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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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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대로 걸어놓긴 싫거든

등록 2006-12-28 00:00 수정 2020-05-03 04:24

1년동안 동거동락할 나만의 달력 찾아 지갑을 꺼낸 젊은 여성들…블록형 달력은 인테리어 소품, 연인 달력은 볼 때마다 사랑스러워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선물로 들어오는 달력 중에서 마음에 드는 달력 찾는 건 너무 어려워요. 아주 가끔 일러스트가 예쁜 달력을 받기도 하지만 저는 탁상용 달력으로 달력 네모칸이 커야 하고 쓸 공간이 많고 디자인도 단순한 것이 좋거든요. 그래서 비싸지 않으면 직접 가서 제 마음에 드는 달력을 사는 편이에요. 1년 동안 책상 위에 놓고 볼 달력인데 기업 로고가 박힌 평범한 달력보다는 제 맘에 쏙 들고 예쁜 달력이 좋잖아요?”

카피라이터 홍성은(26)씨는 연말이 되면 마음에 드는 탁상용 달력을 찾느라 문구점을 찾는다. 물론 문구점에는 홍씨처럼 달력을 사러 나온 20~30대 여성들이 많다. 다들 디자인부터 색깔, 기능, 가격까지 잘 살펴본 다음 1년 동안 동거동락할 달력을 선택한다. 홍씨는 “엄마만 해도 선물로 들어오는 달력을 집에 걸어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또래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선물용 공짜 달력보다 자기가 직접 달력을 고르는 데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휴대전화 속엔 2020년 달력도…

종이보다 모니터가 익숙한 20~30대에게 달력은 이미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간지 오래다. 모임 약속을 정할 때도, 오늘 날짜를 확인할 때도 더 이상 벽에 걸린 달력을 찾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쏙 꺼내 버튼을 몇 개만 꾹꾹 누르면 달력이 작은 화면 가득 나타나고 마음만 먹으면 2020년까지 날짜를 검색할 수 있다. 손가락만 조금 더 놀리면 각종 메모와 알림벨까지 알아서 척척 해준다. 40~50대가 달력에 대해 느끼는 사회적인 상징성도 20~30대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젊은 세대에게 종이 달력은 기존의 달력 시장에서 생산해내는 전통적인 의미의 달력이라기 보다 다이어리나 노트, 볼펜 등 문구류에 가깝다. 전문 디자인 문구 브랜드가 뜨는 추세에 따라 달력도 이제는 자기 표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고 있다.

연말이 되면 대형 서점의 문구 코너나 디자인 문구류를 파는 상점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물론 손님은 대부분 20~30대 여성이다.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꾸미고 메모도 할 수 있는 다이어리나 달력을 사느라 분주하다. 이들의 입맛에 맞게 요즘 나오는 달력은 대부분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이런 달력을 내놓는 업체 역시 디자인 문구 업체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서체를 쓴 달력으로 사랑받고 있는 디자인 문구 제조업체 밀리미터밀리그램(mmmg)의 유해정 대리는 “달력에 나오는 숫자를 가장 깔끔하게 보이도록 디자인하고 세련된 색상을 선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며 “벽걸이형 달력도 있지만 사무실에서 쓸 수 있는 탁상용 달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동물 일러스트나 잔잔한 그림이 들어간 달력은 언제나 0순위다. 아름다운 고양이의 모습을 화려한 색깔로 그려낸 마리캣 벽걸이 달력과 탁상용 달력, ‘여자 그리는 작가’인 동양화가 육심원씨의 달력, 도로시 달력 등도 12월엔 찾는 손이 많아진다. 사진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뻔한 파리 에펠과 뉴욕 자유의 여신상 사진 같은 유명 도시 풍경이 아닌 일본의 한적한 골목길이나 카페 풍경 등을 담은 여행사진으로 만든 엽서형 달력도 인기다. 가격은 2천원에서 1만원대까지 다양하다.

달력을 뭐하러 매년 바꾸니?

달력이 종이 위에 숫자를 잘 써놓은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또 달력을 매년 새로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오산이다. 달력, 특히 겉으로만 봐서는 달력인지 짐작하기도 힘든 만년 달력은 이제 책상과 방을 빛내는 인테리어 소품이다. 레고 블록처럼 맞춰서 매달 달력을 조립하는 재미도 있는 블록형 만년 달력은 책상 위에 놓아두면 감각이 빛날 만한 소품이다. 축소판 야구장처럼 만들어 야구게임도 할 수 있는 야구장 달력, 역시 축소판 볼링장으로 만든 볼링 달력은 달력 그 이상이다. 1940~50년대 서양 카페에 걸려 있었을 법한 철제 소품을 만년 달력으로 만든 제품은 앤티크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딱 좋은 달력이다. 생활감성채널 텐바이텐(www.10x10.co.kr)의 마케팅팀 하수희 주임은 “독특한 디자인과 재미있는 기능까지 더해진 달력은 가격이 2만~3만원대로 조금 비싸도 꾸준히 나가는 편”이라며 “주 고객층인 20~30대 직장인 여성들은 세련되고 개성 있는 달력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스테디셀러는 명화 달력이다. 명화라고 걸어놓기에만 그럴듯한 그림은 아니다. 젊은 층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달력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반 고흐나 뭉크의 달력, 키스 해링 달력 등은 인기 만점이다. 벽에 걸어놓고 작은 갤러리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품은 달력에서 오려 액자로 만들기도 한다. 1월부터 12월까지 달력에 들어가는 그림을 직접 골라 달력으로 만들어주는 맞춤형 명화 달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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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www.nationalgallery.co.uk)는 각 월별로 명화를 선택하면 달력으로 제작해 우편 배송해준다. 내셔널갤러리에서 추천하는 60여 개의 작품에서 고를 수 있다. 가격은 2만원대로 특별한 자기만의 명화 달력을 원한다면 이용해볼 만한 서비스다.

유행 달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찍은 사진으로 달력을 제작한 맞춤형 달력이다. 디지털 카메라부터 휴대전화 카메라까지 온갖 종류의 카메라가 우리의 일상을 찍고 있다. 이렇게 찍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달력으로 제작하는 것이 바로 포토 맞춤달력이다. 디지털 카메라 보급률이 높은 만큼 포토 맞춤달력을 원하는 사람들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포토 맞춤달력 역시 기존의 달력 시장이 아닌 다지털 사진 인화 시장에서 소화되고 있다. 포토달력 제작업체 스마일캣(www.smilecat.com)의 심후남씨는 “포토 맞춤달력의 수요는 점점 늘어 올해는 지난해의 2배 정도”라며 “매일 500~1천 개의 포토 맞춤달력 제작 주문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고객층은 다양하다.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넣은 달력을 대량 주문하는 고등학생부터 여행 다녀온 사진과 손자 사진까지 달력으로 만들어 매일 보고 싶어하는 50대까지 포토 맞춤달력을 주문하고 있다.

연인끼리 ‘러브달력’도 인기

가장 잘나가는 포토 맞춤달력은 연인을 위한 ‘러브달력’이다. 연인의 애틋한 사진에다 연인들이 챙겨야 하는 수많은 기념일을 크게 표시할 수 있어 1년 내내 함께하고 싶어하는 연인에게 딱 좋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 위주의 포토 맞춤달력을 주로 선택한다. 1월에는 털옷을 입고 있는 귀여운 표정의 사진으로, 7월에는 시원하게 수박을 먹고 있는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달력이 된다. 주문도 어렵지 않다. 포토 맞춤달력 제작은 주로 온라인에서 하는데 사이트마다 맞춤 프로그램이 있어서 손쉽게 사진을 올리고 원하는 기능을 선택하면 된다. 가격은 1만5천원 정도.

날짜와 요일을 알려주는 기능 하나만으론 각종 디지털 기기에 밀려 살아남기 힘든 달력은 생존전략으로 디자인을 선택했다. 세련된 글자와 색상의 디자인은 달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또 옷걸이에 무거운 코트 하나 걸려 있듯이 딱딱한 벽에 외롭게 홀로 걸려 있던 달력은 과감하게 땅으로 내려왔다. 달력은 사무실 책상뿐 아니라 거실의 탁자나 장식장에 들어가도 좋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2007년 자기와 꼭 닮은 달력과 함께 1년치 계획을 세워보면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남성들 눈도 높아졌네

섹시한 여성 모델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한발짝 고급화한 취향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사춘기 시절 한 번쯤 찢어봤을 7월과 8월의 달력. 비키니 혹은 뽀얀 피부만 걸치고 있는 누나들이 진한 눈빛을 전하는 달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남성들의 관심사다. 여성의 취향이 디자인 쪽으로 두 발자국 진화했다면 남성의 취향도 고급화 쪽으로 한 발자국 정도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여성의 신체라는 관심사에는 일관성(!)이 있다.
여기에 가장 빠르게 발맞추는 곳은 역시 주류 회사다. 지난해 젊은 작가 김준의 여성 누드 문신 달력으로 화제를 모았던 하이트맥주는 올해 서양 여성 모델이 수영복을 입고 등장하는 흑백톤의 달력을 22만 부 제작하고 있다. 오비맥주도 여성의 신체를 예술성 있는 흑백톤으로 담은 달력 50만 부를 제작, 배포할 계획이다. 최근 달력 속 주인공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여성들은 레이싱 걸과 내레이터 모델이다. 특히 레이싱 걸 달력은 찾는 남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레이싱 걸 달력은 몇몇 레이싱 관련 전문 사이트에서 제작해 판매하거나 유명 레이싱 걸의 동호회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축구 관련 달력을 수집하는 젊은 층도 많다. 특히 최근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이 이 구단의 아시아판 달력 1월의 모델로 선정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벽걸이 달력과 탁상용 달력 2가지로 제작된 이 달력에는 박지성 외에도 호나우두와 루니, 퍼디낸드, 긱스, 사아, 솔샤르, 스콜스, 에인세, 네빌, 스미스, 판데르 사르가 모델로 등장한다. 남성들에게는 명품 자동차가 등장하는 달력도 인기다. 잘 빠진 스포츠카가 시원하게 달리는 모습을 담은 명품 자동차 달력은 특히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20~30대 남성들이 주 고객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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