) 전문 연구기관이다.
지금 이 연구소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잔뜩 감돌고 있다. 전쟁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 연구소 연구원 자신들이 바로 한창 ‘전쟁’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26일에는 연구원들이 생전 처음으로 연구실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연구소 해체에 항의하는 뜻에서 궐기대회를 연 것이다. 그들의 전쟁 상대는 국방부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전쟁을 일각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소송… 소송… 소송
8월 들어서면서 연구원들의 싸움은 본격적인 소송전 양상을 띠고 있다. 초기의 폭로전에서 이른바 법정싸움으로 국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8월8일, 이 연구소 유재성(57) 책임연구위원 등 17명의 연구원들은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에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19명의 연구원과 9명의 일반직 등 총 28명의 직원들은 지난 7월10일부로 해고통지서를 받은 상태다. 연구원들은 이날 또 서울지법 북부지원에 ‘근로자 임시지위 가처분 신청’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도 함께 냈다. 여호규(36) 연구원은 “9월1일 국방부가 계획대로 연구소를 해체하고 군사편찬연구소를 세우면 이번에는 ‘군사편찬연구소 창설에 대한 대통령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방군사연구소 연구원들은 지난 7월21일에도 두건의 소송을 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 소송’이다. 이사회는 한국국방연구원 이사회를 가리키며, 무효확인 소송은 이 이사회가 7월4일 내린 연구소 해체결정 결의 자체가 무효라고 법원에 호소한 것이다. 연구원들은 같은 날 ‘연구소 폐쇄금지 가처분신청’도 법원에 냈다. 그러나 이 신청은 곧 기각됐고, 연구원들은 서울고등법원에 항고한 상태이다.
연구원들의 소송에 대한 국방부쪽 태도는 어떠한가? 국방부 기본정책과 최지홍 대령은 “연구소 해체와 이에 따른 군사편찬연구소 창설은 어디까지나 법무관실의 충분한 법적 검토를 거친 끝에 이뤄진 사항인 만큼 모든 게 적법하고 정당하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결정이나 법적 절차에서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문제될 게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듯하다. 먼저 법정싸움의 주요쟁점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방부가 내린 연구소 폐쇄결정과 이에 따른 연구원들에 대한 해고조처가 얼마나 정당하느냐는 문제이다.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국방부의 연구소 해체결정을 둘러싼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이 연구소 유재성 연구원의 ‘조직폭력배인가, 국책연구소 소장인가’란 글은 이런 점에서 매우 참고할 만하다. 유 연구위원은 이 글에서, “지난 98년 5월 구조조정기에 연구소장으로 박순찬(예비역 육군소장)씨가 부임하면서 연구소는 기구운용, 구조조정 등 극심한 혼란과 파행을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원들이 1999년 말, 당시 연구소장과 국방부장관에게 올리려고 연구소 문제 해결을 위한 건의서를 작성해 연대 서명했다. 이 문서는 결국 전달을 보류했는데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국방부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국방부로부터 연구원들이 괘씸죄에 걸려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한다.
“소장 폭력 등 전대미문 불상사”
건의서 파문 과정에서 전임 박 소장은 책임을 지고 지난 4월8일 물러나고 그 후임에 5월1일 현 조지연 예비역 소장(육사24기)이 연구소장으로 부임했다. “문제는 조 소장이 부임하면서 연구소 문제해결은커녕 인권유린, 폭행 등 전대미문의 불상사까지 발생해 연구소 운영이 더욱 파행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유재성 연구위원)고 한다. 유재성 연구위원은 “5월 9일 회의석상에서 조 소장이 폭언을 만류하는 나에게 유리컵을 던지고 가슴 등을 주먹으로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5월17일 조 소장을 명예훼손 및 폭행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그러나 조 소장은 유 연구위원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며 명예훼손으로 맞고소를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국방연구원은 지난 7월4일, 제38차 임시이사회를 열어 연구소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이사회의 결정은 사실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국방부가 이미 해체결정을 해둔 상태였던 것이다. 국방부는 군사연구소 해체에 대해 “국방연구소는 한국국방연구원과 업무성격이 다르고, 최근 불거진 노근리 사건과 같은 군 관련 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역군인과 군무원을 직원으로 하는 새로운 연구소 창설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국방연구원을 통한 해체결의는 다분히 문제가 많다는 게 연구원들의 생각이다. 국방연구원 정관에 따르면, 국방연구원을 해체할 때는 특별안건으로 재적이사 3분의 2의 결의가 있어야 하고 일반 안건은 재적이사 과반수를 필요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연구원들은 이 규정을 들어 “군사연구소 규정에는 해체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으니 당연 연구원의 규정에 따라 연구소 해체도 특별안건으로 봐야 한다”면서 “따라서 일반안건으로 해체결정을 꾀한 이사회 결의는 부적절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연구소 폐지 결정은 과반수 결의만으로 충분한 일반안건으로 적절했다”고 맞선다.
배항섭·이재훈씨 등 많은 연구원들은 또한 이사회 결정이 옳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부당해고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근로기준법상 해고를 하려면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가 있거나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 혹은 해고회피 노력이 필요한데, 그 어느 쪽도 지키지 않은 일방적 해고조처였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은 “연구소를 해체하고 임무와 기능이 비슷한 편찬연구소를 새로 세운다는 것은 기존 직원의 해고목적 외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노근리 사건 등에 효과적 대응

그러나 국방부는 “연구소 해체결정은 정부조직 개선이란 차원에서 그동안 정부조직화방안, 직할기관화, 독립법인화 등 6개 방안을 두고 오래 전부터 연구돼 온 사항”이라면서 “충분한 연구검토 결과 직할기관이 좋다는 견해에 따라 이뤄진 해고조처일 뿐”이라고 밝혔다. 국방부쪽은 더욱이 “새 연구소는 임무와 기능에서 기존 군사연구소와 똑같은 형태가 아니다”면서 “무엇보다도 지금 연구소로는 노근리 사건 등에서 보듯 현장 조사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국방군사연구소 해체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주장한다. 배항섭 연구원은 △연구소의 제반 비리와 문제점을 개선한 연구원 제거 △연구소에 대한 통제의 용이성 확보 △전문성은 떨어지더라도 군인력을 활용하겠다는 국방부의 집단이기주의 △노근리 사건 등 군 관련 사건의 은폐·왜곡·축소 등을 꼽았다. 특히 배 연구원은 “최근 사회적 요구에 밀려 노근리 등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국방부 차원의 조사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민간인 연구원들을 배제하고 현역과 군무원으로 구성되는 연구소를 신설해 국방부가 그어놓은 선에서 조사연구하려는 의도를 위해 연구소를 해체하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노근리 사건 조사 및 처리와 관련해 국방부의 연구소 폐쇄 방침은 다분히 의혹을 살 만하다. 국방군사연구소 파문 이후 지난 8월3일부터 3일 동안 노근리 사건에 대한 한·미합동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국방부 노근리조사반에서 연구해 온 민간인 연구원들은 이 회의에 단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했다. 양영조, 서용선 박사 등 노근리 조사 전문가들은 배제한 채 회의를 마쳤다. 국방부의 이런 태도는 군사연구소 해체에 대해 절차상의 문제를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어떤 의혹을 살 수밖에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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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군사연구소는 전쟁사, 군제사, 국방정책사 등 군사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이다. 1964년 8월 대통령령에 의해 전사편찬위원회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1992년 국방군사연구소로 이름이 바뀌면서 전쟁기념사업회 소속이 됐다. 1998년 정부 구조조정기에 연구소는 한국국방연구원(KIDA) 부설기관으로 또 한번 소속이 바뀌었다. 1945년 이후 국방정책, 국방외교 등을 연구하는 국방사부, 한국전쟁을 다루는 전사부, 근세 이전의 군사사를 연구하는 민족군사부 등이 있다. 연구소는 지금껏 한국전쟁사의 고전인 (10권), (11권) 등을 발간해 군사사 분야에서는 독보적 위치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국방군사연구소는 파행적 운영, 내부 비리 등으로 혼란을 겪다 마침내 수십년 동안 축적해온 연구성과를 뒤로하고 해체될 운명에 처해 있다.
국방군사연구소 해체 파문 일지
2000년 1월 초
군사연구소 연구원들, 국방부 장관에게
올리는 연구소 문제점에 대한 시정 건의서
작성(서명만 하고 보류)
3월 말
국방부, 연구소 국방부 직할기관으로
변경 하는 안 확정
4월8일
박순찬 전임 소장 사퇴
5월1일
신임 조지연 소장 부임
5월17일
유재성 연구원 신임 소장을 폭행죄로
서울지검에 고소
6월2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계획 하달
(현 연구소 해체)
6월16일
군사편찬연구소 제정령 입법예고
6월29일
군사편찬연구소 군무원 특채 시험공고
7월4일
한국국방연구원 이사회 군사연구소 폐지 의결
7월10일
28명의 직원에 대한 해고통지서 발송
8월21일
군사연구소 폐쇄 예정
9월1일
군사편찬연구소 출범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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