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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장항갯벌은 살아 있습니다

등록 2006-12-07 00:00 수정 2020-05-03 04:24

서너 번 낫질에 기수우렁이·조개·개맛이 캐어 나오고 곳곳에 새똥이 어지러워…쌀보다 이문 많이 남는 김은 전국 총 시설의 8.8%, 누가 갯벌이 죽었다 말하는가

▣ 서천=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11월14일 서천 앞바다 장항갯벌에 부는 바람은 매서웠다. 여길욱 서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취재진을 송림 갯벌로 데려갔다. 새만금에서 불과 10여km 떨어진 곳. 백사장 너머에는 수십 마리의 청둥오리가 앉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갯벌을 팠다고요? 우리도 한번 파봅시다.”

지난 10월29일 노무현 대통령은 나소열 서천군수의 안내로 장항갯벌을 둘러봤다. 충남 지역 언론은 당시 노 대통령이 월포·옥남리 갯벌에 들어가 세 군데를 파보았고, 서천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조개도 없고 철새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금강유역환경청, 개발 부정 의견

하지만 여길욱 사무국장이 서너 번 낫질을 하니, 선홍색 갯지렁이가 흑갈색 갯벌을 밝히며 꿈틀거렸다. 1cm도 채 안 되는 우렁이들도 나왔다. “이게 기수우렁이예요. 여기 조개도 있고….” 직사각형의 조개 모양을 당기니, 길이 5cm의 ‘개맛’이 끌려나왔다. 그 옆으로 여기저기 새똥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장항갯벌 374만 평에는 군장국가산업단지 장항지구(장항산단) 건설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새만금처럼 갯벌을 매립해 새 땅을 만드는 공사다. 군장국가산업단지 사업은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서해안 시대’를 외치며 군산과 장항에서 동시 추진됐다. 군산지구는 12월 준공되지만, 장항지구에선 매립도 시작하지 못했다. 2004년부터 시작된 환경영향평가에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2006년 6월에 나온 환경영향평가서(3차 보완)를 보면, 금강유역환경청은 사업 시행 자체에 부정적인 의견을 숨기지 않았다.

금강 하구 토사가 서천·장항에 쌓여

“사업 지구의 갯벌 생태계는 주변 갯벌 생태계와 연계되어 있다. 갯벌 매립은 우수한 주변 생태계의 영향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추진돼야 한다면, 주변에 이미 조성됐거나 조성될 산업단지들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경제성과 타당성이 입증돼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검토 의견을 아직 내지 않은 상태다. 금강 하굿둑에서 ‘장항산단 즉시 착공’을 요구하며 사흘째 단식농성 중인 황배원 서천군의회 군의원은 11월29일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해양수산부가 일부러 환경영향평가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한풀이하듯 말을 꺼냈다.

“17년 동안 4명의 대통령이 나왔고, 지금까지 속아왔어요. 그동안 서천 인구는 산단 지정 당시 15만 명에서 지금 6만 명으로 줄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갯벌을 보존하겠다니요? 이미 뻘(갯벌)도 다 죽었어요.”

기원을 더듬어보자면, 장항갯벌 매립 논란은 금강 하굿둑에서 시작한다. 금강 하굿둑이 완공된 뒤, 서천의 어업이 내림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건 찬반 주민들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다. 여길욱 사무국장은 처음 피해받은 건 하굿둑 앞의 ‘새우깡 갯벌’이었다고 말했다.

“하굿둑 근처 갯벌이 꽃새우가 많이 잡히던 곳이었어요. 새우깡의 원료였죠. 물길이 막히면서 꽃새우가 없어졌어요.”

강물을 타고 내려온 영양염류가 하굿둑에 가로막혀 바다로 건너오지 못했고, 갯벌엔 마른 흙이 쌓이기 시작했다. 하굿둑에서 10여km 떨어진 곳에서 김 양식업을 하는 정원남(43)씨도 “하굿둑 건설 뒤 서천 김의 단맛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사이 강 건너 군산은 대단위 산업단지가 건설됐다. 금강 하구에는 해상도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단지에 건설된 외항에 토사가 쌓이는 걸 막기 위해서 금강 하구 유부도에 북쪽 도류제와 방파제가 건설됐다. 바닷길을 지키기 위해 토사를 퍼내는 데 한 해 10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토사들은 서천·장항 쪽에 쌓이기 시작했다. 황 의원은 “순전히 군산 때문에 서천의 어업이 궤멸됐으니, 이제는 장항산단으로 서천 경제를 일으켜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천의 어업은 과연 궤멸됐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오고 나서 불거진 건 이른바 ‘죽은 갯벌’ 논란이다. 갯벌 매립에 찬성하는 서천군청과 주민들은 장항갯벌이 이미 갯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서천 어민들은 “아직도 생산량이 풍족하다”고 반박한다. 박종열 서천군 경제진흥과장은 “산단 부지에는 김 양식지도 없고 패류도 나지 않는 등 경제성을 상실했다”며 “반면 장항산단 조성 때 생산유발 효과는 연간 2조6천억원”이라고 주장했다.

“갯벌 나가면 하루에 5만~6만원 번다”

서천군 수산물 통계를 보면, 최근 5년 동안 패류 생산량은 한 해에 적게는 367t, 많게는 1785t에 이르렀다. 이는 장항산단 부지(장항갯벌)를 포함한 서천군 전체의 생산량 추정치이지만, 어민들은 장항산단 부지에서도 패류가 잡힌다고 했다. 송림 백사장에서 만난 어민 송대교(60)씨는 “백합과 동죽, 실뱀장어가 많이 난다. 갯벌에 나가면 하루에 5만~6만원을 번다”고 말했다. 서천환경운동연합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옥남리의 정병소씨는 지난해 동죽·백합 등 패류 채취로 4300만원을 벌었고, 박성문씨는 실뱀장어와 꽃게, 대하를 잡아 올해 3~7월 3200만원을 번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장항갯벌 매립지에 자리잡은 서천수협(장항읍·마서면)은 81억원의 위탁판매액을 올렸고, 서면수협은 164억원을 올렸다. 서천군 관계자도 “금강 하굿둑과 유부도 북쪽 도류제, 방파제로 어업 생산량이 감소한 건 사실이지만, 죽은 갯벌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갯벌 매립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김 양식을 하는 어민들이다. 이들은 바다를 치고 들어온 거대한 공업단지가 조류를 바꿔 흉작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한다. 서천 김 양식 시설은 전국 총 시설량의 8.8%. 1981년부터 김 양식업을 해온 나일균(50)씨는 ‘김농사’가 ‘쌀농사’보다 훨씬 이문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육지는 논 한 마지기(200평)에 쌀 다섯 가마가 나와요. 여기서는 김 한 책(나비 1.8m×길이 40m)이면 50만원이 나와요. 100책이면 5천만원이고, 200책이면 1억원이죠. 서천 김은 금강의 밀물과 서해 바닷물이 잘 어울려 맛이 좋거든요.”

나소열 서천군수는 11월28일 ‘장항산단 대정부 투쟁 100인 결사대’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충남 16개 기초자치단체장, 서천과 충남의 지역사회단체들이 투쟁에 결합하고, 지역 언론이 ‘지역 차별론’을 내세우는 등 새만금처럼 지역 대 중앙, 개발 대 보전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반면 서천군 3천여 명의 어민들은 생존권을 내세워 매립 반대를 주장하고 있고, 전국 25개 환경단체는 11월30일 서울 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갯벌 매립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요구했다.

금강 하굿둑으로 어려워진 서천 경제를 살리는 해법은 이렇게 다르다. 한쪽은 갯벌을 매립해 공업도시의 꿈을 꾸고 있고, 다른 한쪽은 갯벌 매립의 역사를 성찰하는 게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한다.

새만금을 통과한 뒤 던져진 질문

장항갯벌은 1980년대 개발주의 시대의 정부가 남긴 거추장스러운 유산이다. 남은 건 시시각각 갯벌 사람들의 목을 죄어오는 과거의 약속이고, 늘어난 건 17년 동안 피폐해진 지역 경제를 목도한 주민들의 피해의식이다. 서천군 어민회장인 이우봉(49)씨는 “지난 4월 새만금이 막힌 뒤, 조류와 유속이 바뀌고 있다”며 “어디에 그물을 쳐야 할지 헛갈린다”고 말했다. 과거의 약속을 지키는 게 현명할까, 어기는 게 현명할까. 새만금을 통과한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질문이다.



[인터뷰/ 나소열 서천군수]“군산 산업단지의 인질이 될 순 없어”

개발 촉구하며 단식농성 들어간 나소열 서천군수




나소열 서천군수는 11월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단식농성에 들어가기 직전의 나 군수를 만났다.
일부에선 장항갯벌이 제2의 새만금이 되는 거 아니냐고 우려한다.
=새만금과 다르다. 새만금은 두 강의 하구를 막는 천문학적 규모의 사업이다. 하지만 장항산단은 374만 평의 소규모다. 원래 2730만 평이었다가 네 차례에 걸쳐 축소됐다. 사업 지구 안 갯벌에선 아무것도 못한다. 토사가 쌓여 어업 활동이 불가능하다. 장항갯벌 주변으로 김 양식업 피해를 우려하는 어민들이 있지만, 어민 보상은 이미 1994년에 이뤄졌다.
어업 활동이 완전히 불가능한 건가.
=군산 국가산업단지 건설 뒤, 유부도 북쪽 도류제와 방파제가 설치됐다. 그 뒤 토사가 장항 쪽에 쌓이고 있다. 개야수로(장항과 개야도 사이의 바닷길)를 확보하기 위해 장항산단의 면적도 축소했다. 나는 2002년에 건설교통부에 찾아가 북쪽 도류제와 방파제를 철거해서 어업을 살리든지, 아니면 장항산단을 조속히 추진하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하자고 했다. 장항산단이 군산 산업단지의 인질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철새들의 천혜의 서식처가 아닌가. 생태계에 대한 피해는 불가피하지 않나.
=철새들은 대부분 금강 하굿둑 상류에 머문다. 희귀종인 검은머리물떼새는 장항갯벌에 오기도 하지만, 실제 서식지는 군산 앞바다에 있는 유부도다. 유부도엔 북쪽 도류제와 방파제가 설치된 뒤 100만 평의 갯벌이 생기고 있다. 우리도 친환경적 개발을 하자는 입장이다. 유부도를 야생동식물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토지공사 등과 함께 최소 50억원 이상의 환경보호기금을 마련해 갯벌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하자는 것이다.




18년 새 5분의 1이 사라졌다

208㎢의 새만금 등 개발 압력으로 매립

갯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1987년 3205㎢(추정치)에 달했던 서·남해안 갯벌 면적은 2005년 2550㎢로 줄었다. 무려 5분의 1이 넘게 줄어든 것이다. 18년 사이 줄어든 갯벌 중 가장 큰 곳은 새만금 지구(208㎢)다. 경기 시화지구(180㎢), 영종도 신공항(45㎢), 서산(77㎢) 등도 모두 개발 압력에 따라 없어지거나 매립됐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서·남해안의 보전·관리 가치가 있는 69개 갯벌의 개발 압력을 조사했다. 인구와 산업단지 입지 유무 등을 평가한 개발압력지표(P)와 연안수질과 퇴적물 중금속, 생물다양성 등을 평가한 갯벌상태지표(S), 보호지역 지정 여부, 환경기초시설 등을 평가한 대응지표(R)로 점수를 매겨 조사했다. 이 조사의 종합 평점에서 장항갯벌은 69개 갯벌 중 61위를 기록했다.
일부 지역 언론은 이 수치를 들어 장항갯벌의 보전 상태가 나쁜 것으로 전했다. 69개 갯벌 가운데 61위에 지나지 않으므로 보전 가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정석 해양수산부 해양보전과장은 “그런 주장은 이 조사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갯벌에 대한 개발 압력이 관리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사회경제적인 여건을 지수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양수 해양정책발전팀장은 “장항갯벌이 그만큼 개발 압력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라며 “장항갯벌 환경을 평가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조사에서 1위는 덕적군도가, 2위는 백령도·연평도·함평만·사량도 등 외지고 청정한 지역이 차지했다. 반면 69위는 산업시설이 인접한 진해만 갯벌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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