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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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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갯벌 숨통을 끊어라, 숨통을…

등록 2006-12-07 00:00 수정 2020-05-03 04:24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두 달도 안 되어 적조 현상 나타난 새만금을 잊었는가…장항 산단 둘러싸고 환경 논의는 실종된 채 군수·도지사 ‘뗑깡’만 어지럽네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우리나라의 큰 강들은 대부분 서해로 유입되는데 만조 때에 강을 거슬러 올라간 조수가 간조 때에 급히 빠져나가면서 퇴적물을 먼 바다까지 끌고 내려가 풀어놓는다. 그래서 서해안의 강 하구에는 삼각주가 나타나지 않고 서해 연안 전체에 걸쳐 갯벌이 넓게 발달했다.

방조제 안쪽은 부영양화, 바다는 사막화

이처럼 천혜의 자연조건이 낳은 우리의 서해 갯벌은 육지로부터 영양염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며 지구상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었다. 이로 인해 어족자원이 풍부해 한반도에서는 좁은 땅이지만 많은 인구가 살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갯벌을 매립하는 법적 근거는 공유수면매립법이다. 이 법은 1917년 일제에 의해 처음 시행됐다. 일제는 이 법을 근거로 서해안에서 간척사업을 벌여 1917년부터 1938년까지 178곳에서 405.4㎢의 갯벌을 매립했다. 이로 인해 염생식물이 자라는 조간대 상부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다. 그런데 해방 이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1962년에 이 법이 부활하며 더 큰 규모로 갯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60년대에 부안 계화도 간척사업에서 3968ha의 갯벌이 사라졌으며 70년대에 와서는 큰 강 하구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안성천, 삽교천, 영산강, 낙동강, 금강 하구가 둑으로 막혀 강의 생태적 기능을 상실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전북의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를 33km 방조제로 멀리 둘러 막아버린 것이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방조제는 강이 육지에서 날라온 영양염류를 바다로 배출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로 인해 방조제 안쪽은 부영양화로 썩어가고 방조제 밖의 바다는 육지로부터 바다생물의 먹이를 공급받지 못해 사막화가 진행된다.

최종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두 달도 안 된 지난 5월부터 새만금 방조제 안에서 적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8월에는 적조생물의 사체로 인해 발생한 거품이 배수갑문을 통해 외해로 빠져나와 변산해수욕장으로 밀려들면서 여름철 해수욕장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렸다.

이미 전북의 수산물 생산량은 방조제 공사를 시작하던 1991년 무렵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터이지만, 새만금 최종 물막이 공사가 끝나자 더욱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방조제 밖의 송포나 격포항에는 기름값도 안 나와 아예 출어를 포기한 배들이 포구를 가득 메운다. 위도의 멸치잡이 어선들은 예전에는 썰물이나 밀물 가운데 한 방향의 조류를 향해 그물을 놓았는데, 조류가 약해진 지금은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 자동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뺑뺑이 그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마저 배수갑문을 불규칙하게 여닫는 바람에 그물이 방향 전환을 하다 엉키기 일쑤라 한다.

이사하야 간척산업과 ‘철의 삼각형’

서해 어장의 어족자원 고갈은 일본 규슈의 아리아케해를 보면 예측할 수 있다. 규슈 지방의 구마모토,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현의 4개 현이 둘러싸며 큰 만을 이루고 있는 아리아케해는 깊이가 평균 30m를 넘지 않으며, 조수간만의 차도 5m가 넘어 큰 편이다. 이 바다 서쪽에 이사하야만이 있다. 이 작은 만에는 미세한 입자의 ‘펄 갯벌’이 발달했는데 아리아케해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조류가 지코쿠강 등 크고 작은 강들이 날라온 미세한 뻘과 영양염류를 몰고 들어와 일본 최대의 풍요로운 갯벌을 이루었다.

그런데 1997년 이사하야만을 가로지르는 7km의 방조제가 완공됐다. 이로 인해 유속이 느려지고 조류의 변화를 가져와 키조개와 바지락이 집단 폐사하고 매년 적조가 발생해 김양식의 흉작이 이어졌다. 현재 이사하야만에서 어패류는 멸절해 방조제 공사 이후 13년째 휴어 상태이며, 그 여파는 아리아케해 전역으로 퍼져나가 아리아케해의 수산물 생산량은 예전의 10분의 1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이제 전라북도에는 바다가 없다. ‘바닷물’만 있을 뿐이다. 금강 하구둑에 이어 방조제가 전라북도 북쪽 해안 3분의 2를 수많은 포구들과 함께 봉쇄해버렸고 남쪽에서는 영광 원전의 온배수가 밀고 올라온다. 이사하야만이 죽자 그 영향이 아리아케해 전역에 미쳤듯, 서해 갯벌의 10%를 차지하는 새만금 갯벌의 죽음은 서해 전역에서 어획량 감소를 가져올 것이다. 단순히 어획량만 감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구 제작업체, 어시장의 상인들, 수산물가공업, 횟집, 관광숙박업소 등에서 유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왜 이러한 간척사업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가.

아리아케해의 수산업을 궤멸시킨 이사하야 간척사업 추진을 두고 반대 여론이 높아갈 무렵 일본의 은 2002년 11월6일치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을 둘러싸고, 농수성이 사업 계획을 결정한 1986년부터 2001년까지의 16년 동안, 공사를 수주한 적어도 48개사가 자민당 나가사키현련에 합계 7억2200만엔을 헌금하고 있었다. 뿌리 깊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이 사업은, 정계·관료집단·건설업계의 ‘철의 삼각형’이 추진하는 농업 토목의 전형이라고 말해진다. 정치 헌금이나 낙하산 인사 등의 실태를 더듬으면 그 관계의 깊이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후반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중동에 진출해 있던 건설업체들이 대거 철수하게 되자, 건설업계는 건설 경기를 활성화할 ‘공사판’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한강종합개발’을 필두로 시화만, 남양만에서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됐다. 굵직한 건설회사들이 공사를 수주했다. 서해 갯벌의 30%가 1980년 이후 이러한 건설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사라졌다. 이때 갯벌을 매립해 생긴 땅들이 지금은 서해안 도처에서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선거공약으로 태어났다. 정치인들은 ‘새만금=전북 발전’을 내세우며 표심 잡기에만 몰두했다. 지금도 토사 퇴적으로 인한 농경지 침수나 수질오염 문제는 외면한 채 간척한 땅의 용도를 두고 그럴싸한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다. 이는 전북 도민들을 향한 ‘집단 최면’ 걸기이며, 황우석의 ‘줄기세포 사태’와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

돌 납품자 외에 누가 득을 보는가

새만금 일대에서 재앙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와 똑같은 일이 장항산단 추진을 둘러싸고 충남 서천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건교부 산하 토지공사가 농림부 산하 농촌공사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장항 갯벌을 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타당성과 실효성이 있는지의 여부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채, 중앙정부를 향한 군수와 도지사의 ‘뗑깡’과 격한 정치적 선전 구호가 어지럽다. 갯벌에 의지해 사는 어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지역에서 이득을 보는 세력은 군수에게서 채석장 허가를 얻어 산을 헐어 건설업자에게 돌을 납품하는 사람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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