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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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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를 살린 바다 바람

등록 2006-11-30 00:00 수정 2020-05-03 04:24

세계 최대 해상 풍력단지 ‘호른스 레우’ 상공에서 본 초대형 풍차 행렬…덴마크 전체 전력의 23%를 육지와 바다의 5277개 풍력 터빈이 해결

▣ 에스비에르(덴마크)=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오래전부터 바다는 에너지의 보고로 주목받았다. 거대 정유회사는 시추봉을 심해에 꽂으려 안간힘을 쓰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것이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적 재앙을 품은 것이라면 거친 바다에서 쉼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바람개비는 인류를 향한 희망의 날갯짓이라 하겠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떠나 바람개비의 놀라운 현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서해 연안의 에스비에르를 향하는 도로 주변에는 드넓은 지평선 사이로 바람개비가 치솟아 있었다.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한 전원주택은 한 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육지의 바람개비 사이를 4시간 이상 버스로 이동한 끝에 에스비에르 공항에 도착했다.

애당초 선박으로 해상 풍력단지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나운 파도로 인해 뱃길을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을 떠나기 직전에 헬기로 접근하기로 일정을 바꾸었다. 일행을 태운 헬기가 에스비에르 공항을 이륙해 15분여 동안 대서양을 17km쯤 날았을 때, 앞자리에 앉은 베스타스 해상풍력의 헨리크 퓌안보 판매주임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풍력발전기가 보인다”고 했다. 구름 낀 날씨인지라 형체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람개비 몇 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500m 상공을 비행하던 헬기가 고도를 차츰 낮추자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도열해 일행을 맞이하는 풍경이 연출됐다.

풍력의 가능성 확신한 베스타스사의 도전

세계 최대 규모로 지난 2002년 건립된 해상 풍력단지 ‘호른스 레우’(Horns Rev). 바다에 세워진 바람개비 농장에는 100m 높이의 초대형 풍차 80기가 560m 간격으로 한 줄에 8기씩 열 줄로 늘어서 있었다. 지상 400m 높이를 선회하는 헬기 안에서도 바람개비 농장을 한눈에 바라볼 수는 없었다. 무려 20㎢에 걸쳐 단지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간혹 지구의 더위를 식히는 날갯짓을 멈추고 수리를 기다리는 바람개비도 보였다. 이 단지를 조성한 베스타스사의 헨리크 퓌안보는 “2002년 1차 단지를 완공한 데 이어 2009년에 2차 단지를 조성해 35㎢로 확대될 예정이다. 덴마크 소비 전력의 2% 이상을 호른스 레우 단지에서 충당할 것이다”고 말했다.

요즘 풍력은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구정책연구소(EPI)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풍력발전 생산 용량은 5만9100MW에 이른다. 지난해 풍력터빈 세계 시장은 1만1407MW로 집계됐는데 덴마크의 베스타스가 27.9%로 선두를 유지했고, 미국의 지이윈드(GE Wind)가 17.7%, 독일의 에너콘(Enercon)사가 13.2%로 뒤를 이었다.

풍력발전은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평균 29%의 성장률을 보여 가장 성장률이 높은 재생 가능 에너지원으로 자리잡았다. 이미 덴마크는 전체 전력의 23%를 5277개의 터빈에서 나오는 3136MW로 충당하며, 2050년 화석 연료 ‘0’를 향하고 있다.

이렇게 덴마크가 풍력 대국으로 성장한 데는 베스타스사의 구실이 절대적이었다. 베스타스사는 한 세기 전에 설립돼 일상용품과 농기구 등을 생산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풍력발전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풍력 터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급한 풍력 터빈은 55kW급(V15)으로 연간 217MWh의 전력을 생산했는데, 지난해 3MW급(V90) 터빈 101기를 포함해 모두 3185MW를 보급했다. 지금까지 베스타스가 판매한 터빈의 용량은 2만MW 이상으로 추산된다. 덴마크의 외진 시골도시에 자리잡은 회사가 석유 중독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하며 세계 최대의 풍력발전 회사로 성장한 셈이다.

풍력발전 원가 20년새 10분의 1로 줄어

올해 1월 베스타스사는 해상풍력을 전담하는 부서를 독립법인으로 출범시켰다. 바다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 풍력단지는 지난 2000년 북해에 완전히 노출된 2MW급 터빈 2대의 블리스 풍력단지가 들어서면서 본격화됐다. 이전까지는 해협이나 내항에 건설된 유사 해상 풍력단지만 있었을 뿐이다.

그 뒤 해상 풍력단지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스코티시파워사는 지난 10월9일 140개의 터빈으로 322MW의 전력을 생산할 화이트리 풍력단지 조성을 착수했다. 앞으로 3년에 걸쳐 3억파운드(약 5800억원)를 투자해 단지를 완공하면 2만여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바다에 거대한 바람개비 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유럽 각국이 해상 풍력발전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까닭은 풍부한 부지와 자원에 있다. 해상은 내륙에 견줘 풍속이 20%가량 센 편이어서 70%나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장애물이 없고 바다 표면의 거친 정도가 낮아 바람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문제는 건설 비용이 육지에 견줘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것이다. 베스타스 해상풍력의 피터 브룬 국제협력 부사장은 “해류나 수심, 조수간만의 차이 등을 고려해 임시 구조물을 세워 2~5년가량 데이터를 확보하고 바다 밑을 뚫고 들어가 토양 분석도 해야 한다. 해저에서부터 전력 연결망을 확보하는 데도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무리 해상 풍력발전 단지 조성에 비용이 많이 들어도 기존 에너지원보다는 유리하다. 초기에 풍력발전의 경제성은 화력발전이나 원자력에 견줘 낮았다. 하지만 20여 년 동안 터빈의 크기와 회전자 날개의 대형화 등 기술개발이 급속하게 이뤄져 경제성을 의심하기 어렵게 됐다. 1980년대 중반 풍력발전의 원가는 kh당 350원을 웃돌았다. 그런데 요즘 효율이 높은 풍력 단지의 kh당 원가는 35원가량이다. 입지 조건에 따라 원자력의 발전 원가를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여기에 유럽연합이 이산화탄소 1t에 30유로로 정한 탄소세 등 환경 비용을 더하면 풍력발전의 경제성은 기존 에너지원을 따라잡고도 남는다. 현재 호른스 레우 풍력단지에서 생산하는 전력은 에스비에르 인근의 15만 가구에 공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연간 53만5천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이산화황(SO2, 991t), 산화질소(NO, 925t) 등의 배출도 막는다. 물론 해상에서 풍력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할 때도 이산화탄소와 이산화황 등이 나온다. 하지만 1kWh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19g, 이산화황 0.014g으로 화석 연료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풍력발전기 생산·운송·설치 등의 과정에서 들어간 에너지는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 터빈의 경우 작동 3~4개월이면 상쇄된다.

제주도·부산의 바닷바람에도 기대

국내에서도 바닷바람을 이용한 해상 풍력단지 조성사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지난 6월부터 3년 동안 제주도·부산·서남해안 연안 등지에 대한 해상풍력 건설 여건과 사업성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만일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지자체와 함께 산·학·연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규모 해상 풍력단지 건설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베스타스사의 한국행도 잦아지고 있다. 베스타스 해상풍력의 안데르 옌손 사장은 “바람이 신뢰할 만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석유가 나오지 않는 나라들도 풍력을 개발하면 에너지 안보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도 풍부한 바닷바람을 얼마든지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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