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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은 왜 울산으로 갔나

등록 2006-12-07 00:00 수정 2020-05-03 04:24

울산 현대차 노조 찾아 ‘사회적 연대 방안’에 대한 뜻모은 민노당…낙관도 비관도 못하던 상황에서 가능성은 확인, 자발성·실천력이 관건

▣ 울산=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11월27일 민주노동당은 개성과 울산, 두 도시로 향했다. 문성현 대표 등 당 지도부는 북한의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당 출입기자단 20여 명이 따라갈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당이 ‘간첩 접촉 의혹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는 와중에 방북해 “또 무슨 사고를 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동행한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울산행은 초라했다. 권영길 원내대표와 오건호 당 정책전문위원의 울산 방문은 달랑 기자만 따라갈 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비오는 날 원내대표가 그것도 당으로서는 상징적인 도시이자 가장 든든한 지지기반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찾아간 나름의 까닭이 있었다.

“진보적 실험을 해보겠다”

지난 11월10일 권영길 원내대표는 비교섭단체(의석 수 20인 미만) 대표 연설에서 ‘사회적 연대 방안’을 제안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 634호 67쪽 참조)은 이렇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노후 사각지대로 방치될 저소득 계층에게 사회적 연대 방식을 통해 보험료를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 423만 명과 농어민, 기초수급자, 차상위 계층 221만 명 등 모두 644만 명에게 5년간 절반의 연금 보험료를 지원하자는 것이다.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 지원에 필요한 8조5천억원 가운데 3조원을 사업장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미래 급여 인하를 통해 마련하겠다. 이러한 노동계의 노력이 가시화되면, 국가와 고소득층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 노동계의 뜻을 모으겠다.” 당이 울산에 내려간 이유는 연설의 맨 마지막 문장이 잘 설명해준다.

내용이 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내고 싶은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동안 자본과 국가에 대한 일면적 요구에서 이제는 참여를 기초로 한 요구를 통해 새로운 진보적 실험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위기의식과 진보적 상상력의 결합이 만들어낸 실험이다. 오건호 전문위원은 현대차 노동조합 상임집행위(상집)와 교육위원회 위원들을 대상으로 “노동운동의 사회공공적 활동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선언 혹은 요구 수준을 넘는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사업계획이 필요하다”며 “상대방(국가·자본·고소득층)에 대한 요구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회연대적 실천방안이 포함되어야 진정성을 지닐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진보정당과 그 핵심적 지지기반인 노동운동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신뢰를 얻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연금에서 매달 최고 3200원씩 덜기?

사회 연대 전략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지난 8월9일 당 의원단 워크숍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사업을 처음으로 기획한 뒤 의원단 총회와 당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하나하나 디딤돌을 쌓고 있다. 10월13일 한국노총과 첫 정책 실무협의를 한 뒤 보건의료노조·IT연맹·금융노조와의 정책 실무협의, 사무금융연맹 상집회의·공공연맹 중집회의·언론노조 사무처·의료연대노조 중집·민주노총 중집·서비스연맹 중앙위와 잇따라 설명회를 가졌다. 현대차도 그 대상 가운데 하나다. 당이 부지런히 노조·연맹·노총을 찾는 것은 이들이 사회적 연대 방안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고소득 노동자의 밥그릇을 조금 덜어 저소득 노동자의 밥그릇을 채우자는 것이기 때문에, 고소득 노동자로부터 자발적 양보를 얻어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월소득 117만원 이상의 노동자 약 600만 명이 자신의 미래 연금액에서 월 1700~3200원을 덜 받는 데 동의해야 사회적 연대가 가능하다. 사회적 연대를 위한 비용 분담의 주체가 될 현장 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우리도 사각지대를 돕는 건 동의하는데… 월 91만원 이하의 저소득 노동자라고 하는 423만 명 가운데 진짜 연금을 낼 능력이 없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냐? 먼저 소득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김호규 현대차 노동조합 교육위원)

“사용자나 정부의 부담을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김형수 〃)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금을 떠올리면 화부터 내는 일반 대중이나 조합원들을 상대로 설득해나가기가 쉽지 않을 거다.”(공상곤 〃)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재원 마련 등 구체적 대책 없이 몇 년 동안 두루뭉술하게 우려먹었던 부유세가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냐”(김종진 〃 대표)

“대기업 노동자들의 약속이 관건”

권영길 대표와 오건호 전문위원이 1시간가량의 설명을 끝내자, 교육위원들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들을 쏟아냈다. 현대차 노조원들을 설득하는 위치에 있는 교육위원들이 어떤 입장을 갖는지는 무척 중요하다. ‘저소득 비정규 노동자 및 영세 지역가입자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사업’에 대한 첫 설명회 자리인 탓에, 노조의 처지에선 이해가 중심이었지 적극적인 지지와 동의를 표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금 재정 및 수급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신, 저소득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소득 신고 실태에 대한 불신 등 본래부터 존재했던 국민연금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당의 제안에 선뜻 응할 수 없다는 망설임들이 엿보였다. 또 사안의 성격상 아직 숫자가 머릿속에 맴돌 뿐이지 10년, 20년 뒤가 될 연금 문제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운동 진영의 긴박한 현안과 과제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도 느껴졌다.

그래도 오건호 전문위원이 설명회 전날 “어떻게 반응할지 전혀 알 수 없다”며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던 것에 견주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게 당의 태도다. “못하겠다“ “안 된다”는 부정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노조와 당이 윈윈할 수 있는 의제인 점도 다행이다. 이용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노동위원장(현대차노조 교육위원)는 “일반 조합원들과 대의원들은 모르겠지만, 상집 및 교육위 등 노조 간부들은 대기업 노조의 고립을 고민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운동을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당의 제안을 노조의 운동 방식 전환을 위한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상황이 유별난 건 아니다. 다른 사업장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당은 국민연금 보험료 사업에 대한 노동계의 설득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나면 적극적인 연맹이나 노조를 주체로 내세워 노동계의 양보와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연대를 국민에게 제안하고 관련 법률을 당을 통해 국회에 제출하고 입법화하도록 할 방침이다.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실장은 “대기업 노동자들이 먼저 약속을 해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대중의 평가는 사업의 성패에 달려 있다. 당이 과연 실천력을 갖고 사업을 추진해나가고 노동계가 자발적으로 참여에 나설지 여전히 바깥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주노동당의 제안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사회보장제도의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분담하겠다는 면에서 획기적이지만, 연금 제도에 대한 알레르기적 불신과 연금을 통한 노후소득 재분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적은 상황에서 사업의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물론 성공한다면 노동운동의 방식이 요구에서 참여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으로서도 이제껏 단순히 명분만 쥐면 충분했던 군소정당 사업 방식의 한계에서 벗어나 실천과 대안으로 접어드는 새로운 경험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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