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정책 이후 동남아를 넘어 러시아·헝가리까지 몰려가는 ‘새 이주민들’…이민국에 충성심 보이기보다 ‘세계적 다수종족’의 자부심 느끼는 영원한 중국인
‘제3세대 화교가 몰려온다.’
개혁·개방과 함께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동남아와 미주를 거쳐,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까지 퍼져나가는 중국 이민자들의 물결은 커져만 가는 중국의 정치·경제력과 맞닿아 있다. 독립언론인 베르틸 린트네르가 타이와 파푸아뉴기니, 러시아 극동지역을 넘나들며 취재한 신세대 화교 보고서를 에 보내왔다. 편집자
▣ 치앙마이=베르틸 린트네르 전 기자
타이 북부 최대도시 치앙마이 공항의 체크인 카운터가 아무렇게나 줄지어 선 중국인들로 북적인다. 이들은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그들이 떠들어대는 말투는 치앙마이 시장통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윈난성 사투리가 아니다. 타이 전역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테오추(Teochew) 사투리도 아니다. 그들은 중국 본토의 표준어 만다린을 사용하고 있다.
‘세계적 다수종족’이란 자부심
그들은 관광객이 아니다. 잘 맞진 않지만 양복 차림에 낡은 짐가방, 휴대전화로 무장한 그들은 무역거래를 하거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방콕을 찾는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치앙마이 등 타이 북부로 10여 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새로운 중국계 이민자들이다. 이들이 점포나 식당을 열고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오면서 타이 현지인들은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타이 사람으로서 압도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방콕에서 태어나 치앙마이에 살고 있는 한 현지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중국인들이 남방으로 이주해온 것은 수세기 전부터다. 하지만 요즘처럼 한꺼번에 몰려온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새로운 중국 이주자들이 타이 북부로만 몰려오는 건 아니다.버마(현 미얀마)와 라오스 북부, 캄보디아를 비롯해 좀더 멀리까지 새로운 이민자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태평양의 섬나라로, 오스트레일리아로, 미국과 러시아 극동지방은 물론 일본까지 화교들이 진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법과 합법을 막론하고 한국으로 몰려드는 중국인이 부쩍 늘고 있다. 일본 입국보다 한국 입국이 훨씬 쉬운 탓이다. 이들 상당수는 간도 출신 조선족이며, 한족 출신 가운데도 한국에 좀더 쉽게 섞여들기 위해 조선족인 양 행세하는 이들도 있다.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은 지역 방언을 쓰고, 중국인이란 정체성보다는 자신의 출신 지역에 대한 정체성이 앞섰던 이전 화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최근 이민 행렬에 나서는 이들은 표준어를 구사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국과 일치시킨다.
치앙마이를 기반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과 동남아시아 관계를 연구해온 중국 전문가 앤드루 포브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은 과거 이민자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과거와 달리 통합된 중국에서 성장했으며,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훨씬 강하다. 새 세대 화교들이 애국적이며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중국 연구자 니이리 팔 역시 과거 동남아시아나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정착했던 화교들과 달리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고국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중국의 일부라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니이리 팔은 “새 세대 화교들은 스스로를 이주한 지역에서 소수종족이라고 여기는 게 아니라, ‘세계적 다수종족’이라고 자부한다”며 “이는 영토적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애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중국은 이민자들에게 종족·문화적 기초이자, 자신들이 계속해서 투자를 하고 이윤을 낼 수 있는 경제적 성공의 근간으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기존 이민자와의 긴장관계 표출되기도
물론 중국 당국이 이런 움직임을 앞장서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중국 본토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중국 내부에서 청년층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민 행렬이 일종의 사회적 안전장치 노릇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민은 중국 당국 처지에선 대단히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 이민자들이 국내에 머무른다면 사회·정치적 불안을 야기했을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또 이민자들이 일단 외국에 정착하면 땀 흘려 번 돈을 본토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면서, 해외 송금은 중국 국가 수입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새로운 중국계 이민자가 몰리고 있는 곳으론 니이리 팔의 나라 헝가리도 포함된다. 15년여 전만 해도 헝가리에선 중국인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 공산주의의 몰락은 민간 사업가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줬고, 역설적이게도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사회주의 나라 중국에서 상당수 이민자들이 헝가리로 몰려왔다. 현재 헝가리엔 줄잡아 2만~4만 명에 이르는 화교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중국과 국경을 맞댄 러시아 극동지방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장거리 기차여행을 통해 헝가리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늘어만 가는 정치·경제적 힘이 최근 헝가리와 동남아시아, 그 밖의 여러 나라들로 퍼져나가는 중국 이민자들에게 자신감과 과감성을 심어주고 있음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국가적 자부심은 자칫 새 이민자들과 기존 이민자 집단 사이에 긴장관계를 촉발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존 중국계 이민자들은 중국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 자칫 현지인들이 중국인 공동체에 가져온 오랜 의심을 강화시키는 한편, 잠재돼 있던 적대감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실제 적대감의 표출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 1999년 5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300여 명의 중국계 이민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미군이 옛 유고연방 베오그라드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오폭한 것에 대한 항의시위였다. 비슷한 시각 이보다 소규모 인원이 모여, 이들의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예전부터 캄보디아에 살던 중국계 이민자들이었다. “너희는 우리의 형제도 아니야.” 시위에 참가한 기존 이민자 한 사람이 반미시위를 벌이는 새 이민자들에게 “너희놈들이 폴 포트 시절 우리 식구들을 죽였다”고 고함을 질렀다.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 정권 때인 1975~79년 당시 캄보디아에선 상당수 중국계 이민자들이 학살된 바 있다.
1979년 이민법 완화가 물꼬 터
버마 북부 만달라이에선 새롭게 도착한 중국 이민자들이 점포와 식당, 호텔과 가라오케 바, 그리고 신분증을 사들이고 있다. 중국계 이주민들의 상대적 부유함 때문인지 현지 버마 당국자들은 이민법을 강력하게 집행하지 않는다. 하긴 1990년엔 버마에서 꽤 알려진 소설가인 니이 푸 라이가 만달라이로 몰려드는 중국계 이민자들이 버마인들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는 내용의 풍자소설 을 썼다가 체포돼 징역 10년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광둥이나 푸젠성 출신이 대부분인 옛 중국계 이민자들은 이 새 이민자들로 인해 팽팽해지고 있는 종족 간 갈등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1967년 버마 수도 랑군의 차이나타운을 휩쓸었던 폭동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버마는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었고, 성난 군중들은 중국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상점을 불태우고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중국계 이민자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버마 출신 중국인으로 현재 미국 럿거스대에서 형사법을 가르치는 친 코 린 교수는 지난 1978년 미-중 관계 회복이 새로운 중국계 이민자 행렬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대미무역에서 최혜국 대우를 받기 위해 중국 당국이 1979년 이민 관련 규정을 완화시키면서 새로운 이민자 행렬의 물꼬가 터졌다는 것이다. 친 교수는 “1980년대 말부터는 합법적 이민이 불가능한 본토 중국인들이 서서히 불법이민 알선조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이때부터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인적 이동이 부분적으로 범죄조직과 연루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말 중국은 덩샤오핑의 주도로 경제 분야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고, 중국인들은 돈벌이 기회를 찾아 외국으로 향하게 됐다. 집단농장은 개인농으로 바뀌었고, 국영기업에선 대규모 해고사태가 벌어졌으며,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혼란 속에 이민자 행렬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개선된 교통망 덕분에 ‘여행’도 훨씬 수월해졌다. 육로 국경과 공항 경비가 강화되면, 불법 이민자들은 바닷길을 택했다.
해안경비대가 순찰을 강화하면, 항공기를 이용했다. 이렇게 ‘뒷문’으로 향하는 방법이 갈수록 다양해졌다. 이를테면 타이 국경을 걸어서 넘는 이민자들은 방콕 공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가장 싼 항공 루트인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까지 날아간 뒤,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흩어졌다. 또 다른 무리들은 미국령 괌이나 버진아일랜드, 푸에르토리코 등지로 향한 뒤 허술한 통제망을 피해 미 본토로 잠입했다.
정확한 수치는 알 길이 없지만, 서구 정보기관에선 1978년 이후 불법과 합법을 막론하고 약 200만 명의 중국인들이 세계 각지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민 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는 한 해 3만~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비슷한 규모가 다른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친 교수 등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큰 규모로 중국인들이 이민길을 떠난 것은 역사상 세 번째라고 지적한다.
‘중국계 러시아인’은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상 첫 대규모 중국인 이민은 명나라가 망한 직후인 1644년 시작됐다. 베이징 권력을 장악한 만주족에 반대한 만다린어를 사용하지 않는 남부지방 출신들이 대거 이민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들이 동남아 일대에 자리를 잡고 중국인 공동체를 건설한 제1세대 화교들이다.
두 번째 대규모 이민 행렬은 청나라 말기인 19세기 중·후반에 이뤄졌다. 청나라가 몰락의 길로 접어들어 태평천국의 난을 포함해 각지에서 봉기가 이어지면서 중국 전역이 사실상 무법천지로 치달은 때였다. 역시 남부 해안지방 출신이 주류를 이룬 제2세대 화교들은 동남아의 기존 화교 공동체로 흡수된 것은 물론 새롭게 개발된 증기선을 타고 북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이제 제3세대 화교들이 중국 전역에서 세계로 향하고 있다. 더욱 편리해진 육로를 통해 중국인들은 지속적으로 동남아로 진출하고 있고, 항공편을 이용해 전세계 구석구석으로 뻗어가고 있다. 더구나 이 제3세대 화교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나라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일본에선, 수세대에 걸쳐 요코하마와 고베를 비롯한 항구도시에 거주해온 기존 중국인 이민자들보다 밀항해 들어온 새 이민자들의 규모가 훨씬 많다. 불법이민 알선조직들은 중국인 밀입국을 주선하면서 거액을 챙기고 있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활용해 ‘학생’ 신분으로 들어와 불법체류를 택하는 중국인들도 늘고 있다. 새 이민자들로 인해 일본 사회의 범죄 환경이 바뀌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의 엄격한 노동법 때문에 중국계 불법 이민자들은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업체 상당수는 조직범죄 단체가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계 범죄조직이 일본의 ‘전통적인’ 범죄조직인 야쿠자를 넘보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계 범죄조직 사이의 주도권 다툼으로 평온하던 도쿄나 오사카 등지 대도시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새 이민자들의 강한 ‘중국적 색채’는 이들이 이주한 특정 나라나 지역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은 ‘중국계 미국인’이 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이들은 ‘중국계 오스트레일리아인’이 된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은 ‘중국계 러시아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들은 러시아인이 아닌 중국인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통가나 마셜군도 등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로 이주한 이들도 이민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보단, 중국인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경제협력을 넘어 군사동맹으로
이런 현상은 사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18~19세기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게 된 유럽 이민자들 역시 강력한 자기 정체성을 유지했다. 중국인들이 식민지 건설에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 극동지역이나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에서 중국계 이민자가 현지 주민 수를 넘어서게 될 경우, 이들 지역 전체에서 새로운 종족·사회·정치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중국계 이민자들이 강력한 소수종족으로 유지되는 곳에서조차 이들 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제3세대 화교 열풍은 이미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버마와 라오스는 중국과 밀접한 경제협력을 하면서 군사동맹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타이와 중국 사이 교역량은 날로 늘어나고 있고, 문화·정치적 교류 폭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캄보디아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됐고, 경제원조와 무역의 원천이자 최대 이민자 배출국이 됐다. 태평양 연안국가에선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함께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국민의 대규모 이민으로 거대강국으로서 중국의 등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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