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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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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중단은 ‘자학’이다

등록 2006-10-24 00:00 수정 2020-05-02 04:24

포용정책은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산물…북핵 해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평화를 얻어내기 위한 최선의 방도

▣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서강대 초빙교수

지난 10월9일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했다. 역사상 유례 없이 미리 예고한 공개적 실험이었다. 공개·비공개를 떠나 북한의 핵실험은 대통령 주재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린 뒤 발표한 정부 성명에서 언급한 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도발적 행위”임이 틀림없다. 마침내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하고 한반도 안보 상황에 위기가 온 것이다.

박정희 ‘선 평화 후 통일’ 정책부터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해도 꿈쩍도 않는 미국을 상대로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지금 그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과 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 그리고 외교적 고립이 얼마나 절박한 해결 과제인지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북한의 체제 생존 전략과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및 민주주의 확산 전략이 정면 대결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를 따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최우선적 과제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는 일이고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하는 일일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를 위해선 6자 회담이건 양자회담이건, 공개 대화든 물밑 대화든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당연히 제재도 해야 하겠지만, 결국 이것도 협상을 위한 제재라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에 기여하고 당면한 위기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 북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도발적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은 북핵 위기가 우리 국민의 안전과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우리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의를 보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무엇을 논의해야 맞는 것인지 방향마저 잃고 있는 듯하다.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시시비비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실험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용정책이 실패했다거나 북한 핵실험이 포용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다.

대북 포용정책은 우리의 경제력이 북한을 앞지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197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의 ‘선 평화, 후 통일’ 정책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정책적 진화를 거듭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즉 ‘7·7 특별선언’을 통해 구체적 실천 과제로 제시됐다. 이는 이어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채택된-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준비의 대장전이란 평가를 받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반영됐다. 이런 성과를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지속됐고 대북 포용정책은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 화해협력 정책(‘햇볕정책’)으로 체계화됐다. 이를 기반으로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었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의 화해·협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남북관계는 질적·양적으로 많은 진전을 이뤘다. 이렇듯 대북 포용정책은 우리 국력의 비약적 성장과 절대적 대북 우위, 탈냉전의 국제 정세 변화, 그리고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대북정책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은 것이다. 지속적으로 진화해온 것이지,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소외된 채 비용만 댔던 김영삼 시대

대북 포용정책은 포용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 한반도 평화 정착, 비핵화 그리고 민족공동체 기반 조성 등을 목표로 하는 대전략이다. 북한은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 전환 결과로 더욱 극심한 경제난을 겪게 되고, 김일성 사망과 이어 거듭된 자연재해로 아사자와 탈북자 행렬이 끊이지 않는 체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북한은 체제 생존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조심스럽게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는 경제 개혁에 초점을 맞춘 헌법 개정 등 체제 정비를 해나가면서, 대외적으로는 미·일·중·러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모른 척하면서 외면할 것인가, 이를 기회 삼아 북한을 압박 봉쇄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을 적극적인 변화와 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 개입할 것인가?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다. 개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고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을 증진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통일 과정을 우리가 주도해나가는 것이다. 이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가? 이것이 대북 포용정책이다. 대북 포용정책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대북 포용정책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군사적 위협의 와중에서 추진돼왔다. 북핵 문제는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2000년 이전부터 존재해왔고, 김대중 정부에 들어오면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병행 발전’이라는 전략을 구사했다. 북핵과 남북관계를 연계하는 전략으론 북핵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다뤄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북관계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김영삼 정부에서 발생했고, 1994년 이후 북핵 문제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라는 핵질서에 의해 관리돼왔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소외됐고, 남북관계는 중단됐다. 그럼에도 대북 경수로 건설 비용의 대부분을 우리가 부담했다.

북핵은 구조적으로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닌 미·일·중·러의 대북정책과도 관련된 국제적 차원의 문제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국제적 차원에서 해결 노력이 전개될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대북 포용정책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의 일부분으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북한의 핵실험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우리가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 이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고,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의 적극적이고 창의적 역할이 가능했던 것이다.

개성공단·금강산, 우리가 원해서 시작했다

대북 포용정책이 실질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라면 이제 6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북핵 문제와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인해 구체적인 사업에서는 그 진행 속도와 내용에서 이미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대북 포용정책은 ‘출구’가 아니라 아직 ‘입구’에 있는 것이다. ‘출구’는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장애를 넘어서야 보일 것이다. 포용정책을 버리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흐름에 동참했을 경우 북한에서 핵실험이 없었을까? 그동안의 경험에서 보면 이런 주장은 북한이 대북 강경정책에 대해서는 강한 반발을 보여왔던 점에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비록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는 했으나 이후 남북관계에서 긴장 상황이 조성되고 있지 않는 것도, 초보적 수준이기는 하지만 대북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결과다. 더욱이 북한은 핵을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문제로 간주하고 체제 생존 차원에서 미국과 협의해서 해결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대북정책보다는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가 더 중요한 변수인 것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의 핵심 변수가 되지 못하는 포용정책을 두고, 핵실험의 근본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의 대북송금이 북한의 핵개발을 초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국제사회가 면밀하게 관찰해온 결과를 보더라도 북한은 오래 전에 초보적 수준의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 현재 이뤄지는 대북송금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경제 협력과 교역 같은 정상적인 경제 거래 행위에 따른 것으로,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경제 거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의 상거래에 수반된 현금만을 문제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군사비와 같은 체제 보위에 필요한 자금은 최우선적으로 예산 배정을 했을 것이고, 이를 가변적인 경협자금에 의존한다는 것은 상정하기 어렵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도 있으나,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두 사업은 북한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1982년 ‘20개 시범실천 사업’을 제시할 때부터 하자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원해서 북한을 오랫 동안 설득한 결과 추진된 사업이며, 이 사업과 관련된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이 피땀 흘려가며 여기까지 어렵게 끌고 온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단순한 경제협력 사업 이상의 미래 전략적 사업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민족 경제공동체를 준비하는 사업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선도하는 핵심적 사업이다. 둘째, 이들 사업의 진전과 확대를 통해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유도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나갈 수 있다. 셋째, 북한의 시장경제 학습과 개혁·개방의 체험장으로서 북한의 경제적 변화를 유도하고 촉진하는 구실을 한다. 넷째, 일방적인 지원사업이 아니라 호혜적 사업이며, 국내에서 고비용 구조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중소기업이 새로운 활로를 열어나가려는 사업이다.

수조원이 핵개발에 이용됐다고?

대북 식량 지원이나 비료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의 호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원되는 사업이다. 이 사업 역시 북한의 대남 의존도를 높이고 북한 주민의 대남 적대 의식을 약화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해왔지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을 유보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제재를 가하는 결과가 되는 측면이 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사업은 우리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한반도 평화와 번영, 그리고 북한의 변화와 개혁을 선도해나갈 교두보다. 분단 60년, 우리 대북정책의 결정판인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과 그 이후의 상황에서 우리의 대북 영향력을 강화해나가기 위해서도 정부는 우리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에 대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사업이 갖는 중요성을 적극 설명하고 어떤 경우에도 사업 추진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적극 대처해야 한다. 최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구분하려는 논의가 있지만 금강산 관광 사업은 냉전의 얼음을 깬 상징적 사업이고, 우리 국민이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유일한 북한 땅이다. 또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다시 잃어버릴 수 없다는 국민 정서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만약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북한에 돌려준다면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북한의 군대가 될 것이다. 다시 군사분계선에 철책이 세워지고 통문이 닫힌다면 이를 다시 여는 데는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이 요구되지 않겠는가. 남북관계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깊이 검토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기반은 최대한 유지해나가는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대북지원 11년, 화해협력 6년 동안 남북관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조금씩 신뢰를 쌓고 성과를 축적해왔다. 반세기 넘게 끊겨 있던 땅길, 바닷길, 하늘길이 이어졌고 군사분계선이 열리고 남북의 군인이 원활한 통행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수만 명의 남북 주민이 왕래하고 있고 서해상과 군사분계선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조처도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다. 1만8천여 명의 이산가족이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북 포용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물자와 돈이 들어갔지만, 대북지원은 모두 물자로 이루어졌다. 또 대북 경수로 지원은 한전이 주계약자로 참여해 우리 업체의 수주액이 분담금보다 많았기 때문에, 국내 경제 차원에서는 자금 유입분이 더 많았다. 이외에 여러 사업에서 토지 사용료, 사업권 등의 대가 지급이 이뤄졌으나 이는 민간 기업이 경제논리에 따라 투자한 것이고 정상적인 경제 행위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를 모두 뭉뚱그려 수조원의 금액이 일방적 지원으로 북한에 제공되고 이것이 핵실험을 도왔다고 말하는 것은 입증할 수 없는 추정일 뿐이다.

정치권은 파당적 주장 자제하라

그럼에도 핵실험 이전과 이후의 남북관계가 같을 수는 없다. 대북정책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면 상황 변화에 따라 정책의 운용에서도 유연성과 조절이 필요할 것이다. 포용 범위를 벗어난 북한의 어떤 행동도 다 포용할 수는 없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노력과 전략에 일부 수정과 보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북 포용정책 실패론, 책임론, 전면 수정론 등은 더 신중하게 제기되고 논의돼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가 심각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국민의 안전과 생활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현 시점에서는 하루빨리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도록 조율된 조처를 논의하고 이행해나가야 한다. 어렵겠지만 우리가 가진 국제적 역량을 총동원해 관련 국가들의 이익과 공통점을 찾아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남북간에도 특사 교환이나 정상회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어떤 형식이라도 회담 개최 자체가 성과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정부의 성급한 대응이나 조율되지 않은 발언 그리고 정치권의 파당적 주장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기 위해서도 대북 포용정책은 유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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