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전투병력 줄이고 치안인력 군사 자문 및 훈련 강화하는 계획 유력…이라크 스터디 그룹도 ‘안정 우선’ 전략‘철군’ 카드 꺼낼 가능성은 없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참극이 일상인 바그다드의 기준으로도 ‘최악’이다. 11월23일 바그다드 외곽 시아파 집단거주 지역인 사드르시티에서 벌어진 5차례 차량폭탄 공격과 잇달아 날아든 박격포탄으로 적어도 202명이 숨지고 252명이 다쳤다고 <ap>이 전했다. 시아파 거주지에서 벌어진 참극은 수니파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졌고, 바그다드엔 또다시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앞서 유엔은 지난 10월에만 이라크 전역에서 각종 유혈 충돌로 인한 사망자가 3709명에 이른다는 암울한 보고서를 내놨다.
252명 사망, 사드르시티의 참극
하지만 뾰족수는 없다. 이라크 정책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돼버린 중간선거 직후 조지 부시 대통령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하는 등 ‘변화’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선택 가능한 ‘대안’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뚜렷한 돌파구를 발견하지 못하는 건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리 해밀턴 전 하원의원이 이끌고 있는 ‘이라크 스터디 그룹’(ISG)도 마찬가지다.
는 11월20일 “미 국방부가 이라크 상황 타개를 위해 3가지 정책대안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3가지 대안은 각각 △병력 증강(Go Big) △전면 철수(Go Home) △장기전(Go Long) 정책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병력 증강’ 정책은 이라크 현지에서 급증하는 종파분쟁과 저항세력의 공세를 끊고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지상군 병력을 대폭 증강 배치하는 게 뼈대다. 이를 위해선 미군은 물론 이라크 정규군과 경찰병력까지 많게는 수십만 병력이 추가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군이 이미 오래전부터 병력 부족 사태에 허덕이고 있으며, 이라크 치안인력은 여전히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책대안은 검토 과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대안으로 검토된 것은 전면 철수론이다. 현재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14만여 미군 병력을 단기간에 신속하게 철군시키는 게 핵심으로, 칼 레빈 상원 국방위원장 내정자가 주장하는 바와 일치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군 지휘부에서 손쉽게 묵살됐다고 는 전했다. 미군 철수가 곧장 이라크를 핏빛 낭자한 전면 내전으로 몰아갈 것이란 지적 때문이다. 일부에선 “치안 공백을 틈타 다수 시아파가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소수 수니파에 대한 인종청소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단기적으로 증강하는 게 핵심
결국 세 번째 대안이 가장 유력하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른바 ‘장기전’ 전략이다. 장기적으로 미군 전투병력을 줄이는 대신 이라크 치안인력에 대한 군사 자문 및 훈련을 강화한다는 계획이지만, 단기적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을 2만에서 3만 명까지 증강 배치하는 게 핵심이다. 는 이를 두고 “종파 간 폭력사태를 뿌리 뽑고, 이라크 정부에 미군이 오랜 기간 곁에 있을 것이란 확신을 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병력 증강’은 단기간에 그쳐야 하며, ‘장기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6만 명가량의 병력 감축이 곧바로 뒤따라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만약 이라크인들이 단기적인 병력 증강이 장기적으론 미군이 발을 빼는 쪽으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민주당이 주도할 새 의회가 이를 “기존 정책을 고수하기 위한 위장전술”이라고 비난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이라크에서 유혈사태가 급증할 때마다 일시적 병력 증강 배치와 함께 이라크 치안인력 집중 양성론을 들먹여온 게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라크 스터디 그룹이 12월 중에 내놓을 보고서에서도 이와 비슷한 권고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영국 는 11월22일치에서 “이라크 스터디 그룹도 ‘장기전’과 유사한 형태의 ‘안정 우선’ 정책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이라크 스터디 그룹은 저항세력과의 전투에 집중하는 대신 이라크 치안인력 양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바그다드 치안확보 노력과 함께 이란·시리아 등 이웃나라가 이라크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력 증강 규모가 너무 작고, 이미 시기상 늦어버렸다. 더구나 군사전략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 압력 때문에 나온 정책에 불과하다.” 할런 윌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위원은 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는) 작전상 필요에 따른 결정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급박성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우선 결정부터 내리고 그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겠다는 발상으로, 이라크 침공 결정을 내린 과정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부시 대통령은 아직 ‘결심’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철군’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중간선거 이후에는 그는 ‘승리 없는 후퇴는 없다’는 말을 되뇌고 있다. 상하 양원을 민주당이 확보했다고 해도, 실제 미국의 정책방향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부시 대통령이라는 점엔 변화가 없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일시적 증강배치는 선거에서 참패한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이 정치적으로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줄 테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게 문제다. 2008년 대선전이 본격 시작되기 전까지 이미 ‘레임덕’이 돼버린 부시 대통령에겐 길어야 6개월에서 1년 남짓이 남았을 뿐이다.
“패배로 인한 상처에 대비하라”
이보 달더 브루킹스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중간선거가 공화당의 참패로 끝난 직후인 지난 11월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유권자들이 요구한 이라크 정책 변화가 나오려면, 부시 대통령이 지난 6년 동안 결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온 2가지 사항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사항은 럼즈펠드 장관 해임으로, 달더 연구위원이 글을 올린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현실이 됐다.
두 번째는 이라크 정책 전면 개편이다. 달더 연구위원은 “일부에선 승리를 위해 병력 증파를 말할 테지만, 내전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느 한 쪽을 택하는 것뿐”이라며 “이제 미국의 이라크 정책 목표는 승리가 될 수 없으며, 다만 패배로 인한 상처를 최소화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지적이 아니어도, 2007년 하반기에도 이라크 상황에 변화가 없다면 미국의 선택지는 결국 하나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그게 뭔지는 부시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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