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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총장, 원칙인가 독선인가

등록 2006-10-20 00:00 수정 2020-05-02 04:24

동덕여대 사태 수습의 사명을 띠고 취임했으나 2년만에 해임안 가결… 총학·공투위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사회운동으로 얻은 명망마저 흔들려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총장으로 선임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눈앞이 캄캄해서 찬물을 몇 잔이나 들이켰다. 지금까지 쌓아온 명예가 학교의 이익과 충돌을 일으켜 무너지게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손봉호(68) 전 동덕여대 총장이 2004년 9월 동덕여대 총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05년 2월에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내 분규가 심각했던 동덕여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큰 흠 없이 살아온 일생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고 했다.

“모든 대응책 강구하겠다”

손 전 총장의 걱정은 지난 10월9일, 현실이 됐다. 동덕여대 이사회(이사장 박상기)는 “손 총장이 재임 후 학교 측과 총학생회·교직원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독단적으로 학교를 운영해왔다”며 “부적절한 대학 행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임안을 가결했다”고 밝혔다. 손 전 총장은 자신이 예언했듯 총장 해임이라는 오점을 남기며 지난 2년여간의 동덕여대 생활을 접어야 했다. 손 전 총장은 해임 이후 “해임에 대한 공식 사유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모든 대응책을 강구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학내 갈등 심화, 부동산 불법 매입 의혹, 과도한 등록금 인상 등 구체적인 해임 사유에 대한 전 총장과 이사회 및 학내외 단체의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해임 사유가 정당하든, 정당하지 않든 사회적 명망가로 이름 높았던 손 전 총장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단지 이력에 ‘해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빨간 줄이 그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손 전 총장이 동덕여대에서 보낸 지난 2년이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덕여대는 2003년 옛 재단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뼈아픈 과정을 겪었다. 총장과 비리재단을 몰아낸 뒤 교수·직원·학생·동문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는 당시 손봉호 전 한성대 이사장을 후보로 추대했고 이사회를 거쳐 4년 임기의 총장으로 취임했다. 손 전 총장의 이력은 말 그대로 화려했다. 손 전 총장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이사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등 굵직한 이력 외에도 그의 이름이 걸려 있는 기독교와 시민사회단체는 수없이 많다.

손 전 총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기독교계에서는 대형교회 세습 반대 등에 앞장서는 등 교회 내부에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왔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으로는 사회윤리 등을 강조해왔다. 그래서 교회 내부에서는 기독교적 윤리와 양심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고 있고, 진보와 보수 등 이념을 넘어선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평도 있다. 이에 반해 “발자취는 화려하지만 보수적인 이념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거나 “정치적이다”는 평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평가는 엇갈렸지만 2004년 당시 사회적 명망가인 손 전 총장에 대해 학내외는 신뢰를 보냈다.

취임한 지 몇 개월이 지날 때까지 손 전 총장은 보직교수들의 의견에 따라가기만 하는 듯 보였다. 문수연(국사4) 총학생회장은 “총장 취임 초기에는 학내에서 파벌을 형성하고 있던 보직교수들이 총장을 앞세워 마음대로 학교를 휘두르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 전 총장의 독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총학선거 시행세칙 개정 요구부터 총학 부정선거 의혹까지 총학의 모든 활동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럴 때마다 손 전 총장은 항상 ‘원칙’과 ‘공정성’ ‘투명성’을 강조했다. 손 전 총장의 원칙주의는 단순히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신념에 그치지 않았다.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동덕여대 안에서 총장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하면서 그의 원칙은 ‘오만’과 ‘독선’으로 변질됐다.

비판 기사 실자 학보사 기자 전원 해고

학내 단체들은 조직 내부의 민주적인 의사결정보다는 손 전 총장이 내세우는 ‘엄격한 원칙’에 휘둘려야 했다. 손 전 총장은 총학이 자신의 원칙에 따라오지 않자 총학 불인정, 학생회비 0원 고지, 학생 징계 등을 추진했다. 또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자 학보사 기자를 전원 해임하는 등 언로까지 막았다. 는 지난 4월 손 총장이 한 공식석상에서 “왜 총학생회가 있어야 하나, 학생들이 투표하지 않으면 없애야지”라고 했다는 사실을 기사화했다. 이는 그의 원칙주의가 공정성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동덕여대에는 2003년 민주화를 거치면서 6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동덕민주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이하 공투위)가 있다. 현 동덕여대 이사회는 교육부 추천이사 3명, 공투위 추천이사 3명, 옛 재단 추천이사 3명으로 구성돼 있다. 공투위(위원장 이성대 안산공대 교수)는 동덕여대 감시 기능을 담당하며 총학, 교수노조, 교직원노조 등과 행동을 같이했다. 손 전 총장은 이번 해임을 두고 공투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는 공투위를 “민주화를 가장한 외부세력”이라고 지칭하며 “목소리 큰 몇 명이 외부세력과 합세해 학교를 혼란의 장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에 몸담고 있는 그가 공투위에 대해 비난한 것을 두고 ‘모순’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상철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자문위원은 “자신이 시민단체 1세대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공투위를 유령단체 취급하고 공투위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명망을 쌓은 손 전 총장의 자세인가”라며 비판했다.

‘외부세력’이라는 비판이 무색하게 손 전 총장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단체들도 동덕여대 사태에 관여했다. 총학 불법 선거 논란이 뜨거워지자 손 전 총장은 자신이 상임대표와 상임고문을 역임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에 선거 검증을 의뢰했다. 이에 총학은 “총장이 단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전면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에 응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최근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교수·학습권 침해에 따른 업무방해죄’로 검찰에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거꾸로 총학의 선거가 무효의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학교는 홈페이지와 언론을 통해 검찰 조사 결과 선거에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총학은 “아무런 조사도 없었는데 무슨 결론이냐”며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손 전 총장과 검찰의 유착에 대한 의혹을 피해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손 전 총장은 대검찰청 감찰위원장을 맡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손 전 총장이 감찰위원장인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총장 손 들어준 검찰, 유착 의혹 일어

해임 과정에서 절차상의 정당성과 원칙을 요구하고 있는 손 전 총장과 지금이라도 조용히 동덕여대를 떠나라는 학내외 단체들 간의 공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손 전 총장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사회적 존경을 받기 힘들 것이라는 점과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재평가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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