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미국산 소고기, 곳곳에 검역 구멍

등록 2006-11-01 00:00 수정 2020-05-03 04:24

도축 뒤 식탁에 오르기까지 30~40일 동안의 현지 점검과 안전성 검사 미흡하기만… 수입대상인 ‘30개월 미만 살코기’도 안심 못해… 일부 업체는 직수입 검토도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30~40일에 걸친 기나긴 여정을 거친다. 미국 곳곳의 농장에서 끌려나온 소가 컨테이너에 옮겨져 도축장으로 실려가는 게 여정의 시작이다. 농장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 과정에서부터 소는 농민의 손을 떠나 대형 패킹(도축 등 육가공) 업체들에게 맡겨진다. 육가공과 고기 수출 업무를 주도하는 미국의 3대 메이저 패킹 업체로는 타이슨푸드·카길·스위프트가 꼽히고 있다.

일본은 수시 점검권까지 확보

패킹 업체들은 농장에서 실어온 소를 작업장으로 옮겨 도축 작업에 들어간다. 우리나라로 수출 승인을 받은 미국 내 쇠고기 도축 작업장은 모두 36곳이다. 수입 식품은 안전성 확보를 위해 수입 전 사전 확인을 거치도록 돼 있다.

생산 현지에서 해로운 식품을 가려내는 작업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선 국내 농림부가 미국 내 작업장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돼 있다.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 작업장에 대해 수시 점검권까지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작업장에서 숨통이 끊긴 소의 몸체는 방혈(피빼기), 박피(껍질 벗기기), 머리 부위 제거, 내장 적출, 식별 번호표 부착, 세정 과정을 거쳐 냉동 보관돼 수출 선적을 기다리게 된다.

쇠고기 작업장에서는 머리 부위를 제거할 때 광우병 검사를 하고, 혀와 적출된 내장의 검사 작업도 아울러 벌인다. 이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나라의 위생 조건에 맞추기 위한 조처인데, 제대로 지켜지는지는 의문이다.

일본 국회 참의원인 가미 도모코 의원은 미국 방문 조사에서 입수한 미 농무부의 광우병(BSE) 위반 기록을 분석해 “지난해 12월에 대일 수출 인정을 받은 미국 내 37곳 쇠고기 처리 시설 대부분이 미국 내 광우병 대책의 하나로 요구받고 있는 위험 부위 제거나 월령(나이) 판정 등의 기준을 자주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가미 의원은 “37개 시설 가운데 지지난해와 지난해에 걸쳐 위반을 지적받았던 곳은 26곳에 이른다”며 “주로 생후 30개월의 월령 판정 기준을 위반했거나 뇌·척수(등골), 편도 등 위험 부위를 제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국건수)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박상표 수의사는 “일본 수출 승인을 받은 작업장(현재 35곳) 중 3곳을 빼고는 한국 수출용 시설과 겹친다”며 “한국으로 수출할 예정인 미국 내 쇠고기 작업장의 광우병 관리 실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가 최종 확정되면, 냉동 보관된 쇠고기는 국내 수입업자들의 선박에 실려 한국으로 옮겨진다. 대형 할인점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며, 일부 업체는 수입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수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수입 쇠고기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통로는 주로 평택항(서울·경기권), 부산항(부산·경남권), 광양항(전남북권) 3곳이다. 항구를 거친 쇠고기는 인근의 보세창고로 옮겨져 검역 절차를 기다리게 된다. 서울·경기권의 수요를 담당하는 평택항 쪽 물량을 처리하는 보세창고는 용인, 기흥, 수지 등에 모여 있다. 국내 검역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제품은 미국 쪽으로 반송되거나 소각 처리된다. 불순한 수입 쇠고기를 걸러내는 최종 수비수 구실을 하는 곳인 셈이다. 최종 수비수는 믿을 만할까?

정밀검사 비중 높지만 적발은 평균 이하

보세창고에 들여온 수입 쇠고기는 수입식품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일반적인 방법대로 서류 검사, 관능 검사(육안으로 뼈가 붙어 있는지 등을 살피는), 정밀 검사를 거친다. 수입식품 가운데 쇠고기를 비롯한 축산식품의 검사는 식품위생법, 축산물가공처리법 등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농림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맡는다.

축산물의 검역·검사 절차를 보면 우선 서류검사를 통해 지정 검역물 유무, 금지 품목 유무를 판단하고 역학조사, 임상검사, 정밀검사를 통해 최종 수입 승인을 내줄지 여부를 판단한다. 역학조사에서는 수입 금지 품목 여부, 위생 조건의 이행 여부를 검사하고 임상 검사에서는 개체 확인 등을 하게 된다. 정밀검사 단계에서는 미생물학적·혈청학적·병리학적 검사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합격 판정이 내려진 경우 검역증을 교부해 수입이 확정된다.

박상표 수의사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쇠고기를 비롯한 수입식품의 물량과 검사 건수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정밀검사 비율을 보면, 수입식품 전체가 15.8%(2004년)였고, 수입 축산물은 16%(2005년), 수입 수산물은 12.8%(2006년) 수준이다. 이같은 정밀검사 비율은 미국이나 일본의 1.7~8.7%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수입 축산물의 경우 최근 3년간 정밀검사 실적은 수입 2004년 3438건, 2005년 6638건, 2006년 6월까지 2395건으로 집계돼 있다.

문제는, 정밀검사 비중이 이렇게 높은데도 위반 건수는 대단히 낮다는 점이다. 수입 축산물의 잔류물질 기준 위반 적발률은 2004년 0.09%(위반 3건), 2005년 0.15%(위반 10건), 2006년에는 6월까지 위반 건수가 아예 없다. 대체로 깨끗한 수입 식품만 국내로 들어왔기 때문일까? 검사 결과 부적합으로 판정받은 수입식품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1.8%(2004년)인 데 반해 미국의 수입식품 부적합률은 이보다 훨씬 높은 5% 수준인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검역을 거쳐 수입 판정을 받은 쇠고기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손을 거쳐 식당이나 가정 등 최종 소비자들에게 넘겨져 30~40일에 걸친 여정을 마친다. 이 마지막 단계 때부터 쇠고기를 비롯한 축산식품의 안전관리는 농림부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넘어간다.

농림부 고시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에 따라 수입 대상은 ‘생후 30개월 미만 소의 뼈 없는 살코기’로 한정돼 있다. 이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허용 기준에 바탕을 둔 것인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영국에서는 생후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적어도 19건, 일본에서도 2건의 광우병 발생 사례가 보고돼 있다는 점에서다. 또 지난 2003년 광우병에 감염된 32명 가운데 8명의 근육에서 광우병 원인 물질로 알려진 ‘프리온’이 발견돼 근육(살코기)에서도 광우병 원인 물질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돼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4대 선결 과제의 하나로 합의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미뤄지고 있는 게 이 때문이다.

살코기에서도 프리온 발견됐는데…

더욱 문제는 음식점에선 수입 쇠고기의 산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내년부터 음식점에서 육류의 ‘원산지’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돼 있지만, 대상은 300㎡ 이상의 대형 식당이다. 이런 규모의 식당은 국내 전체 음식점의 1% 수준인 2700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구이용’에만 적용되며 국거리나 무침 등에는 표시 의무가 없다. 백화점에서도 값싼 수입 쇠고기가 국내산으로 둔갑하는 일이 잦다는 점을 감안할 때 모르는 새에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될 개연성이 상존한다.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학교급식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학교급식에선 3등급 이상 한우 고기만 쓰도록 한 조처가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