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적 노력으로 성장한 한국판 그라민은행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조합… 상환율은 놀랍게도 94%, 96.6%… 재활형 프로그램 통해 ‘심신 치유’하기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2001년 국내에 사단법인 ‘함께 만드는 세상 설립을 위한 연구모임’이 만들어졌다. 모임을 발제한 건 사회연대은행 이종수(52) 상임이사다. 오랫동안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일하던 그는 직장일로 동남아를 돌다가 그라민은행을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2000년에 귀국한 그는 그라민은행을 본뜬 사회연대은행 설립에 나섰다. 파리에서 공부 중이던 노대명 박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와 도시빈민운동을 하던 김수현 박사(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김신양 자활정보센터 연구부장, 김홍일 신부(사회적기업지원센터 이사) 등이 모임에 속속 들어왔다. 그라민은행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는 방안을 찾아보자며 머리를 맞댔다.
실직 여성가장의 애견옷가게가 1호점
2003년 2월 결실이 맺어졌다. 사회연대은행이 간판을 내걸었다. 처음에는 이종수 이사 등 창립 멤버들이 500만원씩 모아 5천만원의 자금으로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삼성그룹이 여성가장 창업 지원기금 10억원을 사회연대은행에 지원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사회연대은행이 무보증·부담보로 소액대출을 해줘서 창업한 ‘무지게 가게’ 1호점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퍼니독’(옛 실과바늘)이다. 안산에서 미싱공이었던 실직 여성가장들이 의류 제조 솜씨를 발휘해 애견옷을 만들고 있는 삶의 생산공동체다. 그 뒤 사회연대은행이 창업 지원해온 업종은 음식점·놀이방·어린이집·옷가게·피부미용·세탁소·죽전문점·짚풀공예점·피아노교습소·속셈학원·꽃집 등 다양하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총 320호점을 냈다. 물론 어느 마이크로 크레디트이든 사치·향락 업종은 창업 지원에서 제외된다. 사회연대은행이 현재까지 60여억원을 대출 지원해줬는데, 공동체 창업에 22%, 개인 창업에 78%가 나갔다. 주로 외식·서비스업에 집중돼 있고, 여성에 대한 지원이 71%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정식 은행이 아니라서 예금은 없고 대출 고객만 있다. 사회연대은행에 현금을 후원하는 사람은 총 400여 명인데 후원금 액수는 제각각 다르다. 사회연대은행 임은의 팀장은 “대출 지원받고 있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사회연대은행에 대한 정보를 소문이나 방송을 듣고, 또 복지관이나 자활후견기관에서 일하는 NGO 사람들이 소개해줘서 찾아오고 있다”며 “사업별로 일정한 기간에 접수를 받고 심사하는데, 전체적으로 경쟁률이 10 대 1은 된다”고 말했다.
놀라운 건 상환율이 94%에 이른다는 점이다. 폐업하거나 대출금을 떼먹은 업체가 거의 없다. 시중은행권의 상환율보다 훨씬 높다. 사회연대은행 최홍관 사무국장은 “상환율이 100% 가까이 될 정도로 높았는데, 신용불량자와 성매매 피해여성 자활 대출사업을 하면서 상환율이 다소 떨어진 것”이라며 “대출 자금이 거의 다 상환돼 돌아오고, 이것이 다시 다른 빈곤층에 대출되면서 대출 지원을 받는 빈곤층 창업자도 늘고 기금도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상환율이 이처럼 높은 건 철저한 심사를 통한 재활 의지 파악, 전문적인 창업 노하우 전수, 치밀한 사후 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창업자금 대출 뒤에 회수에만 급급하지 않고, 경쟁력을 갖고 자립에 성공할 수 있도록 경영기술·유통 등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해준다. 저소득·빈곤층이 막무가내로 창업하는 것이 아니다.
신나는 조합은 소모임 공동체 지원
사회연대은행은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인 차상위 계층에게 1천만~3천만원까지 연 2~4% 금리로 대출해주는데, 대출자의 형편과 창업 프로젝트에 따라 금리를 차등 적용한다. 여성가장, 장애인 창업 등에는 2%대를 적용한다. 6개월 거치 3∼4년 상환이다. 사회연대은행 임은의 팀장은 “대부분의 창업이 하루 매출 10만∼20만원 정도의 사업인데 많이 빌려주면 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초기에는 자활 의욕을 북돋우고 창업 기업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다 갚으면 상환금의 50%를 사업확장금으로 무상 지원하겠다는 인센티브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이크로 크레디트인 ‘신나는조합’은 지난 2000년에 그라민은행이 출자한 5만달러로 출발했다. 강명순 목사(신나는조합 전 조합장)가 주도해 한국 최초로 설립된 마이크로 크레디트이다. 우리나라 교회와 기업, 정부의 자활공동체 창업자금 지원사업 기금 등 지정기탁금 8억원을 종자돈으로 마련해 지난 6년간 인천 한마음농장, 대전 대덕주택 등 63개 소모임(가족관계가 아닌 대략 3∼5명으로 구성) 239명에게 17억원을 창업대출해줬다. 이곳 역시 대출자금 회수율이 놀랍게도 96.6%에 이른다. 신나는조합은 개인 창업대출은 하지 않고, 농촌과 도시의 저소득층 소모임 공동체에 대출해주는데 대출 뒤 매주 단위로 원리금 상환이 시작된다.
특히 신나는조합은 ‘소득 보장’에 중점을 두는 수익형 대출 프로그램과 성매매 여성 자활, 노숙인, 알코올 중독자 등 ‘심신 치유’에 중점을 두는 재활형 프로그램을 둘 다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모임은 농어촌 지역에 분포돼 있다. 신나는조합 역시 소모임 창업을 돕고 사후관리 서비스를 해주는 ‘두레일꾼’이라는 조력자들을 두고 있다.
신나는조합의 사례는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당장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 창업이 가능한 사람에게만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건 아님을 보여준다.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 직업 경력이 없는 장애인처럼 사업을 일으키고 상환하기 힘들 것 같은 사람들도 두레일꾼의 도움을 받아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성공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창업 의지가 강하고 사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만 지원해 융자금의 안정성에 집착한다면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근본 목적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신나는조합에 따르면, 알코올 의존에서 점차 벗어나 일을 시작하고 다시 가족을 꾸리게 된다든지, 일을 거부하던 사람들이 취업을 하는 성과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시중은행과 협력하는 모델도 등장
물론 사회연대은행이든 신나는조합이든 대출할 때 신용평가는 하지 않고, 자활·자립하려는 의지를 가장 중시한다. 신나는조합은 그라민은행과 마찬가지로 소모임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상호 연대보증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반면, 사회연대은행은 동업 형태로 사업을 할 수는 있지만 연대보증으로 얽힌 곳은 없다. 흥미로운 건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시중은행, 신용보증재단이 서로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연대은행은 서울신용보증재단, 신한은행과 공동으로 서울에서 영세 자영업을 운영하는 저소득층에게 창업·자활 지원을 위한 특례보증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금융 소외계층에게 자금만 대출해주는 것을 넘어 가난한 사람들의 자활 지원이 목적이다. 결국 ‘수익성’을 갖춰야 한다. 대출받은 뒤 사업 수익 또는 가계 수입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대출 규모와 고용창출 효과는 몇 명인지, 창업 이후 생존하고 있는 사업체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등 성과 지표들을 따져봐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대명 부연구위원은 “다행스러운 건 우리나라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정부에 의존해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노력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그러나 마이크로 크레디트 발전 방향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정책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방글라데시처럼 높은 이자를 전제로 기관 스스로 자립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자립형’ 모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유럽처럼 국가가 운영비를 보조하는 모형을 선택할 것인지, 혹은 둘을 절충한 새로운 모형을 만들 것인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대명 박사는 “정부 지원이 없으면 초기에 대출받는 빈곤층에게 높은 이자를 부담시켜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자체적인 확대재생산 구조를 완성할 때까지 초기 단계에는 정부가 생업자금융자특별회계 기금 등 공공부문 창업지원 사업들을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위탁해 운영비를 지원하고, 마이크로 크레디트에서 일할 실무 인력 양성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기업, 폭넓은 네트워크 구축돼야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대한 민간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은행권 휴면예금 활용 △기부금의 손비 처리 △카드 적립 포인트 활용 등이 고려되고 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독립 금융기관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는 여·수신과 신용보증 업무에 대한 규정이 포함돼야 한다. 이에 대해 사회연대은행 쪽은 “우리가 여·수신 기능을 달라고 적극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정부·기업·금융기관·시민단체 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각종 지원과 협력, 정책 공조가 이뤄져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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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가 창설한 마이크로 크레디트 비즈니스가 자선사업 차원을 넘어 탄탄하게 기반을 쌓음에 따라 이 사업모델이 ‘수익’을 추구하는 월스트리트에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미국 에 따르면, 유누스가 그라민은행을 세운 이후 전세계적으로는 5천만 명이 모두 120억달러가 넘는 소액 자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추산되며, 이에 따라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대한 금융시장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신문은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 소재 벤처 자본가 출신 크리스 브룩필드를 소개하면서 그가 운용하는 유니터스 이퀴티 펀드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위해 1천만달러의 투자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이 돈은 멕시코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에 투입된다고 한다.
개인 자본만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금융공사(IFC) 소속 애널리스트 사예드 아흐메드는 “씨티은행과 ABN암로, 도이체방크 등 대형 은행들도 마이크로 크레디트 쪽에 관심이 크다”며 “대출 상환율이 그라민은행의 경우 99%에 달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가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관심을 갖는 근거는 지난달 씨티그룹과 오버시스 프라이빗 인베스트먼트가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들을 위해 1억달러의 기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대표적 교육연기금인 TIAA-CREF도 1억달러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투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비즈니스가 활성화됨에 따라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의 주식 공개에 관심을 갖는 투자가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월가의 기존 투자 방식으로만 접근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대출운영 방식이 기존의 은행과 다르기 때문에 직원들도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건당 대출이 대개 1천달러를 넘지 않기 때문에 훨씬 더 바쁘고 번거롭게 뛰어야 한다. 중남미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액시온그룹 관계자는 “극빈자들에게 이처럼 많은 달러가 직접 제공된 적은 없었다”며 “금융시장이 분명히 관심을 갖고 관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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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적 기업’ 중 하나인 루비콘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은 정상적인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업훈련’과 ‘일자리’의 기회를 제공해 자활을 돕고, 그 사업수익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중요한 건, 사회적 기업은 정부 보조금이나 기업·개인들의 기부에 재정적으로 의존하던 전통적인 비영리 기관과 달리 영리적 기업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이다. 성공한 사회적 기업에는 노숙자 출신이더라도 자신의 능력으로 일하고 평가받는 직원들이 있다. 또 무엇보다 사회적 기업의 생산품을 구매해주는 수많은 고객이 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개인과 공동체의 창업 지원 외에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창업 지원에도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개별 창업자가 2∼3년간 일정한 수익을 내고 생존하는 자영업 성공 기준을 넘어, 다양한 창업자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기금의 사회적 확대재생산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대명 부연구위원은 “영세 창업을 통해 큰 수익을 기대하기 쉽지 않고, 실패할 경우 타격은 매우 크다. 또 모두 창업주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개인 창업뿐 아니라, 최소한 수익으로도 기본적 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기업으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가정보육·간병사업·가사도우미 등 다양한 사업을 발굴하고, 유망업종에 프랜차이즈를 구성할 수 있으며, 이런 사회적 기업 설립에 필요한 창업자금을 대출하고 교육과 사후관리 체계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사회연대은행은 사회적 기업 창업을 위해 ‘안테나 샵’을 만들 구상을 갖고 있다. 사회연대은행 임은의 팀장은 “안테나 샵은 일종의 ‘창업대학’ 같은 곳인데, 시뮬레이션으로 미용실 작업장을 만든 뒤 그 안에 네일아트·피부마사지·미용 등 여러 사업을 넣고 인턴 실습 형식으로 창업자들이 경험을 쌓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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