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가는 재혼가정을 위한 실속 있는 교육 프로그램 절실…초혼가정보다 이혼율 더 높지만 준비없는 속전속결 재혼 많아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재혼은 초혼과 다른 환경과 분위기에서 시작한다. 이혼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있고 전 배우자라는 존재가 있다. 재혼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한몫한다. 자녀와 함께 시작하는 재혼은 새 배우자와 자녀의 관계, 이혼한 전 배우자와 자녀의 관계, 재혼으로 형제자매가 된 자녀들끼리의 관계, 새로운 친척 관계 등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시작한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학계에서는 재혼 가정의 이혼율이 초혼 가정의 이혼율보다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재혼 가정에 존재하는 복잡한 관계가 갈등으로, 또 한 번의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객관적으로 이혼을 바라보자
가족마다 개별성이 있고 상황이 다 다르기는 하지만, 재혼이라는 구조 속에서 공통적으로 안고 가는 문제들이 있다. 이런 문제는 재혼 전에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거나 예방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재혼 가정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갈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재혼 가정을 위해 재혼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전춘애 선임연구원은 “이혼으로 인한 상실감을 치유하고 재혼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 대신 자신을 바라보고 현실적인 기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재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재혼을 새롭게 바라보고 시작하면 재혼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재혼 교육 프로그램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이혼을 겪은 이들은 이혼의 원인을 주로 상대방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재혼을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이혼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재혼에 대한 기대를 서로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차이를 좁혀가야 한다. 재혼 가정 자녀 교육도 중요한 과제다. 부모의 재혼 이후 방황하는 아이들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문제는 부모에게 있다. 물론 해결의 열쇠도 부모가 쥐고 있다. 그런데 부모만 그걸 모른다. 부부는 이혼과 재혼으로 인해 자녀가 느끼는 상실감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새로운 가정 안에서의 규칙 만들기, 자녀와 전 배우자의 관계를 받아들이기 등에 대해서도 미리 알아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재혼 교육 프로그램을 꾸려나가고 있는 기관은 많지 않다. 한구가족상담교육연구소는 1998년 5주년 학술세미나에서 ‘또 하나의 우리, 재혼 가족’이라는 주제로 ‘재혼 가족에 대한 실태 연구와 재혼 준비 교육프로그램 모형 개발’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이후 1999년 정현숙·유계숙·임춘희·전춘애·천혜정 등이 공동으로 재혼 교육 프로그램과 교재를 마련했다. 재혼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과 재혼을 앞둔 예비 부부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재혼 바로보기’ ‘서로를 감싸안기’ ‘재혼 터놓고 얘기하기’ 등의 과정을 통해 부부관계와 자녀관계 등을 준비하고 갈등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에서는 신청자가 모아질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재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재혼캠프도 처음 열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교육원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재혼캠프를 진행했다. 재혼을 앞둔 남녀와 재혼 가정의 부부·자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제1회 재혼캠프’에서는 집단상담 형식으로 재혼할 배우자의 성격 탐구와 자녀들과 함께하는 놀이시간 등을 가졌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오는 11월에도 재혼 가정 교육 프로그램인 ‘새부모 새자녀 행복찾기’를 계획하고 있다. 재혼 교육 프로그램은 ‘재혼 가정의 이해와 갈등해결 방법’ ‘재혼 가족에서 부부의 의미와 역할’ ‘재혼 가정의 자녀 이해와 양육’ 등 3회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가족 관련 단체와 종교 단체에서 재혼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늘어만 가는 재혼율에 비춰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재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결혼정보회사 등을 중심으로 배우자를 만나면서 충분한 준비 없이 속전속결로 재혼에 골인하는 추세다. 결혼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나 상담가들이 있지만 재혼 이후 실질적인 결혼 생활보다 재혼 이전 조건 등에 초점을 맞추고 ‘우선 결혼을 하면 다 잘 해결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인다. 전문가들은 “서로의 조건에 맞춰 결혼 상대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은 좋지만 준비와 전문적인 교육 없이 성혼 중심으로 이뤄지는 재혼은 또 한 번의 실패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재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것도 재혼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교육원 박현정씨는 “여러 기관에서 진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신청자가 많지 않다”며 “재혼 가정 문제를 돕는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나 인식이 아직 부족하고 재혼에 관해 부정적인 얘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재혼을 준비하는 가정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과 계획도 중요하다. 정부는 2004년 2월 제정된 건강가정지원법에 따라 중앙, 시·도, 시·군·구에 의무적으로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설치해 지역별로 가정 지원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재혼 관련 상담 등을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재혼 관련 교육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여성가족부 가족지원팀 이규봉 사무관은 “현재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한 가족 지원은 결혼 준비나 부부 갈등, 이혼과 관련된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며 “여성가족부는 재혼 관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으며, 연구용역을 통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일부 센터에서 진행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혼가정, 아는 게 힘!
물론 재혼 교육 프로그램이 100% 안정적인 재혼 가정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예측 가능한 갈등에 대처할 수 있고 비현실적인 기대로 힘들어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부부관계를 견고히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재혼 가정 자녀들에게 안정을 찾아주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부모의 관심과 참여, 가족 관련 단체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정부 정책이 손을 맞추면 된다. 재혼은 아는 게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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