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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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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에 새집 붓기

등록 2006-11-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주택보급률 105.9% vs 자가점유율 55.6%, 소유구조의 끝없는 양극화 …헐거운 세제·저금리 기조가 버티는 한 공급 확대되도 가진 자들만 폭식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11월15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실에서 재미난 주택 통계를 하나 내놓았다. 1990~2005년까지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분석한 이 통계는 우리 사회의 집 문제의 현주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분석에 인용된 통계청의 인구주택조사에서 2005년 현재 전국의 주택 수는 1322만3천 채. 1990년의 735만7천 채에 견줘 15년 동안 재건축·재개발 물량을 뺀 신규 공급 주택 수가 586만 채임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주택보급률(주택 수/가구 수)은 1990년 72.4%에서 2005년 105.9%로 크게 높아졌다.

심 의원실의 손낙구 보좌관은 이 수치와 자가점유율을 비교해보았다. 새로 지어지는 주택이 누구 손으로 넘어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통계청 인구주택조사는 자기 집에 살고 있는지(자가 점유), 전·월세인지를 조사하는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분석 기간 중 자가주택 점유율은 전체 가구의 49.9%에서 55.6%로 약간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주택보급률이 33.5%포인트나 뛴 반면, 자가 점유율은 5.7%포인트 증가하는 데 머문 것이다. 이는 새로 지은 주택의 상당수가 이미 집을 소유한 이들 손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추가 분석 결과, 새로 지어진 주택 586만 채 가운데 주택 보유자가 매입한 비중이 절반 가까운 46.1%(270만 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대 ‘집부자’ 1인당 155채 소유

서울은 더 심했다. 15년 동안 새로 지어진 87만 채의 절반을 웃도는 46만 채(53.4%)가 주택 보유자에게 팔렸다. 경기도 역시 같은 기간 새로 공급된 171만여 채 가운데 무주택자에게 돌아간 것은 59.2%에 지나지 않았다. 집을 자꾸 지어도 무주택 서민층의 주거불안 문제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택의 소유 편중 실태는 지난해 ‘8·31 대책’을 앞두고 나온 행정자치부 자료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상위 10대 집부자의 주택 보유 실태가 이때 나왔고, 1위가 무려 1083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화제를 뿌렸다. 심상정 의원실은 여기서 더 나아가 행정자치부 자료를 통해 상위 100위까지, 수도권 지역의 경우 시·군·구별 소유 실태를 파악했다. 이 자료를 보면, 100대 집부자가 소유한 주택은 모두 1만5464채로 1인당 155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0채 이상 집을 소유한 이는 모두 37명으로 이들이 소유한 집은 총 1만725채였다. 이들 집부자 중에는 임대사업자가 상당수 끼어 있고, 일부는 미분양 주택을 떠안은 건설업자여서 한번 걸러서 볼 통계라는 지적도 있지만, 소유 편중 실태의 일단은 엿볼 수 있다.

소유 편중은 집값 폭등의 진원지로 꼽히는 지역일수록 더 심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2005년 8월 현재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면서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6만9529가구 가운데 1만5167가구(21.8%)가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 가구였다. 이는 수도권의 56개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서울시 평균 다주택 가구 비율(10.3%)의 2배를 웃도는 비중이다. 경기도에선 집값 폭등 지역의 하나로 꼽히는 용인시가 다주택 가구 비율이 13.1%로 가장 높았다. 부동산 시장의 불안과 주택 소유의 편중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유세 실효 세율은 0.2% 수준

집을 짓는 족족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이들 손으로 대부분 떨어지는 현상의 뿌리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집부자 쪽에서 봤을 때 주택만큼 좋은 ‘돈벌이’ 수단이 없다는 제도적 환경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 양극화로 무주택 서민층은 집을 살 여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을 돈 굴리기 수단으로 삼게 하는 매력적인 유인장치(인센티브)는 보유세를 중심으로 한 헐거운 세제가 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 세율은 0.2%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1%를 넘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참여정부 들어 세금을 많이 올리지 않았느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겠는데, 강화하겠다고 선언해놓은 정도이지, 강화한 정도는 여전히 미미하다. 세대별 합산 6억원 초과 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부동산세 부과는 올해 말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는 내년부터 시작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세금 올려봐야 소용없더라’는 선언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실책을 빌미 삼아 보유세를 비롯한 세제 강화 장치를 풀어헤쳐야 한다는 주장도 성급하다고 볼 수 있다.

저금리 기조는 헐거운 세제와 맞물려 다주택을 보유할 강한 유인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목돈을 은행에서 굴리는 경우와 집에 투자하는 것의 비교를 통해 쉽게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임대 수익률은 대략 연 8%로 시장이자율(연 4%대)의 2배 수준이다. 여기에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다양한 세제 혜택까지 받는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25.7평형 이하 5가구로 임대사업을 할 경우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면제받는다. 임대사업자 등록 최저선인 2가구 이상만 되면 18평형 이하의 경우 취득·등록세 면제 혜택이 있다. 더욱이 집값 상승 때는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토양 위에서 민간 임대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주택 임대사업자는 3만7114만 명, 이들이 보유한 임대주택은 101만4362가구에 이른다. 2004년 3만1737만 명, 91만3608가구에 견줘 각각 16%, 11%나 늘어난 수준이다. 1994년 11월 주택 임대사업자 제도가 도입된 뒤 사업용 임대주택이 100만 가구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장기 공공임대 주택 언제쯤이나…

김용창 세종대 교수(부동산경영학)는 “2003년부터 신도시 계획에 따라 주택을 공급해도 물리적 공급만큼 가격 인하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다주택 보유자로 집중되는 구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외환위기 뒤 금리가 급상승해 금융 자산을 가진 이들은 큰돈을 벌었다. 이 돈으로 폭락한 주택을 구입했다. 사업하다 부도낸 이들이 주택을 팔아치우던 시절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금융·실물 자산의 양극화가 일어났고, 이는 소득 양극화로 이어졌다고 김 교수는 진단했다. 참여정부 초기에 형성된 이런 조건 아래에선 신규 주택을 공급해도 높아진 분양가 때문에 주택을 소유할 능력을 갖춘 이들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통계청의 3분기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전국 가구의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계층의 평균 소득을 하위 20%인 1분위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7.7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51포인트 높아졌다. 3분기 기준 전국 가구의 소득 5분위 배율은 2003년 7.08, 2004년 7.30, 2005년 7.28에 이어 계속 나빠지고 있다. 양극화 해소가 참여정부의 주요한 깃발이었다는 점이 무색해진다. 이렇게 심해지는 소득 양극화는 주택소유의 편중 심화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룬다.

부동산 부자들이 집을 굴려 돈을 벌고 이 돈으로 다시 집을 사들이는 동안 내 집 마련에서 점점 멀어지는 저소득 무주택자들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장기 공공임대 주택을 확충하는 길인데, 실상은 이와 멀다. 공공임대 주택은 완성된 주택 재고 기준으로 전체 주택 수의 2.7%인 36만 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건설 중인 것까지 합해도 5% 남짓인 68만 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선 무주택 가구의 절대 다수는 사적인 단기 전·월세를 구해 살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임대료와 주거안정성 면에서 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불어닥칠 냉풍을 기다려야 하나

정부의 ‘11·15 부동산 대책’은 2010년까지 새도시 등 공공택지에 12만5천 가구를 추가 공급하고 공공택지 공급 주택의 분양값을 25% 인하하는 것을 뼈대로 삼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나 세무조사 방안도 담겨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급 확대가 서민층의 주거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역사를 돌아보면 얼마나 기대를 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긴, ‘민란 직전’이란 말까지 나도는 판국에 어떤 정책을 내놓다고 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백약이 무효’라는 불신과 자조가 깊고 넓게 퍼진 상황에서 마지막 약은 어쩌면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열풍’에 이어 ‘냉풍’이 몰아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극심한 혼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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